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자리, 같은 시간

by 맑을담

이른 출근길, 버스 안은 고요했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가로등과 나무들,

희미한 아파트 불빛이 흘러갔다.

아이들은 아직 잠들어 있을 테고,

아내는 부엌에서 하루를 시작했겠지.


버스 맨 뒤쪽, 창가 자리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이어폰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보며 작은 숨결을 고르고 있었다.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느리게 정돈되어 있었다.


크고 쌍꺼풀진 눈,

연한 립,

다갈색 머리를 질끈 묶은 단정한 뒷모습.

슬랙스와 재킷 차림,

손끝으로 잔머리를 쓸어 올리는 동작.


볼륨을 조절하듯 이어폰 줄을 잡는 손가락,

창밖을 응시하는 시선의 각도,

가볍게 꼬인 팔의 각도까지.


그 모든 사소한 동작들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면 심장이 살짝 뛰었고,

시선을 떼면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몇 정거장 동안 반복되는 긴장과 설렘 속에서

나는 창밖만 바라보았다.

버스의 진동,

주변의 발소리,

엔진 소리마저 멀어졌다.





회사에 도착하자,

오늘 새로 입사한 경력직 직원이 있다고 했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버스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조용히 걸음을 옮기고,

동료의 인사에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자기 자리를 확인한 뒤,

조용히 앉았다.


나는 서류를 정리하며

그녀가 지나갈 길을 자연스럽게 비켜주었다.

작은 스침에도 신경을 쓰며,

불편하지 않게.





문득,

버스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음악에 몰입하던 표정,

볼륨을 조절하던 손끝,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이

가슴 안쪽에 남아 있었다.


결혼 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왜인지 모르게

그녀의 움직임에 시선이 머물렀다.





점심시간,

커피를 사러 나가던 복도에서

그녀와 잠시 시선이 마주쳤다.


짧은 순간,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나는 미세하게 멈춰섰다.

그 짧은 인사가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다.


평범한 하루가

조금씩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아내의 빠른 말투가 뒤섞인 집 안에서

나는 묘한 긴장감을 되새겼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분명 같았는데,

무언가 달라진 듯한 하루였다.


평범한 출근길의 한 장면이

예상치 못한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