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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구공오 Jan 22. 2021

명문대를 못 가면 죽어야지.

각자의 선택 속에 최고의 답이 있다는 것에 대해.

'너는 네 갈 길 가. 나는 내 갈 길 갈게.'
(You're on your way. I'll go my way)


요새 마음에서 뿜어져 나와 입가에 맴도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내 마음에서 나오기까지 정말 많은 과정들이 날 지나갔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넘쳐나는데, 모두가 원하는 희소가치는 적어 항상 타인이란 기준 하에 비교하며 살아왔던 우리에겐

이 말이 굉장히 낯설고, 무례할지도 모른다.



한 때는 '개썅 마이웨이'라며 한 가지의 멋으로 칭했고, 점차 그 의미가 변질되어 '제멋대로 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이 말에 담긴 중요한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가는 트랙에 빠져나와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우습고 어린 생각이었지만, 중학교 때 큰 입시학원을 다녔을 때 학원 선생님들이 항상 뽐내던 명문대를 간 자신의 제자 이야기만을 들으면서 '명문대를 가면 모든 게 좋게 달라지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짝 긴장한 채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담임선생님과 첫 상담에 나에게 처음으로 나온 단어는 '명문대' 뿐이었다. 고작 17살 밖에 안된 아이가 명문대, 공무원의 아는 지식들을 뽐내면서 시작과 끝을 오롯이 그 얘기를 채우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고, 웃겼을 것이다.



'이것 봐라.'라는 표정으로 입가에 웃음기를 가득 머금으며 묵묵히 듣고 있던 담임 선생님이 처음으로 한 질문이

'명문대를 못 가면 어떻게 되는데?'였다. 그때 난 정말 진지하고 심각하게 '그럼 살 방법이 없으니, 죽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극단적이었고, 꺼내고 싶지 않을 흑역사로 남았다.

그리고 이어져 나오는 담임 선생님의 말은 '죽긴 뭘 죽어. (명문대) 안 가도 다 잘 먹고 잘 사는구먼. 네가 좋아하는 걸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어.'였다. 그땐 학생이 죽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그러는 거 갑다 라며 넘겨짚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한다.



결국, 난 명문대를 가지 못 했다. 유명하지도 않은 한 대학에서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다수의 선택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원하는 학과에 진학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무조건 편입을 해야 돼. 여기 졸업하면 취업도 못 해.' 라며 자신의 대학 졸업 기록이 남는 걸 부끄러워하는 동기들과 주위에서 들려오는 공무원과 공기업에 대한 압박 소식들에 휩쓸려 다니기 일쑤였다. '이 대학에 나와도 원하는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란 확신에 가득 찬 대답도 큰 소리로 하지 못 했다. 뭔가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거 같아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만 같았기 때문에.



여전히 나의 선택에 자신이 건너 건너  아는 지인의 경험과 카더라 하는 영양가 없는 조언들, 아무도 모르는 미래의 두려움을 현재의 순간에 끌고 와 훼방을 놓는 일들이 너무 지겹고, 그거에 휘둘리는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한 번은 난 네 말을 안 들을 거야. 내 선택을 굳히겠어 란 마음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척 마는 둥 했다 상처를 받은 상대를 본 적이 있었다. 결국 내가 어떻게 해야 서로를 지킬 수 있을까 란 끝없는 고민에서 나온 답이 저 문장이었다.



'너는 네 갈 길 가. 나는 내 갈 길 갈게.'



상대의 선택을 존중해주며, 난 나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당신의 선택이 나의 기준엔 틀려 보여도 당신의 살아온 삶에서는 그게 맞는 선택이겠죠. 그러니 당신도 나를 존중해주세요 라고 부드럽게 부탁하는 느낌이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드라마 <도깨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도깨비(공유)가 아버지에게 맞은 소년이 집을 나가려 할 때 그의 선택의 결과를 미리 알려주며, 네가 선택하라고. 못 믿는 소년에게 수학 시험 답을 미리 알려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를 도우려 하였다. 그 후 소년이 할아버지가 되어 도깨비(공유)와 얘기를 할 때, 자신의 알려준 답을 왜 적지 않았냐는 질문에, 소년은 아무리 해도 제가 못 푸는 문제였어요 라고 대답한다.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소년을 칭찬하는 '너의 삶은 너의 선택만이 정답이다.'란 대사가 나온다.



다수의 선택이 곧 자신의 인생에 정답이 아니다. 인생은 정답을 선택하라고 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내가 한 모든 선택이 타인의 조언과 영향을 받지 않아 비록 안 좋은 결과를 만나더라도 그건 나의 인생에서는 최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많이 가는 트랙을 달리지 않아도 된다. 그렇기에 난 명문대를 가지 못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며, 내 학교가 부끄럽단 동기들의 말에 휘둘려 원치도 않은 선택을 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쏟아붓지 않아도 되며, 난 즐겁게 내 길을 달리면 된다.



사회가 정해준 트랙은 이미 결승선이 붉게 선으로 그어져 있고, 하얀 선이 그 길을 인도해주지만.

나의 선택이 인도하는 길들은 그저 엉망진창인 모래, 길이 끊어진 절벽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 내가 결승선에 들어가고 싶다면, 내 마음대로 붉은 선을 그으면 되고

내가 계속 달리고 싶다면, 하얀 선을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그리면 된다.



그걸 빨리 알았더라면 이란 후회가 맴돌아 그간의 타인의 색이 묻힌 선택들이 참으로 밉지만.

지금이라도 그러한 훼방꾼들에게 정중히 거절하는 법을 알았으니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선택에 의심과 방해를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면  저 문장을 꼭 말해주었음 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을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어 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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