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예뻤다는 것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외장 왜 이렇게 화려한 거 썼어?”
한 달에 한 번, '튀는' 숫자에 머무는 시선
한 달에 한 번, 지역별로 묶인 현장 실황을 듣는 날이 있다. 늘 같은 자리, 같은 화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점점 많아진다. 포트폴리오는 계속 늘어나고, 반대로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캠퍼스의 진행 상황을 훑어야 하다 보니, 회의실 공기는 자연스럽게 팽팽해진다.
우리 팀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과연 적정한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이미 쓰인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어떤 비용이 숨어 있는지까지 함께 들여다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능성으로서의 미래를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모두가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단순하다. 허용된 예산을 넘기지 않는 것. 물론 현실에서는 예산을 한 푼도 넘기지 않는 프로젝트가 드물다는 것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리뷰 시간에는 숫자만큼이나 현장의 고생이 함께 오간다.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조금이라도 나은 선택지를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결국 이 미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프로젝트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효율을 위협하는 신호를 얼마나 빨리 알아채느냐에 달려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방대한 건설 비용을 시점별로 훑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은 ‘튀는’ 항목에 머문다. 그래서 무심한 듯 던진 질문 하나가 회의의 흐름을 바꾼다.
숫자보다 오래 남는 것, 현장 사진
아메리카 대륙만 보더라도 동시에 돌아가는 현장이 너무 많다. 그래서 지역별 현장 리뷰 시간은 현장팀에게 자신이 속한 현장의 이모저모를 공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게 허락된 시간이다. 이 때문에 리뷰 미팅이 몇 시간씩 지연되기도 한다.
포트폴리오 전체를 보는 역할을 맡은 우리는 현장 방문이 잦지 않다. 그래서 우리한테 이 미팅 시간은, 각 현장을 디테일하게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몇 시간씩 이어지는 미팅이 지루할 틈이 없는 이유다.
덧붙여서 이 긴 현황 리뷰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는 현장 사진이다. 숫자와 그래프뿐 아니라, 여러 장의 현장 사진이 공유되는데, 어떤 현장은 사진만 따로 모아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현장 사진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어서인지, 숫자로만 보던 현장을 사진으로 마주하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진행상의 어려움'이 의미하는 것
숫자와 그래프,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불편한 대화를 피할 수는 없다. 대부분 그 불편함의 중심에는 돈이 있다.
지금까지 어떻게 진행해 왔는지, 앞으로 어떤 공정이 남아 있는지, 그리고 진행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짚는다. 특히 세 번째, ‘진행상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분위기가 종종 날카로워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말은, 곧 예산 초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려 사항’으로 공유된 리스크가 현장팀의 노하우로 추가 예산 없이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보면, 80% 이상의 리스크는 결국 추가 비용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해당 리스크를 다른 방법으로 개선할 수는 없는지, 충분히 고민해 봤는지, 발생 가능성과 예상 금액은 어느 정도인지. 속된 말로 “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고립된 지역에서 출퇴근하며 현장을 지키는 팀의 고충을 알기에, 날 선 질문이 오갈 때면 마음이 불편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추가 예산이 걸린 사안만큼은 이유와 대안, 선택지까지 꼬치꼬치 확인한다.
작품 같던 현장 사진
그날은 북미 현장 실황 리뷰가 있는 날이었다. 북미 중에서도, 춥고 어두운 캐나다의 한 캠퍼스였다.
현장 사진을 보다 보면 지역별 특성이 눈에 들어온다. 캐나다 현장에는 유난히 검은흙이 많다. 까만 흙과 하얀 눈이 대비를 이루어, 건설 현장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작품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날, 바로 그 ‘작품 같은’ 사진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와, 이 사진 너무 예쁘다. 데이터센터 현장 사진인데 색감이 너무 좋은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찰나, 누군가는 그 사진 속에서조차 비용 이슈를 발견해 냈다.
질문은 단순했다.
“데이터센터 외장치고는 너무 화려한 거 아니야?
미적인 이유로 예쁜 패널을 쓴 거야?
아니면 왜 더 비싸고 예쁜 패널을 붙인 거지?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사진 속 데이터센터는 이미 외벽 공사가 끝난 상태였다. 문제는 그 외벽이, 데이터센터치고는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점이었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에는 고가의 장비와 냉각 설비가 가득하다. 반면,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공종들은 철저히 가격 우선으로 스펙이 정해진다. 외장은 그 대표적인 예다. 미적 요소는 철저히 배제되고, 기능이 100% 우선시 되는 데이터센터 특성상 ‘파사드’는 보통 새하얀 패널이거나, 도색조차 하지 않은 자재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캐나다 현장의 외벽은 달랐다.
검은흙과 하얀 눈 사이에서, 녹색과 에메랄드, 흰색이 교차하며 비정형적인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데이터센터라기보다, 누군가 의도를 담아 디자인한 건축물처럼 보였다.
악의 없는 질문이었지만, 그 질문은 현장팀에게 묘한 아쉬움을 남겼다.
의도는 순수했지만
간혹 지자체가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산업단지를 조성하려는 경우, 인허가 과정에서 외장 스펙을 따로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현장은 그런 조건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결국, 건축가가 순수한 의도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에 미감을 표현하고자 패턴 패널을 선택한 것으로 정리되었다.
미팅이 끝난 뒤에도 이 이야기는 남았다. 해당 현장의 외장 패널 자재비와 공사비는 의구심의 대상이 되었고, 어떤 의도로, 혹은 누구의 요청으로 ‘보기 좋게 예쁜’ 패널이 설치되었는지를 두고 한동안 이야기가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