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baby, Goodbye mom
호스피스의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을 맞이하기까지 평균 기간은 3주라고 했지만, 엄마는 벌써 두 달 가까운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엄마가 버틴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빨리 이 고통을 끝내고 싶어했지만, 그건 엄마를 포함한 그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주, 한 주 엄마의 상태가 나빠진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광주로 향했다. 갈 때마다 오늘은 엄마의 상태가 어떨지, 오늘은 얼마나 아파하실지 걱정하며 병실 커튼을 젖혔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지난 주보다 더 야위고 말 그대로 생기(生氣), 생의 기운을 잃은 모습이었다.
내 기억 속엔 언제나 총명하고 자존심 세고 카랑카랑한 엄마인데, 엄마의 눈을 볼 때마다 생명이 꺼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입원했던 호스피스 병동은 대학 병원에 있는 통증 완화 병동이다 보니, 내가 상상했던 하-얗고 신성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모든 게 엄마가 항암할 때 입원했던 병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이 호스피스 병동이구나를 깨닫게 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두가 떠난 병실
1주일에 한 번씩 엄마 병실을 찾을 때마다 병실의 사람들이 바뀌어 있었다. 입원 첫 주에 시끄러운 드라마 시청으로 엄마를 괴롭게 하던 뇌 전이 환자도, '똥을 예쁘게 싸줘서 고맙다며' 치매 노모를 지극히 간병하던 효녀도 그 다음 주에 가면 없어져 있었다. 모두 퇴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 임종에 가까워져 임종실로 불리우는 1인실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병실 가장 끝 창가 자리에서 엄마는 커튼 너머로 그들이 떠나는 것을 모두 듣고 있었을 것이다. 눈 깜박임, 고개로 겨우 의사를 표현하는 부모에게 '내가 누군지 알겠냐'고 묻는 자식들의 두려운 목소리를, 환자가 떠난 병상을 정리하는 간호사들의 분주함을 엄마는 매주, 매일을 들어야했을 것이다.
어느 날에는 오늘은 또 어떤 환자들로 바뀌어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병실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엄마만 덩그러니 창가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던 친구들이 모두 집에 가버린 술래처럼. 엄마는 그렇게 미동도 없이, 어두컴컴한 병실에 혼자 있었다.
모두가 떠난 병실에서 엄마는 내게 언제까지 살아야 하냐고 자주 물었다. 그런 엄마에게 '그건 아무도 알 수가 없다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차마 엄마에게 하루라도 곁에 더 있어달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가 하루 빨리 편안해졌으면 했다.
'엄마가 떠난 뒤 내가 겪을 고통과 슬픔은 엄마가 지금 겪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테니, 그 고통은 내가 모두 감내하겠다고. 이제 엄마를 제발 편안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면 편안해지길 기도했다가도, 그 기도 역시 이 고통을 끝내고 싶은 내 욕심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내 자신이 싫어졌다.
견디는 수밖에
호스피스에서의 시간은 갈수록 더디게 흘러갔다. 엄마는 식사는 커녕 유동식조차 먹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기다릴 식사 시간도 없었다. 아침마다 오는 담당 의사의 회진도 의미가 없었다. 의사도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진통제와 수면제 처방 뿐이라 의사도 머쓱하게 나타났다가 쭈뼛거리며 사라졌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어제보다 더 나빠진 컨디션을 견디고, 이따금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을 견디고, 마약성 진통제가 주는 부작용들을 견디는 것. 그 뿐이었다. 흘러갈 방향도, 목적도 없는 시간들의 연속. 그나마 남동생의 아기가 곧 태어난다는 사실이 엄마의 시간을 흐르게 했지만, 그 역시 목적을 잃은지 오래였다.
누군가는 엄마가 남동생의 아기를 보려고 기다린다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엄마는 내 아기가 태어나고 두 달이 지나 태어나는 남동생의 아기까지 보게 될까봐 걱정했다. 그런 엄마에게 남동생 아기를 봐야지 무슨 소리냐며 타박했지만, 오죽하면 그런 마음이 들까 싶어 속으로 울었다.
내가 때려잡은 바퀴벌레도 바둥거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롭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움을 넘어 전생의 벌을 한 번에 받는 기분이다. 2025년 여름, 엄마와 우리 가족 모두, 그 영원같은 시간을 견디고 또 견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