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구공오 Apr 02. 2020

오후 2시가 되면, 카메라를 켜자!

나의 고등학교 3년, 방송부 생활.

난 기억이 안 나는 어린 날의 시간부터 눈치와 소심한 성격을 겸비하고 있었다.

MBTI도 꼭 내향성을 상징하는 I가 붙어서 나와 '난 소심이 에요!'라고 작게 알리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그랬냐 생각해보면, 7살 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빠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여,  가격에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걸 고르는 오빠와 다르게, 가격표를 보고 그나마 싼 거를 고르던 나의 모습과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내 주변에 같이 건너는 사람이 없으면 무서워서 같이 건너 줄 사람을 기다리는 7살의 나.

겁이 많고, 눈치, 소심한 성격으로 똘똘 뭉쳐버린 7살의 나. 


난 그나마 기억이 남아있는 7살의 나를 시작으로, 감정과 욕구들을 꾹꾹 눌러와서 살았는 거 같다.

최근에는 그걸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 가끔 나를 의도치 않게 늦은 밤 중 문을 두드려 오는 우울증이 

그때의 7살의 나를 더욱 상기시켜주었다. 하지만, 무조건 그렇게 아무런 저항 없이 살아온 것만은 

아니었다. 나한테 첫 번째 찾아온 저항은 초등학교 6학년이 본 무한도전으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작 13살이 본 무한 도전 프로그램 속의 피디는 정말 멋진 존재였다. 굳이 나서지 않고 연예인들을 통해 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고, 그 수많은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모두 내 말에 귀를 기울어주고, 내가 제작한 창작물을 통해 시청자들이 웃고 신날 수 있다는 것은 소심한 나에게 큰 센세이션과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피디가 내가 생각한 존재가 아니란 것을 깊이 깨달았지만, 그때는 나 같은 소심인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웃음을 주는 직업에는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난 방송국 피디가 되기로 결심했다. 꿈은 떵떵거렸지만,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정말 무서워했다. 중학교를 올라갈수록 발표는 더해졌고, 그 발표를 할 땐, 정신을 다른 곳에 두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조차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그 순간들을 잊고 싶었나 보다. 


피디가 되기 위해선 신문방송학과를 다녀야 하고, 그 신문방송학과를 들어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방송부라고 생각했다. 방송부는 많은 동영상 제작과 학교의 핵심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필요하지 않나 란 생각을 하였다. 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총 3번의 방송부 기회가 있었지만, 그중 2번이나 나의 부끄러움 때문에 실패하였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놓치지 않고 싶어 잡은 나의 10대의 학창 시절 끝, 고등학교 방송부를 들어가게 되었다. 그 속에서 울고 웃고 하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예전의 나로선 상상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해 준 방송부의 일들을, 기억을 차근차근 더듬어 얘기해 보려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