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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Dec 12. 2023

전통의 묘미

'무형'문화재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찾아

왜 불현듯 전통이냐라고 종종 질문을 받는다.

가벼운 자리라면 갑자기 사랑에 빠졌다고 웃으며 말하지만,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쉽게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떤 대답을 기대했던 걸까..

이런 일들을 종종 겪다 보니 그 이유를 반추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형태의 느낌을 볼품없는 글솜씨로 표현한다는 것이 쓰기도 전에 답답할 노릇이지만 대략 묘사해 보자면 이렇다.


장인들이 하는 대부분의 과정은 반복되는 동작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덩달아 몰입하게 된다. 처음과 끝에 정신이 가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지금에만 집중을 하기 때문에 수천 번의 반복이 가능해진다. 그것도 수십 년을 반복했을 테니 그 끈기와 인내가 단숨에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런 과정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힘들거나 지겹지 않으세요?'라고 묻고 싶은 적이 있지만, 그들의 표정은 이미 자신의 손과 사물의 물아일체를 보여준다. 지겹거나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쪼그리거나 웅크려 몸에 모든 감각을 손에 집중한 장인은 사각사각 나무를 깎기도 하고 한 곳에 경쾌하게 메질을 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에서 나는 아마 삶의 정수를 보았던 것 같다. 어느 한순간에 완성되는 드라마틱한 과정이 아닌 한 땀 한 땀 깎아서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리이지 않을까 싶다. 노력대비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했던 나 자신도 결국에는 묵묵히 매일 해나가는 장인의 모습 속에서 닮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손으로 직접 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술이 발전된 때에 저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인가라고 따진다면, 그래서 전통문화가 점점 사라지는 것 아니겠냐고 하면 딱히 아니라고 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본래 효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더 깊게 들어가자면 힘들어도 매일 반복하는 태도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통을 사랑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다시 요즘 기술이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장인의 기술은 자연을 이해하는 데에서 나온다. 가야금의 몸통을 만들기 위해 7년여를 노지에 널어둔다. 비가 오면 비를 맞히고 눈이 오면 눈을 맞힌다. 그렇게 얼고 녹고 건조되는 과정을 겪은 오동나무는 점점 섬유질이 끊어지고 썩는 것이 아닌 삭은 상태가 된다. 장인은 나무의 물성과 가야금의 조건을 이해하고 자연을 이용한다. 이런 모습 속에서 나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금 느꼈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기준이 자연이다.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 없고 그 힘을 이용하여 제작해 나간다. 겸손하기도 하고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첨단의 기술의 파급력은 대단하지만 대부분은 그 에너지가 넘쳐흘러 자연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반면 자연스러운 장인의 작업 과정은 편안하다. 부담스러운 흔적들이 많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담아내는 영상은 장인의 손도 많이 등장하지만, 자연의 인서트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장인과 자연의 콜라보인 셈이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인식하는 마음이 내가 전통을 사랑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내가 느낀 짜릿한 순간의 감정을 여러 각도로 지켜본 결과 아직까지 두 가지 정도밖에 찾아내질 못했다. 이 두 가지만 하더라도 전통씬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 볼 만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보이는 것 사이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고, 그것은 시대를 떠나 보편타당한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요즘 여러 영상에서 정상을 지키는 많은 사람들이 지속성과 인내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많이 목격한다. 장인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기 위해 노력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비단 전통이라는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전통문화는 결국 사람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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