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3일째 비가 그치지 않는 오후의 거리는 회색 빛이다. 자주 가는 학교 앞 카페를 찾았다. 검은색 머그잔이 오늘의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더 잘 일을 할 수 없을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지, 더 성공할 수 없는지, 누구나 할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내 고민이다.
사이 트웜블리(Cy Twombly)의 칠판 그림이 딱 내 마음과 같다. 정돈된 듯, 정돈되지 않은 감정이 일렬로 나열된 그의 드로잉처럼 내 생각들이 병치한다. 그의 예술적 기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낙서는 단순하지 않다. 서예적이며, 에너지가 있는 리듬과 율동이 있다. 흔히 중성적인 색으로 여겨지는 이 회색 배경은 칙칙함 대신 모호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Untitled, (Rome) 1970
부드러운 잿빛 색감부터 짙은 숯색까지 다양한 회색 톤이 담겨있다. 그 속에 겹겹이 쌓인 낙서엔 모든 의미가 함축된 스트로크로 전환되어 전체 구도에 기여한다. 서로 연결된 복잡한 무작위적 선의 그물망 속에서도 일련의 규칙이 있다.
"It's instinctive in a certain kind of painting... It's like a nervous system. It's not described, it's happening. The feeling is going on with the task. The line is the feeling, from a soft thing, a dreamy thing, to something hard, something arid, something lonely, something ending, something beginning." - Cy Twombly
"어떤 종류의 그림에서는 이건 본능적인 거죠... 신경계와 같은 것이죠. 묘사된 것이 아니라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그 느낌은 작업과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은 부드러운 것, 몽환적인 것, 딱딱한 것, 건조한 것, 외로운 것, 끝나는 것, 시작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느낌입니다." (글쓴이 번역)
딱히 이 그림에도 이렇다 할 뚜렷한 주제가 없어 보인다. 다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여러 가지 고민이 샘솟는 나의 감정과 복잡성, 혹은 단순함과 같다. 그의 선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내 생각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다시 생각이 하나로 수렴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