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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21. 2023

5년만에 분갈이를 했습니다

[풀하우스]16

지난 한 주 동안 그 모습을 보면서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우리잡에 있는 풀들 때문에. 봉선화가 자리를 양보해 준 창가에서 8개의 바질 새싹은 쏙쏙 키가 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맞은 편 대각선에서는 배변 패드를 내려다 보는 고개가 계속 숙여지는 벵갈 고무나무(이하 벵갈고)가 한 그룻 삐죽하게 있습니다. 2018년 6월 중순. 우리집에 데려 올때는 화분위로 50cm 정도였는데, 조금있으면 아마 2미터는 되어 갈 듯 합니다. 옆에 갔이 서 있는 냉장고 높이 만해집니다. 그런데 줄기는 너무 가느다랗네요. 무럭 무럭 위로는 크는 데 굵어지지 못하는 건 화분 크기 때문입니다. 벌써 화분을 갈아줬어야 하는데 말이죠.


여름에 한번 시도를 할까 했는데 분갈이는 가을 내음이 시작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십년 식큐베이터 - 죽은 식물들을 다 살려내는 인간 인큐베이터 - 엄마의 간곡(!)한 제안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차일 피일. 안되겠다 싶어 지난 주 일요일. 거대한 이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지 첫 가을 맞이 이벤트를 시작했습니다. 그 출발은 커다란 화분 구입. 몇 군데를 들려 크고 무겁지 않은 화분을 하나 사왔습니다. 그리고는 분갈이용 상토도 한 포 같이. 분갈이를 할때 핵심은 기존 화분에 있던 흙 사이사이 잔뿌리들이 끊기지 안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아주 신중썼습니다. 바닥에 커다란 박스를 펼쳐 놓고 그 위에 상토와 난석을 고루고루 섞었습니다. 잔뿌리들의 물구멍, 숨구멍 역할을 난석을 넉넉하게 넣어줘야 합니다. 


허리에 최대한 힘을 주지 않으려고 무릅을 일단 꿇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화분을 한 손으로 잡고 벵갈고를 살짝 살짝 흔들어봤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강제로 힘을 주면 안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키가 작은 경우에는 화분을 통째로 옆으로 넘어 뜨려 화분 밑을 고무망치나 주먹으로 살살살 위로 쳐주면 잔뿌리들이 잡고 있는 흙덩이 자체가 쏙 빠지는 데 쉽지 않더군요. 아마 자세가 어설퍼서 그랬나 봅니다. 마디 마디 근육에 힘을 다 주지 못하니 말이지요. 그래서 알루미늄으로 된 화분 이름표식 스틱으로 화분 옆을 쑤욱쑤욱 돌아가면서 눌러줬숩니다. 그리고 오른손가락을 사용해 살살살 흙을 파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 손으로 화분을 잡고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흔들흔들. 그랬더니 휘청거리던 170센티 가까운 벵갈고가 휘청 휘청 거리면서 나를 내려다 봤습니다. 


그렇게 벵갈고를 통째 뽑아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다 빼서 들여다 보니 생각처럼 잔뿌리가 마치 새하얀 새끼 오리 깃털처럼 포슬포슬합니다. 자기네끼리 똘똘 뭉쳐 어깨 동무하고 뒤로 나를 휙 돌아보듯 합니다. 마치 긴 머리카락이 단단하게 연결되어 서로를 결박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흙알갱들은 더욱 단단한 성벽처럼 뭉쳐 있습니다. 벵갈고 줄기와 뿌리가 연결된 부분을 잡고 살살살 흔들어 봤습니다. 떨어지는 흙과 붙어 있는 흙이 3대 7 정도입니다. 그 3은 버리고 7만 옮겨 심을 커다란 화분으로 그대로 쏘옥 집어 넣었습니다. 그러기 전 이미 새로 사온 화분에는 난석을 섞어 버물려 놓은 상토를 3분의 1정도 미리 깔아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이 사이에 남은 흙을 가득하게 채워주면서 벵갈고를 올려다 봤습니다.     


그러면서 벵갈고의 위치를 큰 화분 한가운데에 맞추면서 사이 사이 흙을 넉넉하게 채워줬습니다. 그러는 동안 벵갈고는 나를 내려다 보면서 화알짝 웃습니다. 시원하다고, 고맙다고. 새 집으로 이사를 하는 게 신난다고. 몇년 동안이나 타닥이의 응가와 쉬를 보면서 맡으면서 자라나게 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되었나 봅니다. 



세상 모든 풀들도 가을과 겨울을 잘 이겨내기 위한 준비를 아주 소리없이 하고 있었습니다. 집 앞 단풍 나무는 초록이지만 벌써 그 속에서 낙엽빛이 옅게 베어나고 있습니다. 주차장 한 켠에서는 이 비에 은행들이 떨어져 뒹굴다 지쳐 퍼져 있기도 합니다. 지금 잠깐 비가 잦아들었나 봅니다. 가을인 듯 여름이었던 세상을 이 비가 다 씻겨 내려 가는 가 봅니다. 이 비가 온전히 멈추고 나면 겨울인 듯 한 가을이 더 깊어지겠네요. 옷장속에서도 이불장속에서도 이제 깊어지는 가을을 준비해야 할 듯 합니다. 우리만 그런게 아니었네요. 분갈이를 다 하고 나니 이제 마음에 평화가 조금 더 짙어집니다. 가을속에서도 마음이 평화로운 방식으로 살겠다 싶습니다.



-----------(한 줄 요약)

다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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