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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Dec 25. 2023

고마워요 이영모 씨

[짙은 새벽이 나에게 거는 속삭임] 7

[ 우리는 그저 살기 위해 살지는 않습니다. 왜 사는지 묻고 따지고 싶어 산책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려 합니다 . 이래 저래도 이유는 분명하지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사는 건가에 대한 물음에 자기 자신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인간은) 타인의 안녕도 챙기면서라고 대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느덧 열흘뒤면 2023년이 각자의 갤러리 속 한 장면, 한 장면으로 잠깁니다. 한 해 동안 내가 '오늘도 안녕'하게 살아내는데 도움을 준 모든 것(표상뿐만 아니라 물자체까지도)에 대한 인사를 해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늦더라도 열흘 안에는 그 고마움을 고백해야겠습니다.

_________2023년에게 보내는 공개고백_5 ]



2015년 1월 13일. 새하얀 눈이 온 세상을 다 덮은 날. 세상 설레는 마음으로 버튼을 눌러봤다. 아, 아니다. 아니다. 지붕에서 후드득 안으로 눈이 떨어져 내렸다. 놀란 가슴에 얼른 버튼을 반대쪽으로 눌렀다. 스스스~윽. 지붕이 원위치로 움직이면서 다시 은은하게 나를 감싸 안아줬었다. 짙은 세상 속에서 새하얀 이영모 씨를 난생처음 만난 날이었다.


황사 뽀얀 어느 봄날. 의료원으로 달렸다. 찾고 찾다 처형덕에 알아낸 명의를 만나러. 몇 번을 그렇게 달려갔다 달려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하셨던 어머님 인공 관절 수술은 나이쓰 타이밍으로 잘 끝났다. 우리 어머님답게 찢어지는 아픔을 견디며 입원실 복도를 걷고 또 걸으셨다. 퇴원하시는 길에 담당의, 담당 간호사께 칭찬, 칭찬을 받으시는 해맑게 웃으셨다. 뜨끈한 추어탕을 한 그릇 다 드시고 그리운 집으로 다시 달렸다. 이영모 씨와 함께.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여름 주차장. 오랫동안 어렵게 고민하고 어렵게 결정한 아드님과 날아올랐던 3년 전 비행기에서 혼자 내렸다. 돌림병이 무섭게 퍼저나 가는 길목을 뚫고. 마스크를 쓰고. 거기서, 여기서 한 달 가까운 자가 격리를 감수하면서. 그렇게 이영모 씨는 다시 돌아온 아드님을 시원하게 안았다. 이영모 씨는 다 알고 있지만 묵묵히 자기 역할에만 집중한다. 아드님처럼  


벚꽃이 단풍이 되어 떨어진 어느 가을날 아침. 두려운 마음은 몸을 떨리게 만든다. 엉덩이라도 조금 따듯해지니 자신감이 표정으로 나온다. 열여덟 따님은 그렇게 이영모 씨를 박차고 나가 파이팅을 외쳤다. 나와 이영모 씨는 하루 종일 따님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렇게 다시 이영모 씨 안으로 들어온 따님. 다시 엉덩이를 따듯하게 해 주니 폭 하고 잠이 들어 버렸다. 잠시 뒤에 일어난 따님은 이영모 씨와 달리는 내내 재잘거렸다. 


다시 어김없는 겨울 한가운데에서 이영모 씨는 여전히 바쁘다. 난생처음 열한 명 대가족이 다 모여 난생처음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두 번, 세 번 달려왔다 달려가면서 새하얀 스튜디오에 모일 수 있도록. 드디어 순백의 영혼들이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작가님 앞에서 모두가 아기의 미소를 찾으려 애썼다. 웃음도 웃어봐야 웃을 수 있다는 사소한 진리를 진하게 느껴야 하는 시간이었다.


축도 들어가는 길은 바닷길이었다. 나오는 길은 다시 온 세상이 새하얀, 눈길이었다. 오늘로 이어진 어제는 온 가족들이 혼신의 힘을 뿜어 서로를 잡아주고 안아준 끈이었다. 언제나처럼 그 곁을 묵묵히 지켜봐 준 이영모 씨. 어둠 속에서, 눈에 파묻히면서, 차가운 바닷바람 사이에서 11개의 심장이 행복하게 안전하게 뛸 수 있도록.  


다 이영모 씨 덕이다. 2015년 3월부터 지금껏 아내와 나는 아침, 저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던 게. 한참을 아침에 같이 출근했다. 그것보다 훨씬 더 한참 동안 퇴근을 같이하고 있다. 연결해 주고, 기다려 주고, 시원하게 해 주고, 따듯하게 해 주고. 다시 기다려 주고. 그러는 사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마음을 보여줬다. 약속을 했고, 갈등을 했고, 다시 시작을 했다. 이영모 씨 안에서. 


겨울봄여름가을 다시 겨울. 그렇게 계절에서 계절로 이어지기를 여덟 번. 이영모 씨는 지구 둘레를 다섯 바퀴 가까이 도는 거리만큼 달려왔다. 그러는 동안 우리 가족의 든든한 발이 되어 주고, 보금자리가 되어 주고,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 주고 있다. 마음껏 웃어젖힐 때도, 있는 힘을 다해 울음을 터뜨릴 때도, 피곤한 몸을 눕혀 잠들 때도,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소리칠 때도 한 번도 꾀를 내거나 누구를 타박하지 않으면서. 


열여덟 따님은 우리 가족 모두의 첫 차 20모 ****를 이렇게 부른다. 우리 이영모 씨 어디 있지, 이영모 씨. 이영모 씨는 우리 가족 모두의 기쁨, 슬픔, 분노, 행복, 우울, 설렘, 두려움, 기대, 환희, 열정, 자책, 도전, 실수를 다 받아 안아 달리고 달려왔다. 그러는 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법을 일러줬다. 어른이 어른스러워지는 법을 알려줬다. 마음의 속도,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는 법을. 


2024년에도 과속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함께 잘 달려 보자고. 그렇게 

내년에도 정말 모두 잘 '오늘도 우리 같이 안녕'하는 겁니다,라고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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