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인 당신이 공장에서 일해 봐야 하는 세 가지 이유

공장,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

by 유지혜

제약 공장에 약사가 없어서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왜일까요? 공장은 어둡고 힘들다는 이미지 때문일 수도 있고, ‘GMP’라는 까다로운 규칙 속에서 일하다 자칫 면허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부담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비슷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공장엔 규칙이 많긴 하지만, 그만큼 체계적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오히려 기준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배워야 할 점도 명확하고, 처음엔 복잡하게만 보이던 규정들이 어느 순간 “이래서 필요한 거구나” 하고 이해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공장이라는 공간이 덜 낯설고, 오히려 성장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오늘은 약사(특히 새내기 약사)들이 공장에서 일해봤으면 하는 이유 세 가지를 말해보려고 합니다.




1. 약사 직능을 지킬 수 있다


예전엔 ‘면허만 걸어놓는 약사’라는 표현을 많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약사감시 현장에서 그런 약사들을 종종 보기도 했습니다.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이름만 올려놓는 경우 말이죠. 물론 결정적인 순간엔 책임을 피할 순 없겠지만 저는 그렇게 일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약사 스스로 역할을 줄여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공장에서 제조관리자로 일한다는 것은 약사라는 이름을 실무에 제대로 녹여낼 수 있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 2년이긴 하지만 제가 그동안 그간 현장에서 일하며 느낀 건, ‘이 자리가 그냥 형식적인 게 아니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문서 하나하나 서명을 하며 책임을 지려면 내용을 이해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답을 낼 수 있어야 하니까요. 가끔은 업무량과 책임 범위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공장에서 약사의 자리를 공고히 만드는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직능을 지킨다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내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죠. 거기서 따라오는 직업적인 자부심도 생각보다 큰 것 같습니다.



2. 배운 걸 제대로 써먹을 수 있다


학부 시절 배웠던 ‘제제학’이나 ‘약사법규’ 같은 과목들, 달달 외우면서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별 의미가 없다고도 생각했는데요. 공장에서 일하다 보면 예전에 배운 지식이 불쑥불쑥 연결될 때가 있습니다. “아, 그때 배운 게 이거구나"하고 되새기게 되죠.

처음엔 약사 면허만으로 들어올 수 있지만, 일하면서 거기에 나만의 '전문성'을 얹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저는 이 “플러스 알파”를 만드는 과정이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장에서 약을 만들고 출하하는 업무는 거의 '종합예술'에 가깝거든요. 화학, 생물학, 미생물학이 기본이고, 심지어 가끔은 물리학과 기계공학까지 필요합니다. 한 가지 지식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거의 없고, 여러 학문들이 서로 연결되어야 답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들이 하나씩 다시 살아나고, 이걸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기도 합니다. 그게 큰 보람이죠. “전공을 살린다”는 것이, 실제로 약을 만들고 품질을 보증하는 과정 안에 있으면 제대로 실감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3. 글로벌한 업무를 접할 수 있다


공장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근무지 내에서만 일하는 건 아닙니다. 해외 규제기관 실사나 파트너사 오딧처럼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이 때, GMP와 회사 상황을 설명할 수 있으며, 기본적인 영어 소통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꼭 해외파가 아니어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죠.

물론 실사는 늘 긴장되는 자리이긴 합니다. 특히 '평가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 한 번 서 보게 되, 무척 많이 성장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실사를 받을 때 뿐만 아니라 공급업체 평가 때문에 인도나 중국 등 해외 공장을 오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로는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로 출장 갈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요. 이런 경험은 단순히 경력에 한 줄을 더하는 게 아니라, 직장인으로서 업무를 대하는 시야를 넓혀 주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공장은 생각보다 배울 게 많은 곳

공장에 막상 들어와 보면 배울 게 무척이나 많고, 하루하루 꽤 알차게 지나갑니다. 약사 면허를 기반으로, 꾸준히 전문성을 쌓으면서 커리어를 넓혀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요. (물론 지방 근무이기 때문에 조금은 고려해야 할 포인트가 있기도 합니다)


저는 조금 다른 길로 돌아 들어왔지만, 직접 겪어 보니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처음에는 “여긴 내 길이 아닐지도..?”라는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성장하는 것도 느낍니다. 물론 앞으로도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3년 뒤, 5년 뒤 제 모습이 어떨지 기대되기도 하고요.


많이 가지 않는 길에 기회가 있다고 하죠. 공장 약사가 바로 그런 길입니다. 후배 약사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공장도 충분히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요.




(표지이미지출처=대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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