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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나에게 쓰는 영화 감상문

by 안빈락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화려한 볼거리나 극적인 사건 없이, 도쿄의 공공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소박한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는 단순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과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조명하며,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깊은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경험을 안겨주는 이 영화는, 평범함 속에서 발견하는 완벽한 순간들을 포착하며,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히라야마의 일상은 지극히 규칙적이고 반복적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식물을 돌보고, 캔커피를 마시며, 정해진 경로를 따라 화장실을 청소한다. 퇴근 후에는 목욕탕에 가고, 간소한 식사를 하고, 책을 읽으며 잠자리에 든다. 언뜻 보면 지루하고 무료해 보일 수 있는 일상이지만, 히라야마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리듬과 만족을 찾아간다. 그는 매 순간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며,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세심하게 반응한다. 마치 숙련된 장인이 도구를 다루듯, 그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행위에 몰두하며 완벽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그의 일상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관객 스스로 그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그는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도 크지 않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 작은 습관 속에서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오래된 카메라로 나무의 그림자를 찍거나, 퇴근 후 공원에서 책을 읽는 모습,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들은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을 보여준다.

히라야마의 일상에 조카 니코와 같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작은 변화가 생기지만, 그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다. 그는 주변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만,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삶의 균형과 조화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자신만의 리듬과 속도로 살아가는 소박한 삶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연과 예술을 통해 삶의 풍요로움을 느낀다. 그는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로 만족하며, 자신의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작은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영상미는 히라야마의 내면을 더욱 깊이 있게 표현한다. 흑백으로 표현된 꿈이나 회상 장면은 그의 과거와 트라우마를 암시하며, 컬러로 표현된 현실은 그의 현재와 소박한 일상을 강조한다. 영화에 삽입된 1960~70년대 록 음악들은 장면의 분위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히라야마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꿈속에서 히라야마는 불안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나무 그림자, 어둠, 낯선 공간들은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불안과 갈등을 보여준다. 그는 과거에 놓친 기회,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후회를 품고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흑백으로 표현된 꿈 장면은 현실의 컬러풀한 일상과 대비되어, 히라야마가 현실에서는 억누르고 있는 감정들을 꿈속에서 표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가 찍는 흑백필름 사진은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흑백필름 사진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기억, 시간의 흐름과 변화, 예술적 감수성, 내면의 성찰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는 나무의 그림자를 주로 찍으며,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의 인식을 보여준다.

"퍼펙트 데이즈"는 화려한 볼거리나 극적인 스토리가 없지만,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영화는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소박한 삶의 가치를, 경쟁과 속도보다는 자신만의 리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쁜 일상에 쫓겨 잊고 지냈던 소소한 행복과 감사함을 되찾게 해주는 이 영화는,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히라야마의 일상을 통해 우리는 일상 속의 작은 것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깨달을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히라야마의 복잡미묘한 표정 연기는 압권이다. 그는 미소짓는 듯, 슬퍼하는 듯, 혹은 그 모든 감정을 초월한 듯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의 표정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여전히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퍼펙트 데이즈”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큰 깨달음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고,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엔딩 크레딧 이후에 '코모레비'라는 일본말의 뜻을 설명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걸 여기에 적으면 심각한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생략한다.




나라야, 나라야, 일상을 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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