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_10(스물다섯 번째 서평)
얼마 전 읽었던 '아몬드'와 비교하면,
글씨 크기는 절반이고, 책의 두께는 3배 정도 되는, 사피엔스와 같은 벽돌책이다.
(책의 표지를 부드럽게 만들에 베개로 사용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봄.)
"왜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뉴기니의 한 정치가(친구?)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저자의 여정이, 이 벽돌책이 탄생한 출발점이다.
내가 이 책을 만나게 된 출발점은 누군가를 만나러 카페를 찾았다가 우연히 한 무리(?)의 독서모임 모습을 보고, 그 사람들이 각자의 책을 소개할 때 보여줬던 다양한 책들 중에, 그 안에서 누군가가 이 무거운 벽돌을 들고 와 멋들어지게(?) 책을 소개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다.
한참이나 빈약하기만 한 나의 출발점이다.
솔직히, 비슷한 시기에 유명세를 탔던 사피엔스 시리즈보다는 이 책을 더 재밌게 본 것 같다.
코로나 시대에 살며, 세균에 대한 내용과 인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인류의 다양한 역사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른 시간대에 발전해온 이유를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로 해석한 내용들이 충분히 흥미로웠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전으로 모든 전쟁은 싸움으로 인한 사망자들보다 세균(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들이 많았다는 사실에 근거한 내용은 충분히 몰입도를 높여주었다.
기후, 집단, 무기, 세균, 철, 정치, 경제, 철학까지..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섭렵하고 있다.
한 인간이 이 정도의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는다. 감히 좋다, 나쁘다의 서평을 쓰기엔 한참이나 부족한 지식량을 드러내어야 하기에 서평 자체를 피하고 싶을 정도다.
이 벽돌책에서 설명해주는 내용을 내 머릿속에 전부 욱여넣기는 어렵겠지만, 아주 작은 일부분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내 지식 세포와 딱 달라붙어서 조금 키울 수는 있을 듯하다. 후에 어느 자리에선가 기회가 생긴다면, 수박 겉 핥기 식의 아는 척으로 약간의 허세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비열한 웃음도 한번 해본다.
4부로 엮어진 내용 외에 마지막 에필로그는, 특히 한국 독자에게는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에필로그만 30페이지가 넘으니, '에필로그'란 말이 부끄럽게 느껴지지만,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추가 논문은 한국인이 보기에도 일본인이 보기에도 아주 객관적인 느낌이다. 일본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우리는 쉬이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의 역사도, 때론 그들과 엮인 우리의 역사도 주관적 견해가 무의식적으로 더해진다. 그런 의미로 보면, 파란색 눈을 가진 학자가 쓴 이 30페이지는 냉철한 논쟁을 하지 못하는 일본 독자와 한쪽 눈은 감고 보는 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무거운 이 책의 다양한 이야기를 읽고, 하나의 문장으로 결론을 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좀 추려보자면, 동, 서양 그리고 각 대륙, 그리고 민족(게르만 등으로 이름 붙여진)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지리적) 차이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엔 엄청난 위험이 있을 거라 예상이 되어도,
신물을 접하는 두려움이 내 안에 가득 차도,
주변에 함께 하는 동료가 없더라도,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려는 노력. 바로 그 노력이 역사를 다르게 진행시켰다.
새로운 것이 모두 우리에게 득(得)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失)이 된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겪는 또 다른 파생적인 것들이 발견되고 생겨나므로, 나쁘게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는 이 두 가지와 끝없이 함께 해왔고, 그것이 인간과 세균이라 할지라도 결국엔 또 한걸음 나아갔다.
많이 아파했고,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많은 죽음에 이르러도.. 절대 돌아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