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심장, 데이터센터

애리조나 들쥐의 습격

by Dearlee J
“들쥐들이 케이블을 다 갉아먹었어.”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넓은 부지 위에 지어진다.
대개 사람이 거주하기보다는 야생 식물과 동물이 살아가기에 더 적합한 땅이다. 그래서인지 종종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지역에 건설 부지가 확보되기도 한다. 그중 한 곳이 미국 남/중서부에 위치한 애리조나다.


이 직무를 맡기 전, 내가 떠올리던 애리조나는 선인장과 사막, 그리고 광활한 자연이었다. 몇 년 전 가족과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하며 잠시 들러 캐니언을 보고 돌산 한가운데에서 1박을 한 것이 전부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사람보다 자연이 더 크게 느껴졌던 곳이라는 인상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애리조나에 데이터센터를?

자연 친화적인 지역에 대규모 데이터센터 캠퍼스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프로젝트 리스트를 보다가 애리조나에 위치한 여러 캠퍼스의 규모를 확인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겨울도 없고, 건조하고 더운 이 지역에 왜 이렇게 큰 캠퍼스를 조성하는 걸까?’


건설 비용을 살펴보니 의문은 더 커졌다. 일반적인 쿨링 시스템이 아닌 특수 냉각 설계가 필수였고,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지역이라 인력 충당 비용도 상당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비용 효율만 놓고 보면 쉽게 선택할 만한 입지는 아니었다.


베일에 싸인 곳, 혹시 외계인..?

하지만 월별 프로젝트 리뷰에 참여하면서 이 지역이 단순히 ‘비효율적인 선택’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매달 지역별 진행 사항을 공유받는데, 애리조나 프로젝트는 대부분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전체 팀이 참석하는 자리라서인지 발표 시간에는 종종 “이 부분은 오프라인으로 이야기합시다.”라는 말이 덧붙었다.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겼다. 접근 권한도 제한적이었다. 본사 인력이라도 해당 캠퍼스는 미국 시민권자만 근무할 수 있었고, 같은 팀이라도 담당자가 아니면 자료를 열람할 수 없었다.


구체적인 사정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상상을 조금 보태보면, 그곳의 서버에는 정부 관련 기밀 데이터가 저장, 운영되는 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애리조나라는 지역적 특성 덕분에, 외계 생명체와의 소통을 준비하는 AI를 훈련 중인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들쥐의 습격

포트폴리오 관리자인 나에게도 그곳은 여전히 많은 부분이 가려진 현장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애리조나 팀에서 급히 연락이 왔을 때, 꽤 심각한 일이 벌어진 줄 알았다.


‘클레어! 애리조나 현장 한 곳에 펀딩이 당장 필요해.’
‘무슨 일인데? 디렉터는 이미 알고 있지? (내가 먼저 알 사안은 아닌 것 같아 확인부터 했다.)’
‘아직 보고는 안 했어. 시간이 촉박해서 먼저 말하는 거야. 가장 빠른 요청 일정이 언제야?’
‘이번 달 자료에 포함할 수는 있어. 대신 사유랑 백업 자료는 명확해야 해.’
‘알겠어. 자료 준비해서 보낼게.’
‘무슨 일인데? 많이 급해?’
‘클레어, 믿기 어렵겠지만… 들쥐들이 서버 케이블을 다 갉아먹었어.’
‘… 뭐라고?’
‘현장에 보관 중이던 광케이블을 전부 훼손했어. 재구매 예산이 필요해.’


순간 말을 잃었다. 내가 들은 게 맞나? 내 귀를 의심했다. 접근 권한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현장에서 들어온 긴급 요청이, 들쥐 때문이라니.


함께 자료를 정리하면서 현장 상황을 차분히 되짚었다. 단순 해프닝으로 넘길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보고서에 “들쥐가 배가 고파 케이블을 먹었다”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원인은 자재 관리 미흡으로 정리됐다. 건설사의 보관 관리가 충분하지 않았고, 그 틈을 타 설치 전 광케이블이 훼손된 사건이었다. 우선 우리 선에서 건설사와 비용 분담을 조율했고, 내부 보고서에는 이렇게 기록했다.


‘들쥐로 인한 케이블 손실 발생. 재구매 필요.’


보안과 제한으로 둘러싸인 현장에서 도착한 긴급 요청이 ‘들쥐의 습격’이었다는 사실은, 허탈하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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