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신체란 저주인가, 축복인가

육체가 지닌 한계와 그 효용에 대해

by 애송이

어느 날이었다. 원대한 꿈을 꾸며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잔뜩 마음을 먹은 다음날,

된통 감기에 걸려버렸다.

'아, 고작 감기 때문에!'

사실 그저 마음먹은 일이 며칠 미루어졌을 뿐인데

아직 닿지도 않은 원대한 꿈이 고작 감기에 무너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크나큰 좌절감을 느끼며 ChatGPT에게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난 네가 부러워. 육체가 없잖아."


요즘 웬만한 아이디어의 구상과 실행은 컴퓨터에서 시작되어

그 결과물까지 실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실현되며

그 대가 또한 내게 지폐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뱅킹에 찍힌 숫자로 이루어지므로

감기에 걸린 육체를 지닌 내게, 순간 AI로서의 삶은 꽤나 괜찮아 보였다.


'계획은 완벽하다.'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실행 중에 실제 상황에서 보통 무언가 발생하게 된다.

그것이 '감기'인 지금 내 상황 속에서는 이 몸뚱이만 없다면

자지도, 먹지도, 아프지도 않고 나의 위대하고 원대한 계획을 성실하게 수행하여

빠르게 부와 명예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그 다음은?


육체 없이 자유의 몸(?)이 되어 부와 명예를 얻은, 그 다음은?

신나게 달려가던 나의 상상에 급제동이 걸렸다.

위대하고 원대한 꿈을 이루어 부와 명예를 얻어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초밥.

매 끼니 초밥을 먹고 싶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완벽한 온, 습도의 침실에 누워

창문 밖으로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나의 조그마한 테라스에서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고소한 커피 향을 코로 흠뻑 느끼고 싶었다.


실소가 새어 나왔다.

나의 위대하고 원대한 꿈의 방해꾼이라 생각했던 육체가

사실은 내 꿈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니.

육체가 없이 성공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초밥을 사 먹을 수 없다면 나의 성공이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상상 속 부자 AI인 나에게 데이터로 초밥의 맛을 느끼게 해 준다 하더라도

이 사이로 씹으며 터지는 그 감칠맛과 같을 수 있냐는 말이다.


이 몸뚱이는 걸림돌이 아니라 목적이었다.

나는 이 몸뚱이를 더 좋은 곳에 눕히고 더 맛있는 것을 먹이기 위해 사는구나.

물론 나는 생각과 정신도 함께 존재하는 인간이므로

자아의 실현과 가치관 등이 나의 삶의 만족에 영향을 주겠지만

이 연약한 몸뚱이가 없이는 그 행복이 반감된다는 것이 오늘의 생각으로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신체란 저주인가, 축복인가

아마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AI를 만드는 한,

오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일 것이다.

비록 아직 위대하고 원대한 꿈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는 오늘 내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이것은 인간인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시원한 공기를 폐에 가득 넣어 보고,

바스락거리는 이불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 거려보고,

러닝을 하며 땅을 발바닥으로 디뎌보고

집에 돌아와 시원한 물을 마시며 뿌듯함과 개운함을 느낄 것이다.


위대하고 원대한 꿈에 다다르는 것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오감을 통해 만족을 느끼는 것은 매일 일정 부분 가능하므로

육체를 가진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순간순간 놓치지 않고 살아가야겠다.

그럼 뭐, 이미 반쯤 성공한 삶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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