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Feb 07. 2023

어느 날 갑자기

글로 하는 운동 1

여느 날과 같은 아침이었다. 가볍게 일어났다. 알람 10여분 전이었다. 아직,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안 일어났다. 아니, 댕댕이만 타다닥 내게로 달려왔다. 까만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굿모닝 하고 짧은 하얀 꼬리로 풍차 돌리기를 한다. 쓰담쓰담. 포트에 정수 물을 담았다. 딸깍하고 아래로 버튼을 눌렀다. 금세 쎄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뒤로 하고 욕실을 들어갔다.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켰다. 세면대 손잡이를 위로 올렸다. 조르륵 물이 떨어졌다. 쨍하게 차가웠다. 맹물로 세안을 서너 번 하면서 남은 잠꼬리를 쫓으려 해 봤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을 했다. '오늘은 저녁을 먹기 전에 달리기를 먼저 할까'. 주방에서 큰 새가 날개를 퍼드득, 퍼드득 하는 것처럼 포트 물이 과감하게 끓는 소리가 욕실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세면대 왼쪽에 약간 낮게 베이지 빛 욕조가 누워 있다. 그쪽으로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오른쪽 벽면에 매달린 샤워기를 집었다. 그리고 샤워기 손잡이를 위로 올렸다. 촤~아. 전혀 지치지 않은 물소리였다. 욕조 바닥에 후드득 떨어지는 가느다란 물줄기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샤워기를 더 높게 왼손으로 치켜들었다. 뒤통수로 떨어지는 미지근한 물이 온몸을 말랑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샴푸를 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손가락이 잘 지나가지 않았다. 뻑뻑했다. 그래서 요즘은 트리트먼트를 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 머리카락이 부드러워진다. 아내의 조언이다. 그러는 사이, 베이지 빛 욕조 바닥에 검은색 연가시가 수십, 수백 마리가 떨어졌다. 매일 아침 그것들을 변기에 몰아넣고 저 지하로 미끄러 뜨려야 출근 준비의 시작이다. 


다량의 검은색 연가시들이 출몰하고, 처리할 무렵. 문 앞 자그마한 인기척이 들린다. 급할 때는 흠흠, 하고 신호를 주기도 한다. 그 소리가 들릴 그때 아내가 일어난다. 아내는 나오자마자 댕댕이에게 굿모닝을 외친다. 안 봐도 두 번째 풍차 돌리기를 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가서, 내가 끓여 놓은 뜨거운 물에 정수물을 섞는다. 그리고 유산균과 비타민 D 한 알을 미지근한 물 한 컵으로 마신다. 아내의 아침 시작이다. 그리고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안쪽 욕실에서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짧은 두 공간을 댕댕이가 이어준다. 나도 보고, 아내도 보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평일 출근을 위해 일어나 움직이는 10여분 간 늘 이렇게 비슷하다. 그날도 그랬다. 작년, 아니 2021년 9월. 추석 연휴가 지나고 며칠 뒤 무렵. '악~'. 진짜 외마디 비명이 새어 나왔다. 댕댕이의 흠흠, 소리와 아내가 걷는 소리 사이 어디쯤. 나는 허리를 펴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욕실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정말 거짓말 같았다. 일어나지 못했다. 아니 그때 처음 느꼈다. 일어나는 동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건가 하고. 어디에 힘이 들어가고, 어떤 관절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일어나는 건가 하고. 허리를 포함한 등 아래쪽이 뻑뻑했다.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걸리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뻑뻑함. 등에서 꼬리뼈까지 커다란 각목을 하나 묶어 놓은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허리 부근이 저렸다. 


너무나 갑자기 찾아온 허리 통증. 그나마 다리를 움직일 수 있어, 출근을 했고, 늦은 오후에 병원에 들러 디스크가 시작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꼬리뼈 바로 위 디스크 수핵이 팽창해서 신경을 누르는 상태. 수핵 주변에 다발성 염증이 포진하고 있는 상태. 그렇게 설명을 들었다. 닥터의 표정은 비장하게 보였다. 하지만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그날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라고 그날 저녁 아내한테 이야기를 했다가, 아주 그냥 물건 사듯이 그렇게 수술을 하는 거냐는 타박을 들었다. 그것도 허리를. 아, 그러고 나서 머릿속을 더듬거려 보니 버스에 택시에 건물에 붙어 있던 광고가 나의 무의식 속에 신뢰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거다. 그 병원, 그 의사. 통증 때문에 잃었던 정신을 챙기고 2주 간 두 군데의 다른 병원을 더 다녔다. 비슷한 검사를 받고, 비슷한 처방을 받고,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수기 치료를 하고, 뼈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허리 때문에 처음으로 병원에 가서 알았다. 그게 코스였다. 잘 차려진 메뉴판 같은 느낌이었다. 대기하는 동안, 얇고 커다란 TV속에서 유명 연예인이 연신 '유병장수'를 외쳐대고 있었다. 띠링 띠링, 전화를 하라고 친절하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픈 이들은 계속 들어왔고, 계속 나갔다. 온 세상이 다 아픈 것 같았다. 낯설고, 어색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는 생각만 들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얌전하게 앉아 있는 병원은 좀 그렇다.


연령대에 관계없이 정말 허리가 고장 난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어깨도, 손목도, 무릎도 아프지만 허리병이 난 이들이 절반이 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통증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그 정도는 양호한 거예요라고 나를 뺀 모든 이들이 그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중국집 코스 요리 같은, 그 코스에 나도 참가하기 시작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저런 느낌을 받으면서 2주의 시간이 어찌어찌 지나갔다. 약을 챙겨 먹으면서 출근을 했다. 일을 해냈다. 그리고 다시 바빠졌다. 묵직한 느낌을 계속 가지고. 


2018년 여름부터 나는 달리기에 푹 빠졌다. 농구, 배드민턴, 핸드볼, 배구, 테니스, 자전거, 등산, 헬스. 10대 때부터 내가 즐겼던 운동들이다. 10살 때 호기심에 시작한 핸드볼, 농구는 시골 학교 대표 선수로, 배구는 중학생 때 친구들과 체육 대회 준비로, 재미로. 테니스는 고등학생 때 선생님들과 함께. 그리고 직장에 와서는 배드민턴을 치고, 헬스를 했다. 특히, 헬스는 직장에 마련된 공간이어서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등산을 다녔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두 주의 주말은 운동으로 채웠다. 여기까지 읽고 혹시 나를 김종국쯤으로 생각하시지는, 않으시길 바란다. 하기야, 아내가 농담으로 '난 윤종국이랑 사는지 알았어'라고 친구들과 만나면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런데, 절대 오해하지 마시라. 난 왜소하다. 아니, 왜소까지는아니더라도 그냥 소소하다. 헬스장에서 튀어 나온 듯한 부담스러운 몸이 아니란 뜻이다. 난 백칠십육(난 육이라고 외치는데 가족들은 오가 안될꺼란다. 그래서 병원에 간 김에 탁 내려오는 그걸로 쟀다. 오쩜 육. 그래서 육이다)에 육십구 킬로. 갑자기 중요한 개인 의료 정보를 묻지도 않았는데, 대답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럴 이유가 있다. 내가 스스로 기특하기 때문이다, 분명. 그 이야기는 https://brunch.co.kr/@jidam/149 에서 이야기를 했었다. 지금의 나는, 나 스스로 기적이다. 고맙고, 기특하고, 대견하다. 

 

나는 평소에 참 많이 움직인다. 많이 먹지만, 많이 남지 않는 이유다. 솔직한 결과다. 강원도 산골에서 몇 킬로미터는 그냥 걸어 다녔다. 버스를 기다리다, 지루하면 걸었다. 그리고 조금만 걷다 보면 경사진 길이다. 그렇게 걸었다. 마음이 급하면 뛰었다. 그게 내 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러다 아팠던 몸이 다시 건강해진 이후로, 새 다리를 얻은 것을 자랑하면서 걸었다. 그러다 2018년 한여름의 가운데. 8월에 처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알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맞는 운동이 달리기라는 사실을. 그렇게 동네 러너로 틈만 나면 달렸다. 가랑비가 와도 달렸고, 살얼음 위에서도 달렸다. 아, 그렇다고 달리기 클럽에 가입하고, 장비를 본격적으로 챙겨서, 달리시는 그런 분들처럼 달리지는 못한다. 그냥 동네에서 그저 동네 안에서. 동네에서 한두 시간, 10-25km 사이를 주 2~3회 정도 달린다. 마라톤이 아니다. 그냥 동네 달리기. 달리는 게 좋다. 일단, 다른 운동보다 힘이 안 든다. 아니, 덜 든다. 우리 동네에는 산책로마다 나의 달리기 코스가 만들어져 있다. 물론 내가 스스로 머릿속으로 그려놓은 코스. 3, 5, 10, 22, 25km 코스다. 달리는 날 컨디션에 따라 선택한다. 보통은 5~10km 코스를 달린다. 


2주 정도 다양한 치료를 받으면서 통증은 차츰 사라져 갔다. '역시, 나는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 빨리 낫는군' 하는 마음이 들었다. 2021년의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만끽했던 자유를 기억한다. 포근했고, 기뻤고, 자랑스러웠다. 행복했다. 내 두 다리로, 다시 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온 우주에 감사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겨울을 지나 작년, 전근을 갔다. 새로운 환경에 민첩하게 적응해야 했다. 일찍 움직여야 했고, 늦게까지 머물려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렇게 상반기를 잘 넘기나 싶었는데, 옮겨 간 직장에서 허리 통증이 다시 시작되고 말았다. 2022년 5월 학교 축제기간이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병원 진료. 그 이후 멈춘 달리기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그렇게 다시 병원에서 얻은 답은 딱 하나다. 몸을 만들어서 움직이라는 것, 운동하라는 것. 그래서 지금은 일 년 가까이 다니던 병원을 가지 않는다. 2022년 12월 27일을 끝으로. 나의 재활 기간이 시작된 지 8주가 지나가고 있다. 내가 스스로 정한, 다시 달리기 위해 정한 재활 기간이. 아, 그런데 병원을 다니면서 들었던 또 하나의 좋은 정보. 허릿병에는 달리기가 좋단다. 지금 말고, 몸을 만들고 나서 말이다.  


다음 글에서 재활 기간 동안 허리를 위해 했던 운동, 개인적인 효과를 봤던 운동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튼 출근해야 하니까. 그것만큼 중요한 거. 글을 써야 하니까. 내 허리는 내가 지켜야 하는 거더라. 내 건강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여우와 토끼 그리고 나는 내가 지켜야 하는 거니까.


  


작가의 이전글 오늘도 잘 떠나기 위한 8가지 준비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