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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an 13. 2024

흘러 넘치지 않는 삶

[오늘도 나는 감탄 사寫] 9

나는 아침마다 닭알을 삶는다. 아침 식사다. 반숙을 좋아한다. 7분에서 8분 사이(나는 7분을 더 선호한다)를 삶는다. 여기에 이번 연말에 밴쿠버에 사는 식구들 캐리어 하나 가득 실어 보낸 올바른 김 팩을 하나 부셔 넣어 섞어 먹으면 오전 11시 정도까지는 진한 커피 한 잔으로도 배고픔을 잊을 수 있다.


나에게 닭알은 여러모로 힘이 된다. 한두 알에 배가 부르게 해주는 착한 식재료다. 물 한 모금, 두유 한 모금이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는 포만감에 기분마져 좋아진다. 게다가 항상 생생하다, 는 느낌을 매일 아침 전해주는 기분 좋은 메신저다. 가만히 쥐고만 있어도. 집에 있는 식재료 중 유통 기한을 언제나 지키지 싶어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아침에 서두르지 않아 좋다. 닭알을 내가 좋아하는 말캉거리는 상태의 반숙으로 삶는데 7분. 그 시간 동안 펄펄 끓는 냄비를 들여다보면서 뒤꿈치를 들었다 내렸다 한다. 왼쪽, 오른쪽 대각선으로 다리 벌리기를 한다. 인덕션 부위를 잡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한다. 스쿼트도 한다. 팔 굽혀 펴기를 서른 개에서 쉰 개는 할 수 있다. 이 다섯가지 동작을 1분씩만 해도 시간이 담는다.  


나에게 닭알을 삶는다는 건 오늘도 평화롭게, 생생하게,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시그널이다. 그래서 알 하나 삶은 일이 언제나 행복하다. 닭알 삶는 시간이 무심한 반복된다는 자체가 행운이라는 알기 때문이다. 아침에 닭알을 깔끔하게 삶고 식탁에 앉아 먹는 15분 남짓한 시간이 매일 이어가지 못할 이유만도 살다 보면 수십가지는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보통 닭알은 냉장고(또는 겨울에는 자주 베란다)에 있다. 냉장고에 있던 알을 미리 꺼내 놓는 게 좋다. 차가운 곳에서 웅크려 뭉쳐 있던 닭알이 갑작스럽게 펄펄 끓는 냄비 속으로 느닷없이 투하될 때 금이 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순서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알 하나 깔끔하게 삶지 못하는 수십가지 이유 중 가장 첫 번째 이유다. 


그럴 때는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꺼내자마자 펄펄 끓는 물에 넣어야 한다. 물론 집게를 이용해서 살짝 넣지만, 거의 어김없이 닭알 표면에 금이 간다. 그러면 순식간에 그 금이 간 틈으로 흰자가 스며 나온다. 물이 점점 끓는 온도가 높아지면서 오면서 미끄덩하게 허연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 냄비 속을 온통 하얀 거품으로 몽글하게 만들어 버린다.



순식간에 냄비의 테두리 제일 위쪽까지 차오른다. 얼른 끓는 온도를 낮춘다. 9에서 7, 다시 5, 4로.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냄비를 넘칠 듯 한 하얀 거품 바깥으로 막이 형성된다. 몽글해진 거품 안쪽과 냄비 바깥쪽 공기의 온도차이 때문에 생긴 막이다. 자세히 보면 안쪽 뜨거운 거품보다 훨씬 진해진 흰색이다. 눈사람 배에 묻은 흙 때 같다. 


이제 반숙이 되기 전, 차가운 물에 온몸을 담그기까지 4분 남았다. 뒤꿈치를 내리면서 한번, 올리면서 한번 그 막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앉았다 일어나면서 그 막을 한번 더 쳐다본다. 신기하게도 계속 안에서 바깥으로 벌렁거리면서도 넘칠 듯 넘치지 않는다. 안쪽 뜨거운 김이 막을 마구 흔들어 되면서 금세 찢어질 듯 한데도. 까무리하게까지 보이면서 막은 뜨거운 수분이 터져 나오는 것을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안아본다.


마치 내 가슴은 너무 뜨거워 찢어질 것 같은데, 두 눈 질끈 감고 양팔을 빙 둘러 차분히 냉정하게 다 안아내 주고 있는 그대 같다. 화가 나고, 힘들고, 포기해버리고 싶은 나를 무심하게 감싸 안은 그 사람 같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다그쳤던 그때 같다. 먼 산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살며시 가라앉아 있는 듯 없는 듯 한 보조개 옆, 제철 자두 같았던 앙담은 입술로. 


그 얇은 막의 힘은 무얼까 생각해 본다. 나를 찢어지지 않게, 터지지 않게, 흘러넘쳐 볼품 사나워지지 않게 막아서는 그 얇디얇은 막. 닭알 하나 깔끔하게 삶는 일을, 유한하게 반복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나는, 오늘 아침에도 어제처럼 닭알을 삶는다. 그러면서 위태로움과 평화로움 사이의 그 막의 힘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나 스스로의 온도를 조절해서 나 바깥의 온도를 조금 더 비슷하게 맞춰 나가는 지혜를 가지라고 일러준다. 내 것과 네 것이 옳고 그름만으로 나뉘어 지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려는 듯 것처럼. 내 눈으로 그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들리는 듯 하다. 폭폭폭. 서로의 온도안에 각자의 향기가, 촉감이, 삶이 익어가고 있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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