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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Mar 24. 2024

동양인이라는 숙명

베를린은 내 집이 될 수 있을까?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3년을 살면서 동양인으로 비춰진다는 것은 중국인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중국인으로 오해된다는 것 보다는 중국인이 말라위에서 개인 사업을 운영하면서 현지인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중국인으로 보여지는 것이 싫었다. 나는 말라위에서 내 개인 사업도 없었고 산골 마을에서 마을 주민들과 살았는데 시내에 나갈 때마다 중국인으로 오해를 받으면서 불필요한 시기와 불평을 감내해야 했다. 때로는 나에게 아부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내 가게'에 취직하고 싶다면서... (미안한데, 저는 제 가게가 없어요... ㅠㅠ) 


그러다가 런던에서 석사 과정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에서 살게 되었고, 수많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영국식 영어와 문화적 표현을 이해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계속 아는 척하고 이해하는 척하는 식의 삶을 1년 반 정도 하다보니 너무나 지쳤다. 단어마다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겠는데 그게 영국의 문화적 맥락에서 웃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반박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지만 '눈치'로 이해하는 척 했다. 


그러다 베를린에 오니 독일어를 쓰지만 도시의 특성상 영어만 써도 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평균 사람들보단 영어를 잘 하지만 독일어 실력은 막 독일에 온 외국인마냥 버거워했다. 비록 동양인이지만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동야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굳이 보여주거나 만족시켜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은 나를 더욱 더 반항적이고 비전형적인 동양인의 모습을 재현하게 하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근데 말라위와 런던에서와는 다르게 그냥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없이 자유롭고 싶다는 생가이 더 강했다. 


전형적인 동양인의 모습을 보이든, 무엇이 전형적인 것이라고 하든 그와 엇나가는 행동을 하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관심과 주목을 받아야 했고, 그때마다 나는 그냥 나 자신이 되고 싶었다. 동양인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서. 


비록 나의 의도는 의도적으로 동양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도 어떤 행동을 하든 상대들은 나를 동양인이라는 기준으로 나를 판단했고 내가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같은 한국인을 만나도 그들끼리 한국어로 이야기를 해도 굳이 끼어들지 않았다. 그냥 나로 존재하고 싶었기 때문에. 


한국에 사는 것보다 타지에 살 때 도대체 나라는 존재를 , 사람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끊여러 상황 속에서 되새김질을 하게 되는데 아직도 어떻게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내 짝이 아프리카 사람이라서 그런지 우리 둘이 같이 다니면 지하철 안이든, 트램이든, 기차 안이든 온갖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데 자동적으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그런 시선은 부담스럽다. 도대체 우리의 생김새는 왜 그렇게 타인에게 중요한 것일까... 중요하기보단 눈에 띄는 것이겠지... 그럴 때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이들이 반갑다. 호기심이든, 낭만화든, 대화와 소통을 시도하는 이들과는 서로를 이해할 공간을 만들어가는데 그저 눈길만 주는 이들에게는 도대체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모르겠다... 


신경을 안 쓰는 것이 맞는지, 신경을 써서 무언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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