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Review

여말선초의 이야기를 담은 퓨전 사극 - 뮤지컬 창업

나라를 처음으로 엶

by 지애
때는 고려 말 정치가 썩고 썩어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고려왕조에 대한 불만이 세상을 뒤덮는다. 이때 정몽주는 고려에 대한 충성심으로 고려를 개혁해서 정치를 바로잡으려 하지만, 정도전은 이성계를 옹립해 새로운 왕조를 수립하여 나라를 바꾸려 한다. 정도전과 정몽주는 서로의 가치관이 달라 대립하고 이성계는 이 둘과 같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 하는데...

- 뮤지컬 <창업> 시놉시스


뮤지컬 <창업>은 조선의 3대 왕이었던 이방원을 중심인물로 설정하여 혼란스러운 고려 말기부터 격동기인 조선 초기까지의 사건들을 다루었다. 이미 위화도 회군이 진행된 시점으로 고려는 망조의 색이 만연했으나 끝까지 고려의 충신이었던 정몽주, 그와 반대로 새 왕조를 설계했던 정도전과 이방원의 대립을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처럼 보여준다.


조선 개국은 태조 이성계와 그를 도왔던 급진 개혁파에 의해 실현되었으나 진정한 조선의 창업은 태종 이방원이 완성했다. 그렇기에 뮤지컬은 정치권력의 실질적 주도권을 놓고 경쟁을 벌였던 이방원과 정도전의 충돌인 ‘왕자의 난’으로 마무리된다. 완전한 창업을 꿈꾸며 조선 개국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던 이방원 이면의 모습을 아버지인 이성계와 고려의 충신 정몽주,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과의 관계 속 대립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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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은 퓨전 사극으로 역사적 사건에 치중하기보다 그 이면에 있는 인물의 개인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데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재해석이 들어간 부분은 감안해야 한다. 극이 시작하기 전에도 해설자가 나와서 한 번 언급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참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대적 어휘의 사용이라든지 실제 정몽주와 정도전은 5살의 나이 차가 있지만 동갑내기 친우로 나온다는 점 등이 있다.


그럼에도 몇몇 부분에서 의문이 들었다. 이성계의 경우 장군으로서의 위엄보다는 농담조에 가까운 말투와 행동을 보여주어 가볍게 즐길 수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조선을 건국한 왕으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특히 신덕왕후의 경우 극 중에서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 그가 가진 야망과 내밀한 감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실제 신덕왕후에게 이방원은 아들인 방석의 왕세자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였으며, 이방원에게 신덕왕후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데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들의 관계를 가족애로 포장하기에 어폐가 있어 보였다.


[창업] 메인 포스터.jpg


신덕왕후의 역할에 대한 해석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력과 가창력으로 극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았다. 특히 신덕왕후의 랩이 신선했다. 이방원과 정몽주, 정도전의 서로 다른 정치적 이상의 차이로 진중한 분위기를 풍기는 와중에 ‘퓨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역시나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였다. 무대 위에서 흘러내리는 하여가와 단심가의 글자들이 마치 서로 함께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단심가의 결연하고 단호한 시구를 팬텀싱어 ‘인기현상’ 팀의 멤버인 박상돈 님께서 묵직한 바리톤으로 그 깊이를 더해주어,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정몽주의 고려에 대한 충절을 느낄 수 있었다.




※ 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 문지애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 #문화는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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