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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콜라 Mar 15. 2022

도대체 가방 안에 뭐가 들었길래

걱정이 많은 사람은 가방이 무겁다

어린 시절부터 내 가방은 늘 무거웠다.

나는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교과서만 열심히 판 모범생이었고, 친구들이 사물함에 책을 넣고 다닐 때도 나는 늘 책을 가방에 짊어지고 다녔다. 그래서 키가 안 컸나…? 아무튼, 대학교 때는 전공 서적 한 권만 해도 묵직했으니 다를 바 없었다.


한창 회사 생활을 할 때도 가방 안에는 늘 물건이 가득했다.

뭐가 들어 있었냐 하면…


수첩, 펜

보조배터리, 이어폰

티슈, 위생용품

손수건, 반짇고리

소화제 등 비상약, 인공눈물

지갑, 명함지갑, 각종 포인트 카드(지금은 어플이 대신 들어준다)

길냥이용 밥

집 열쇠

호신용품


이제는 여기에 손소독제와 예비 마스크까지 추가된 셈이다. 어쩌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넣다 보면 가방은 어느새 허리가 휘는 무게가 된다.


어느 날, 산 지 이틀도 안 된 가방을 들고 길을 가는데 가방끈이 뚝 끊어졌다. 허둥지둥 반짇고리에 있던 옷핀으로 대충 고정하고서(어쨌든 이때는 도움이 된 셈이다) 지하철에서 가방을 구입한 판매 사이트에 분노의 문의 글을 쓰다가 문득 생각했다.

‘혹시 내 가방이 너무 무거운가?’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이런 말을 보았다.

“성공하는 사람은 가방이 가볍다.”

약간 충격이었다. 늘 가방이 무거웠던 나는 어쩌면 성공과는 조금 먼 길을 걸어왔는지도 모른다는 소리니까. 처음 그 말을 접했을 때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넘어갔지만, 가방끈까지 뚝 끊어지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무거우니까 그만 넣으라는 가방의 경고였을지도 모른다. 내 가방에는 변화가 필요했다.


생각해 보니 가방은 매사 미리 걱정하고 계획을 세워야 안심하는 내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걱정도 불안도 겁도 몽땅 담아서 빵빵해진 모양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걱정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 나도 이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깨닫는 중이다. 어떤 일을 하든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해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도 말이다.


오은영 선생님도 얼마 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쌍코피 나는 심정으로 해야만 뭘 이루는 건 아니거든요. 편안하게 해보는 것도 필요해요.”


얼마 전부터 가방을 최대한 비우기 시작했다. (코어 힘이 달리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는 건 안비밀이다.) 실제로 밖에서 필요한 물건이 생겨도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면 별문제 없다.

가끔은 일부러 주머니에 지갑과 휴대전화만 넣고 산책을 떠난다. 마치 바람이 등을 밀어주는 것처럼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앞으로도 가방은 늘 가볍게 유지하고 싶다.

언젠가 마음의 무게도 가방처럼 가벼워지기를 바라며.


Photo by Tamara Bell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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