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절의 한 조각을 기념으로 간직하는 것
어제 딸아이가 새벽 1시까지 울고불고 떼를 썼다.
우연히 서재 캐비닛에서 발견한 쪽쪽이가 화근이었다.
다섯 살 딸아이는 자기가 빨던 쪽쪽이 한 뭉치를 발견하고는 자기가 아기 때 하던 거라며 반가워했다.
그런데 잠들기 직전 그걸 떠올려 내고는 막무가내로 쪽쪽이를 달라는 거다.
“여니 아기 되고 싶어!!!! 쪽쪽이 줘!!!! 기저귀 찰 거야!!! 여니 아기 되고 싶어!!!!”
그렇게 2시간을 울었다.
우리 부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혼도 내어보고 달래어도 보고는 이내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여니 기다릴 거야. 쪽쪽이 줄 때까지 기다릴 거야”
한참을 훌쩍이며 잠못이루던 아이를 품에 안고 다독였다.
“여니는 벌써 키가 100센티잖아~ 엄마는 쪽쪽이 빨고 기저귀 차던 아기였던 여니도 좋지만, 지금 100센티나 돼서 엄마랑 같이 디즈니랜드도 가고 초콜릿도 먹을 수 있는 여니가 더 좋아~ 지금도 여니는 엄마에겐 충분히 아기야 “
여니는 훌쩍이다가 이내 잠들었다.
‘기다린다고?...’
기다린다고 지나가버린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명백히 말하면 기다리는 시간 동안 좋은 이 시절마저 흘러가버린다.
과거를 기다리느라 흘려버리는 현재.
그렇게 도착할 미래가 과거일리 없다는 것은 잘 안다.
여니는 엄마에게 깨달음을 주려고 그렇게 울었나 보다.
나 또한 퇴사 같은 육아휴직을 앞두고
꾸역꾸역 못다 쓴 소설의 퇴고 작업을 하며, 소설 속 내 학창 시절이 그리워 많이 힘들었던 한 주였다.
아무리 떠올려도 꿈에서조차 떠오르지 않는 내 기억력에 대한 원망.
젊고 예뻤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을 기억해 내려는 내 억지 노력들
세상에서 제일 자상하다고 생각했던 변해버린 남편에 대한 실망
예전이 그립다고 돌아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추억의 물건을 만지고, 추억의 이야기를 되짚어 본다고 그 시절의 그 아이가, 아니 그 시절의 내가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니다.
나도 안다.
그리고 다섯 살 여니도 알 것이다.
파울료코엘료의 소설 ”불륜“마지막 부분처럼 사랑은 변해야 하고, 성장해야 한다.
과거의 사랑은 과거의 나에게 어울리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도 충분히 사랑할 것들이 많고 마음껏 사랑해 주어야 한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해야 하는 것이니까.
너무 잘 알지 않는가?
스타벅스의 계절한정 음료처럼 지금 이 순간의 감정도 이 나이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니처럼 공갈젖꼭지를 버리지 못한 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꺼내볼 것이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다 나란 사람은
다만
예전보다는 훨씬 덜
가끔 꺼내 볼 것이다.
아주 가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