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세계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디서나 '이방인'입니다.

by 검은 전구

오늘은 두 세계를 공존하며 살아본, 그리고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해 아시나요?


자라는 것은 한 세계에 안정적이게 그들의 사회에 물들어 자랐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특별하지 않은, 당연히 그 사회의 한 부분이었죠. 한 가지의 색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어느 날 다른 세계로의 발을 들였을 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서움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꿈을 짓밟고, 희생을 못 본 척하며 묵묵히 걸어야 하기도 하죠. 누군가의 기대를 부응하기 위해 고통을 숨 참으며 가기도 하죠.


숲에서 보이는 그 누구보다 하늘과 가까울 것 같은 나무들은 최소 20년, 아니면 최소 30~40년은 자랐을 겁니다. 땅속에서는 그 많고 두꺼운 뿌리를 내리면서 말이죠.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은, 원래의 '나'의 세계의 나무를 그루터기로 만들고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단순히 새로운 세계라는 사실에 부러움을 느끼며, 경험해보지 못한 더 넓고 비옥한 땅으로 가는 것이라 상상하곤 합니다.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죠. 새로운 곳으로 간 씨앗은 어떤 땅인지 모르고 일단 무작정 뿌리를 내립니다. 그 아래 시멘트가 있는지, 정말 비옥한 땅이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길을 잃습니다. 현실이란 그렇습니다. 남들보다 경험을 하지 못한 것들을 더 많이 하는 것도,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능력도, 다름을 인정하는 법도 빠르게 배웁니다.


그들은 이방인입니다.


몇 년 동안 뿌리를 내렸던 그루터기가 있는 곳은 '집'이었습니다. 새로 간 세계에서는 '집'이길 바랍니다.

그렇게 두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그 어디도 속하지 못하며, 그 어디도 속합니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이방인'이며 이전 세계에서는 '나그네'입니다.

어느 누가 '이방인'인지 '나그네'인지 묻는 다면, 답할 자신이 없습니다.

어쩌면 두 세계를 사는 사람으로서의 숙명일 수 있습니다.


누구나 비옥한 땅을 생각하며 자르고 떠나니까요. 그 땅이 비옥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비옥한 땅을 직접 만들어 뿌리를 내려야 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인 곳에서.


'나그네'인 곳에서도 더 이상 그들과 같은 일원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이럴 때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어요" 이제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새로운 세계에서 수없이 뿌리를 내렸지만, 이상한 곳으로 뿌리를 내렸는지 모릅니다. 흙 위로 뿌리는 올라오고, 바람이 불면 뿌리가 보이고 말라갑니다. 낙엽을 떨어뜨려 비옥한 땅을 만드려고 했으나, 몇 번이고 낙엽을 떨어트리기 전 말라서 낙엽을 만들 힘조차 없는 나무가 되어갑니다. 그렇게 다시 그루터기로 돌아가 나무테를 수없이 세며, 그 사이 빈자리에 다시 씨를 넣으면. '나그네'가 아닌 그들 속에 같이 사는 '주민'이 될 수 있을지 쳐다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사는 세계의 하늘을 보며, 다른 세상을 꿈꿉니다. 누군가는 집에서 집을 가고. 누군가는 외로움에서 다른 외로움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것이 두 세계의 거주자들의 일상입니다. 다른 냄새. 다른 공기. 어디도 속하지 못하며. 어디도 익숙하지 않은 '나그네'이며 '이방인'인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비옥한 땅을 만들어 풍성한 나무를 만든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하는 상상을 현실로 살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 그들도 '이방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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