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심장, 데이터센터

데이터센터 얹고, 인프라는 덤으로

by Dearlee J
클레어, 카운티에서 고속도로 지어달래



데이터센터는 어디에 지어질까

데이터센터는 몇십 에이커에 달하는 부지를 차지한다. 빅테크 3사의 ‘땅따먹기 게임’이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특히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하나의 건물만 짓는 게 아니라, 여러 개 동을 한 곳에 몰아서 짓는다. 그리고 그 일대는 하나의 ‘캠퍼스’로 불린다. 한 캠퍼스를 조성하려면 몇십, 많게는 몇백 에이커에 육박하는 땅이 필요하기 때문에 초기 부지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런 규모의 부지가 미국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이 흔히 미국의 대표 도시로 떠올리는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를 생각하면, 빌딩이 빽빽한 도시에 데이터센터를 지을 만한 땅이 남아 있을까 싶어 고개가 갸웃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실상은 다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도시를 제외하면, 이 나라에는 아직 ‘놀고 있는’ 땅이 많다. 특히 건조하거나 습한 기후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지역은 거주 인구가 많지 않다. 그만큼 넓은 부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부지로, 산골짜기에 위치한 처음 들어보는 도시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이유다.


어느 지역에 그런 땅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완공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의 주소를 구글맵에 검색해 보는 것이다. 이미 빅테크 3사의 데이터센터 위치를 기사로 접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주소를 찍어보면 대부분 옥수수밭이나 메마른 평지 한가운데 거대한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부지를 중심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이 동네가 얼마나 황폐하고, 얼마나 ‘심심한’ 곳인지.


놀고 있는 땅이 많다는 것의 다른 이름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부지를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많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땅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반 농담처럼 이런 말이 돈다.


“데이터센터 부지 = 옥수수밭, 감자밭, 랜드 오브 노 맨.”

농담 같지만, 실제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앉힐 수 있을 만큼 넓은 땅이 존재하는 곳들은 대부분 이런 곳들이다.


더 놀라운 건, 지금도 데이터센터가 우후죽순으로 지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개발 대상으로 고려될 만한 땅이 아직 많다는 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데이터센터를 투자할 가치가 있는 지역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놀고 있는 땅’이 많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인프라가 덜 갖춰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주 인구도 적고, 유동 인구도 적다. 동네마다 몇 세대씩 이어진 터줏대감 가족들만 살고 있을 뿐, 외부에서 드나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이런 지역에 데이터센터 공사를 확정하고 들어가면, 종종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 고속도로 진입로, 너네가 해”

하루는 텍사스 시골 어딘가에 위치한 현장팀과 미팅을 하고 있었다. 텍사스는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뿐 아니라 소도시 개발이 동시에 진행되는 곳이 많아 공사 일정이 자주 밀리는 주 중 하나다. 그래서 공기가 조금 늦어져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날은 공사비 중 grading, land development (건물을 세울 수 있도록 땅을 파고 다지는 작업) 스콥을 리뷰하고 있었다.


나: “저번 달에도 부지 다지다가 돌 나왔다고 추가 펀딩 요청했잖아. 이미 평균을 훌쩍 넘었는데 또 예산을 초과했다고?”
잠시 망설이던 현장팀이 말했다.
현장팀: “아, 응 클레어. 부지 다지기는 거의 끝났고 더 이상 처리할 돌도 없어. 근데 카운티에서 고속도로 진입로 공사를 우리 보고 하래.”
나: “……응? 그걸 왜 우리가 해?”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지역이 아닌 곳에 데이터센터를 짓다 보면, 이런 요구를 종종 받게 된다. 카운티 (우리나라로 치면 동 단위에 가까운 행정구역) 정부의 논리는 이랬다.


우리가 너네 회사에 부지를 제공했기 때문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올 수 있었다.
데이터센터가 완공되면 일자리 창출이 예견된다.
이 지역은 면적 대비 인구가 적어 고속도로가 없다.
데이터센터 완공 후 유입될 운영 인력들이 출퇴근할 수 있도록 고속도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 진입로 공사는 너네가 부담해라.


듣고만 있자니 어쩐지 반협박성(?) 논리 같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텍사스라는 지역 특성상 앞으로도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줄줄이 예정돼 있었고, 회사는 큰 고민 없이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여담이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현장에서 올라온 ‘고속도로 진입로 공사비’ 요청을 파이낸스 팀에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장과 파이낸스 사이에서 브리지 역할을 하는 입장에서, 이 비용을 “꼭 예산에 반영해야 하는 이유”로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 땅 쓰려면 내가 원하는 거 하나는 해줘야지’라는 뉘앙스를 회사 내부 보고서용 언어로 작업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펀딩을 받아야 하는 처지였지만 아쉬운 소리처럼 안 들리게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생각보다 피로했다.


결과적으로 펀딩도 받았고, 현재 그 지역 고속도로 진입로는 우리 현장팀 지휘아래 우리 회사 비용으로 완공이 되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고속도로 진입로는 단순한 추가 공사비가 아니었다.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짓는 특성상 따라오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었다. 동시에 지역 정부와의 관계를 유연하게 유지하기 위해 기업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감수해야 했던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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