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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Nov 13. 2017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서른 한살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 사실은 여행에서 자아를 찾는 다는 건 불가능하단 것이다. 하루 24시간 365일을 보내고 있는 한국에서도 찾지 못한 내 본모습을 단 한번도 살아본적 없는 낯선 땅에 가서야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게 어쩌면 넌센스였다. 그냥 나는 현실을 도피하고픈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했던 거다. 자아를 찾겠다느니 한국 사회가 나를 옥죈다느니 남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멋지다고 생각해줄 법한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했다.


하지만 사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다 포기하고 싶어서 떠났다. 이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다른 나라로 도피하고 싶었다. 엉덩이는 비록 이 한국땅에 딛고 있어도, 고개만큼은 다른 나라에 들이 밀고 싶었다. 공기만이라도 낯선 것을 마시고 싶었다. 자아를 찾겠다고 떠난 여행에서 왜 자아를 찾지 못했는지, 왜 여행에 가면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지 돌아와서 후회하곤 했지만 후회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그럴 수 밖에 혹은 그렇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여행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거창한 이유 따위는 붙이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한다. 지금 삶이 지긋지긋해서 떠나고 싶은 거라고. 이렇게 사는 삶 말고도 다르게 사는 삶도 있단 걸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고, 그걸 봄으로서 내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아 떠나는 거라고. 그리고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싶어서 떠나는 거라고. 미래, 돈, 이직, 결혼, 부모님, 대출이자, 효도, 퇴직연금...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잠시나마 멀어지고 싶어서 떠나는 거라고.


저 단순한 이유 때문에 나는 그렇게 매번 비싼 돈을 들여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하고 짐을 꾸리고 여행을 떠난다.


(c) 한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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