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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Oct 10. 2021

나다운 느낌은 어떻게 만들까

줏대 없는 스타일

회사에서는 보고서를 자주 살펴본다. 여러 보고서를 계속 읽다 보면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누군지 어렴풋이 짐작 갈 때가 있다. 초기 보고서의 형태만 봐도 직접 작성을 하였는지 누군가의 문서를 보고 베꼈는지 느껴진다. 사람마다 문서를 만들어 표현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자주 만들어본 사람일수록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스타일이 묻어 나온다. 누가 작성을 하였는지 대번 알아볼 수 있는 보고서는 원액과 같다. 다른 누군가는 그 원액을 차용하여 희석하고 다른 자료에 응용을 하는 형태이다. 한 사람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 나올 수 있는지 여부는 사람의 직위와는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누군가는 직위가 높아질수록 개인의 생각을 창조하여 드러내기보단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창조물을 베껴 자신의 생각인양 말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직위가 낮아도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원액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보고 배울 점이 많다. 원액은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어 무궁무진하게 확장성도 크다. 





보고서만큼 그림도 원액을 만드는 사람과 원액을 희석하는 사람이 나뉜다. 원액을 만드는 사람들은 독보적으로 자기만의 스타일이 담겨있다. 사용하는 색상의 종류와 터치감, 그리는 대상에 따라서 그림 그리는 사람의 특징이 나타난다. 일관성 있게 연필로 자화상을 섬세하게 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채화를 묽게 만들어 풍경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한치의 오차도 벗어나지 않는 도형과 직선으로 감정을 일관성 있게 표현하는 작가도 보았다. 이렇게 일관성 있고 특징 있는 스타일의 그림을 보기만 해도 '아! 이 그림은 누구의 작품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 다른 스타일은 제각각 매력이 있다. 앙리 마티스의 강렬한 색감은 시간이 지나도 감각적이다. 시간이 지나도 세련된 그림들을 보면 어느새 원색에 푹 빠지게 된다. 이렇게 강렬한 색감에 빠져 한동안 거칠고 대담한 표현을 하는 작품들에 헤어 나오질 못했다. 자연스레 내 그림에도 영향을 끼치면서 표현이 대담해지고 때론 비현실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다 함께 그림을 그리는 동료가 기가 막히게 그린 수채화 한 점을 보여주면 이내 마음이 흔들린다. 기가 막힌 물 농도 조절에 "역시 물 맛나네."라는 감탄을 하면서 수채화에 푹 빠진다. 은은하고 촉촉하게 표현된 수채화는 중간중간 물 얼룩이 보인다. 하얗게 비어있는 물 얼룩마저도 독특한 질감으로 느껴져 손맛의 느낌을 더한다. 부담스럽지 않게 은근히 건네는 멋이 느껴지는 수채화에 눈길이 가면 또 어느 순간 내 그림들이 은은해진다. 원색 위주의 색감과 대담한 도형들은 점점 조신하게 자취를 감춰버린다. 



올림피아 자그놀리 작품


때론 따라 하기도 채 버거운 거장들을 만날 때면 '이 사람은 천재다.'라고 하면서 뚫어지게 쳐다만 보게 된다. 내겐 색감과 세상을 독특하게 바라보는 관점에서 '올림피아 자그놀리' 작가가 그러하다. 그녀의 작품은 강렬하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다. 강렬한 이미지 한 장으로 10마디의 말을 대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감각적이다. 이런 감각은 어떻게 노력해야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볼 때마다 그저 감탄하게 만든다. 




색감이 아닌 연출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작가도 있다. '클라우디아 팔마루치'라는 작가인데 글과 그림의 조화가 뛰어나다. 글로서 담아내지 못한 분위기나 감정을 놀랍도록 잘 구현한다. 게다가 무척 섬세하게 표현해 그림 한점 한 점에 애정이 담겨있는 느낌이 든다. 


다른 사람들의 멋진 결과물을 보면 나도 모르게 동경하게 되고 조금씩 내가 만드는 작업에 적용을 해본다. 따라 그리다 보면 마치 내가 동경하는 대상의 감각을 그대로 얻은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진다. 계속 좋은 그림을 많이 그려보고 접하면 나의 실력도 늘고 보는 눈도 올라가 착각 속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내가 그린 그림들을 모두 모아놓고 나의 흔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내가 만든 작업이 결국 타인의 아류작 밖에 될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롭다. 심하게 말해서 모작밖에 못 하게 되는 셈이다. 학습용으로는 좋지만 어느 누구도 내가 만든 작업물을 보고 나를 연상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저 어느 작가와 비슷한 풍으로 그리는 누군가라고 생각하는 정도겠지. 내 생각과 감각이 묻어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결국 나만의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한다. 다른 누군가의 원액을 희석하여 만드는 것이 아닌 내 자체가 원액이 되어야 한다. 말이 쉽지 나 스스로가 원액이 되기가 참 어렵다. 세상에는 따라 하고 싶은 대상이 너무나 많고 모두 매력적인데 그 안에서 나의 매력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나만의 스타일은 어떻게 만들까? 아이러니하게 나만의 스타일은 결국 많이 다른 사람들을 베껴도 보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실험도 해보면서 만들어진다. 표현하고 싶은 대상과 표현방식을 자각하지 못했던 사람이 그림을 많이 그려보면서 처음으로 나와 잘 맞는 주제와 표현 방식을 찾아간다. 하나의 대상을 다른 작가들을 모작해보기도 하고 연필로 그려보기도 하고 유화도 그려보면서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재료, 질감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때론 줏대 없이 그림을 표현하는 스타일이 계속 변한다고 해도 나의 표현 방식을 알아가는 여정일 테다.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와 같이 살아 움직인다. 나다운 스타일은 그림을 그리는 한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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