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출산 덕분에 일을 멈추게 되면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바로 AI 공부였다. 마케터였던 나는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고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에는 추진력이 있는 편이었고,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매니징하는 것에는 언제나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언제나 작아지는 영역이 있었으니 바로 개발, 기술적인 부분이었다. 이과, 공대를 나왔지만 태어나길 문과 머리로 태어난 나에게 API니 OAuth니 이런 컴퓨터 언어들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만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에겐 언제나 이런 기술적인 면들을 기가 막히게 채워주는 동료가 늘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스픽에서 늘 옆자리에 앉던 민규님인데 민규님은 언제나 그로스 마케터로만 소개하기엔 아쉬운 사람이었다. 어떤 날은 웹 페이지를 개발해서 던져 주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GPT를 사용한 번역 사이트를 만들어서 배포하거나, 마케팅 퍼널을 자동화해서 우리의 일을 줄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민규님과 일을 하니 처음엔 그저 신기하고 편했다. 내가 '이케이케'라고 하면 어느새 뚝딱 만들어지곤 했으니까.
그런데 점점 AI가 세상을 바꾸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내가 처음 스픽에 입사할 때만 해도 영어 번역을 파파고로 했었는데 금새 챗지피티 없이는 문서 작성이 어려워졌고, 이제 단순한 번역과 이미지 생성을 넘어 AI를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시장에서 돈을 버는 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아기를 낳고 100일이 지난 시점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공부라기 보다 육퇴 후 새벽 시간을 이용해 AI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스마트폰이 탄생했을때에도 스마트폰을 공부한 게 아니라 이리 저리 써보면서 지금의 스마트폰 중독 수준까지 이르지 않았는가. 그러니 AI도 지금은 낯설지만 곧 익숙해지고 능수능란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매일 밤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경험상 이론 공부보다는 직접 만들면서 배우는 게 빠르고, 그렇게 습득한 지식이 진짜 내 것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간단한 가족 대화 카드게임 처럼 서버나 DB 없이도 HTML로만 만들 수 있는 것들부터 만들어봤다. 결과물은 굉장히 하찮은데 만드는 과정은 왜이렇게 어려운지, '하나씩 설명해줄래?' '안되는데..뭐가 잘못된 걸까?' 의 연속. GPT마저 나를 답답해 하는 것 같고 내가 덜떨어지는 느낌이 드는데 이 느낌 너무 오랜만이다.
그런데 나는 알고있다. 이 덜떨어진 느낌, 앞으로 전진하는데 전진하는 것 같지 않은 이 느낌 바로 뒤에는 엄청난 성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더군다나 육아를 하면서 점점 아기의 수면, 식사, 배변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주는데에 집중하다 보니, 독해나 사고력같은 뇌의 고급 기능들이 퇴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던 차라 이 느낌이 반갑기까지 했다.
구글 AI 스튜디오를 시작으로, 각종 바이브코딩 툴을 쓰면서 서비스를 만들어가다 보니 처음 만든 가족 대화 카드가 귀여워보일만큼 성장한 내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저것 만들고, 고치고, 수정하고 배우는 이 과정이 너무 즐거운걸 보면서 '나는 진짜 만드는 걸 좋아하는 크리에이터구나'를 느낀다.
나는 글을 쓸 때에도 글의 뼈대를 먼저 짜고 그 구조 안에서 살을 붙여가는 식으로 글을 완성하는 방식과 과정을 너무 사랑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큰 그림이 먼저 만들어지고, 디테일들을 더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큐에 쑥 꿰어지는 완성품이 되는 그 재미를 요즘 AI 프로덕트를 만들면서 느끼고 있다.
(아마도 이걸로 돈을 벌어야하거나 목표를 달성해야한다는 과제 없이 순수한 배움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도 내 즐거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듯 하다)
AI와 깊은 대화를 시작한지 한 달쯤 되니 이제는 개발 언어도 많이 익숙해지고, 맨날 개발자, 디자이너가 없어서 막혔던 부분이 뚫리니 날개를 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동시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되기도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 세상에서 이재는 어떻게 키워야할까, 앞으로의 근무 형태는 어떻게 꾸려야할지, 어떤 사람들이 이 시장에서 살아남아 신흥 부자가 될까 생각이 많아진다.
이런 생각들을 AI로 증명사진을 만들어주는 서비스‘인핸즈’를 런칭한 인표에게 털어 놓으니 인표가 그랬다.
'작년에 같은 피쳐로 해커톤을 진행했을 때 그때는 AI 수준이 지금만큼 좋지 않아서 실패했었다고. 그런데 1년이 지나니까 가능해졌다고. AI는 앞으로 더 많이 발전할텐데 중요한 건 그 흐름에서 누가 계속 AI를 때리고 있느냐 인것 같다고(우리는 GPT를 붙잡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두고 싸운다, 때린다라는 표현을 자주 써왔다)'
맞다. 나는 지금 은둔의 복서가 매일 미트를 치듯 AI와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동시에 나의 유니크함을 드러내는 법을 훈련하고 이 휘몰아치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목표 지점까지 헤엄칠 체력을 길러야 한다. 2,000년대에 쇼핑몰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2010년도에 부자가 되었고, 2010년도에 IT에 뛰어든 사람들이 지금의 신흥 부자가 되었듯 큰 변화에 쫄지 않고, 차분하게 내 눈앞의 기회를 하나씩 잡아가면 되는 것이다.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긴 호흡으로 가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