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나에게 편지를 쓴다.
감정에게서 도망치지 않기로 하였다.
난 주변인들에게 무뚝뚝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또한 차갑고, 냉철하다는 말까지. 그들은 나의 감정은 단 하나의 요철도 용납 못하는 아주 매끈한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차가운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나의 감정을 그들은 쉽게 나무란다. 하지만, 그 감정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 감정의 모양새가 아무리 말끔해도, 그 무게는 감정을 품고 있는 나만 알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내 감정을 감당하기가 무척 버겁다. 어떤 좋은 감정이든 아님 정말 나쁜 감정이든 나에겐 감정이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원인이 너무 두렵다. 좋은 일이 있어 행복과 기쁨에 젖을 때면, 이 순간이 오래가지 못할까, 혹은 너무 들떠서 남들에게 가벼워 보이지 않을까 란 생각 때문에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한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남과의 비교를 통한 열등감, 죄책감들로 똘똘 뭉친 날에는 우울하지 않으려, 평소와 같아지려 노력한다. 그 마저도 되지 않을 때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지만, 이미 검게 타버려 깊이와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을 감정을 마주하기 무서워 한참 전에 그 폭풍들이 지나간 듯이 대충 얼버무려버린다. 항상 도망친다. 너무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내 마음을 할퀴는 감정이 싫어서, 감정에 대해 냉철한 이름을 내려 매끈하게 만들지만, 무게는 감당하기 버거워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라는 말을 되뇌고, 도망치고 또 도망친다. 결국에는 내가 감정을 못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좋겠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라는 말처럼 내 마음을 울리는 감정들이 나의 삶의 원동력이자, 하나의 의미로 다가오는데, 그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삶을 무색으로 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난 내 문제를 심리상담 공부하는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 아이의 말로는 심리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객관화’ 라 하였다. 만약, 자신에게 우울한 감정이 들면, 왜 우울한지 이유와 원인을 찾도록 도와주고, 자신의 기분을 컨트롤할 수 있는 권리를 질 수 있는 능력이 자기 객관화라 하였다. 감정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땐,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기분 전환을 해주어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능력.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자기 객관화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성장하고 변화하는데 예전의 좋아했던 것을 지금의 좋아하는 것으로 날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난 계속해서 시간과 함께 흘러가 과거의 나는 흐려지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는 자기 객관화를 위해, 내 감정을 올곧게 마주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내 하루 시간의 틈에 걸린 감정이 무엇인지를 찾아 미래의 나에게 혹은 현재와 과거의 나에게 편지를 매일매일 한 통 보낸다. 대서사시를 시작하는 거창한 문장이나 느낌, 불필요한 겉치레는 필요 없다. 세상에서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제일 솔직하고 정직해야 하는 나에게 내 감정과 생각, 마음을 있는 그대로 그 무게가 어떻든 간 꾹꾹 한 자 한 자 눌러 담아 언젠가 꼭 볼 나에게 보낸다. 어느 순간 발견한 편지를 다시 읽어볼 때 그 편지에 담긴 감정이 어땠는지 지금과 그때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했고, 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찬찬히 곱씹어 본다.
난 1년 전만 하더라도 미래의 불안에 대해 걱정이 많은 젊은 청춘이었다. 불안은 정말 얄밉게도 늦은 밤중에 문을 두드리며, 잠에 빠지려는 나 자신을 깨운다. 그렇기에, 미래의 불안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편지를 쓰지 않았던 때에는 그저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며, ‘나도 그렇게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자.’라는 어설픈 위로로 나를 재우려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불안이 덮쳐질 땐 나에게 편지를 쓴다. ‘네가 외로움과 괴로움 사이에서 얼마나 지쳤는지 알아. 내가 왜 살아가는지 모르겠지만, 근데 태어났으니. 행복하게 살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자. 그때 신을 만나면, 너무 힘들었다고 어리광 부리자. 그러니 조금만 진짜 눈 딱 감고, 다시 해보는 거야.’ 이 문장은 실제 타지 대학생활에서 외로움에 치친 나에게 쓴 편지의 일부이다. 대부분 자신에게 편지를 쓸 때, 자기 자신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내 지금의 상태를 솔직하게 쓰며, 가장 나 다운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훗날, 이 편지를 다시 볼 때, 나 자신이 이렇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잘 극복했구나 란 점을 깨닫고, 여전히 공통된 감정으로 아픈 내가 이 편지를 보면, 과거의 내가 해주는 위로와 응원을 받으며, 어떻게 감정을 잘 다스릴지 고민하게 된다. 난 꼭 볼 언젠가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는 시작으로 감정을 올곧게 받아들이는 용기에 대해 한 발 어쩔 때는 두 발, 세 발 천천히 다가간다. 아직도 무서워 피하고 싶은 여러 감정의 무게들이 날 짓누르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처음부터 피하지 않는다. 네가 어떤 무게를 갖고 있던 간 날 한번 꾹 눌러봐 란 말로 그 감정과 처음 마주한다.
예상외로, 날 삼키지 않을 감정들도 많고, 내가 이렇게 섬세하게 느꼈나 하는 감정들도 많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 그 감정을 느끼는 게 버거워 무뎌지려고 하지 말자. 그 감정들이 우리의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보여줄 하나의 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창을 계속 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난 오늘도 나에게 편지를 보낸다. 나의 감정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에게 끊임없이 진정한 나 다운 응원과 위로 함께 편지가 배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