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센치멘탈

비, 안개, 그리고 뱃고동

비, 안개, 그리고 뱃고동



누군가 나에게 상하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비와 안개를 얘기할 것이다. 그만큼 비와 안개가 많은 도시라는 말인데, 먼저 비에 대해 말해보자. 상하이의 비를 추억하자면, 먼저 추운 겨울, 마치 장마처럼 1주일 넘게 줄기차게 내리는 차디찬 겨울비가 떠오른다. 남방이다 보니 겨울에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대신 비가 잦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며칠씩 쏟아붓는 비가 많다. 온돌이 갖추어지지 않은 중국 남방에서 겨울을 나기란 녹록지 않다. 특히 상하이는 바다와 강을 끼고 있어 차가운 습기가 강한 편이라 더더욱 그렇다. 창문에 비닐을 치고 온풍기에 의지해서 겨울을 보내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와중에 일주일씩 비가 쏟아지면, 몸은 으슬으슬해지고 마음은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하이의 겨울비가 좋았다. 그런 겨울이 지나고 강남의 봄이 찾아오면 속삭이듯 내리던 보슬비도 잊을 수 없다. 생명력과 활기가 가득한,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상하이의 봄비, 자, 그리고 한여름의 소나기를 말할 차례다. 많이들 아는 대로 상하이의 여름은 악명 높은데, 40도를 웃도는 날이 여러 날이다. 여름엔 일단 나다니지 않은 것이 상책이다. 숨 막힐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그 여름날, 그러나 반가운 비가 있다. 마치 오랜 갈증을 깔끔하게 해소하듯 퍼붓는 장대 같은 소낙비가 있다. 포서와 포동을 오가는 배에 올라 황포강 위로 사정없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보는 것은 꽤나 근사하다. 사정없이 퍼붓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그쳐버리고 마는 상하이의 여름 소나기.



그리고 안개, 상하이의 안개를 말해보자. 먼저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황포강 위로 피어오르는 그 새벽안개가 떠오른다. 방학 때 잠시 귀국하기 위해서 학교 근처 오각장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에 가던 길, 푸동 국제공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황포강을 건너기 마련, 아침 황포강의 그 희뿌연 안개, 나는 그 안개를 사랑했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상하이를 떠나가던 날 아침, 안개에 싸인 황포강을 건너며 나는 상하이의 안녕을 빌었다. 그리고 내가 3년여를 살던 사평로, 국정로 거리를 에워싸는 그 밤안개, 또한 늦은 밤 외탄, 남경로나 인민광장 부근을 걸으며 만났던 그 숱한 안개의 날들, 그렇게 나는 청춘의 끝자락을 상하이의 안갯속에서 보냈던 것이다.




상하이는 중국 남동부 연안에 위치해 있다. 내륙으로는 장강의 지류인 황포강이 연결되어 있고, 밖으로는 태평양과 마주하고 있다. 지난 세기 초 중국의 그 수많은 지역 중에서 상하이가 서구 열강의 각축지가 된 것에는 그러한 지리적 이점에 기인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과 바다, 즉 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다 보니, 유독 비와 안개가 많은 곳이다. 영국의 런던이 비와 안개로 유명하듯이, 중국의 상하이 또한 비와 안개의 도시로 꼽을 수 있는 것이다. 자, 상하이의 비와 안개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상하이의 뱃고동 소리다. 강과 바다가 있는 지역이다 보니 수많은 배가 상하이로 들어오고 나간다. 그리하여 상하이 어디에 있던지 뱃고동 소리는 익숙한 소리다. 상하이에서 3년 여 유학을 한 나에게 상하이는 그런 단편적인 이미지로 먼저 환기된다. 밤늦게 홀로 술 한잔을 기울일 때 멀리서 들려오는 은은한 뱃고동 소리는 적적한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고, 새벽녘 잠에서 깼을 때 듣는 뱃고동 소리는 집 생각을 나게 했으며, 헤어진 연인에 대한 야속함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켰다. 상하이를 떠나온 나는, 세월의 강물에 청춘을 떠나보낸 나는, 지금 그 모든 것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