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시작

by 맑을담

그날, 회사에서 외부 행사가 있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이어지는 일정.


혼자가 아니라면,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하루의 온도를 결정했다.


그녀는 행사장에 도착하자

조용히 자료를 펼쳤다.

사람들이 오가며 떠드는 소리 속에서도

그녀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잠시 시선을 돌려

그녀의 작은 행동들을 관찰했다.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서류를 넘기던 모습,

차분히 필기하는 자세,

작은 숨결의 리듬까지.


모든 게 단정했다.

어쩌면 그 단정함이,

이 복잡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고요한 결을 만들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림 좋아하시죠?”

내가 던진 말에

그녀가 잠시 고개를 들었다.


“네, 좋아해요.

오치균 작가의 감나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시야가 환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짧은 문장마다 작은 온기가 배어 있었다.

나는 그 온도의 변화를 느꼈다.

조용한 사람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때만 보여주는 미세한 빛 같은 것.





행사가 예상보다 일찍 끝난 오후,

근처에 있는 작은 전시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별다른 약속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전시 공간 안에서 그녀는

작품 하나하나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질감을 가늠하듯 고개를 기울이고,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그림 속 색을 오래 머물러 보는 사람.


그녀의 움직임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한 점을 오래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미소를 짓는 그 표정이

묘하게 마음을 멈추게 했다.





전시를 나와 카페에 들렀다.

조용한 음악, 낮은 조도,

그녀의 느릿한 발걸음.


메뉴판을 고를 때의 손끝,

잠깐 웃는 표정,

커피를 건네받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습관까지.


나는 자연스럽게 그 모든 움직임을 따라갔다.

그녀의 말 한마디보다,

그 ‘사이’의 공기가 오래 남았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가

작게 미소 지었다.


평소 무표정하던 얼굴이

햇빛에 닿으며 잠깐 풀렸다.

그 짧은 순간이

마음속 어딘가를 살짝 건드렸다.


눈길과 말투, 손끝과 표정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그녀의 세계.

그 안에서 나는

이상하게 조용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아내의 활기찬 목소리가

저녁의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런데 마음 한켠에는

오늘 하루 그녀와 스쳐간

조용한 순간들이

계속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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