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시공 대신 제안서 쓰는 건축과 졸업생의 첫 커리어
우리 같은 사람들이 환영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업계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내가 처음 발을 디딘 업계는 상업용 부동산이었다.
건축과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사회인’이라는 이름으로 일해볼 기회를 허락해 준 업계는 상업용 부동산이었다.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훨씬 활발한 시장이다 보니, 누군가 “어디 회사 다녀? “라고 물으면 항상 업계 설명부터 해야 했다.
”상업용 부동산 쪽이야. “
그러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아, 부동산? “
그 뒤의 설명에는 딱히 귀를 기울이지 않는 표정들이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말하면, 속상한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는 못 하겠다.
대기업 건설사를 다녔다면, 혹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설계사무소였다면, 굳이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실무를 경험할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런 분야가 있다는 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첫 사회생활을 더 단단하게, 더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건설사나 대형 설계사무소 말고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환영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업계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Commercial Real Estate Asset Management, 상업용 부동산 자산관리
한국에서는 보통 ‘상업용 부동산 자산관리’라고 불린다.
이름만 들으면 금융 쪽에 더 가까운 일처럼 느껴진다. 틀린 말은 아니다.
상업용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 금융자산’으로 편입된 건물이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부동산’이라는 단어 때문에 흔히 사고파는 중개업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업계는 성격이 꽤 다르다.
개인 간의 매매가 아니라, 기업의 자산을 지키고 투자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
즉, 사업의 대상과 참여 구성원들이 일반 건물 매매와는 다르다.
운용 대상이 되는 건물 (상품)은 보통 우리가 강남대로, 여의도, 종로에서 흔히 보는 오피스 빌딩들이다.
이 건물들은 리츠 (REITs)나 펀드라는 금융상품으로 편입되어 정해진 만기 (보통 3~5년)까지 운용된다.
그 기간 동안 건물의 가치와 현금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하는 것.
그게 상업용 부동산 자산관리의 핵심이다.
’ 운용‘과 ’ 관리‘
실무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운용 (Asset Management): 투자자를 모집하고 금융상품을 설계, 운용하는 조직. 금융 지식이 중심이 된다.
관리 (Property Management): 금융상품으로 만들어진 ’ 건물’을 실제로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높일지에 대한 대안을 만드는 조직.
내 역할은 이 중에서도 자산관리 제안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건축학과에서 배운 사고방식은, 여기서도 유효했다.
펀드나 리츠로 편입된 오피스 건물을 만기일까지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운용사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이 건물, 우리가 매각할 때까지 충분히 잘 관리할 수 있습니다.”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첫 스텝은 건물 답사이다.
최상층부터 주차장, 지하 관리실, 전기실, 설비실까지.
구석구석 걸어 다니며 체크한다.
내부 공사가 필요한 곳은 어디인지.
임차인 동선과 게스트 동선은 어떻게 분리되어 있는지.
미학적, 기능적으로 어떤 요소를 보완하면 건물 가치가 올라갈지.
현장 답사 - 중요 건축적/기능적 요소 체크 - 보완점 정리
이 과정이 낯설지 않았다.
건축학과 시절, 매 학기 설계 초반에 하던 사이트 분석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대지분석 - 배치 - 동선 - 방향 - 프로그램
설계의 흐름은, 제안서 쓸 때도 거의 그대로 이어졌다.
다만 결과물이 도면이 아니라,
‘운용 전략을 담은 제안서‘로 바뀌었을 뿐이다.
건축학과 졸업생에게, 생각보다 잘 맞는 업계
실무에 투입되면서 확신하게 됐다.
상업용 부동산 자산관리는 건축학과를 졸업하고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업계라는 것을.
건축학과에서 우리는 이미:
지형과 도시 맥락을 읽는 법을 배우고
도면을 해석할 줄 알고
건물의 미학적, 기능적 가치를 분석하며
스케치, 사진, 도면, 스토리텔링을 통해 타인을 설득하는 패널을 수도 없이 만들어왔다.
이 모든 역량이 그대로 쓰였다.
요즘은 ’ 부동산학과‘도 있다고 들었지만,
건축학과 졸업생에게도 이 업계의 문은 충분히 열려 있다.
보너스: 덧붙이자면, 영어는 분명 플러스 요인이다.
입찰 공고를 내는 투자사나 운용사는 외국기관이나 기업인 경우가 많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자체가 해외에서 더 활발하고, 외국 자본의 국내 투자도 많기 때문이다.
영어로 제안서를 작성하거나 외국인과 미팅에 참석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요즘은 챗GPT가 있지만,
그래도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다면 분명한 플러스 요인이 된다.
참고로, 이런 회사들이 있다.
국내
메이트플러스
신세계 프라퍼티
교보리얼코
신영에셋
해외
CBRE
JLL
Savills
Cushman & Wakefie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