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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Feb 17. 2023

붕붕세권

사진: Unsplash의Kelly Visel

우리 집 앞에는 횡단보도 두 개 건너에 알록달록한 붕어빵 손수레가 있습니다. 칠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할매가 주인입니다. 차 안에서 지나치다 보면 할매는 안 보이고, 붕어빵은 언제나 가지런히 왼쪽으로 바라보고 찜질 중입니다. 빨강노랑빨강노랑 처마 모양의 비닐커버로 씌워진 손수레 안쪽 의자. 할매는 거기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다 다가서면 쑤욱 올려오듯 나타납니다. 스무 살인 아드님이 바로 앞 중학교를 입학하는 겨울부터 영업이 시작되었으니 이 동네 겨울 붕어빵의 메카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서른한 개짜리 아이스크림을 사고, 할매 붕어빵을 같이 들고 오면 겨울 별미가 따로 없습니다. 천 원에 다섯 개 하던 할매 붕어빵은 지금은 전국적인 시세(?)처럼 두 개 천 원. 묻지 않지만 눈만 마주치면, 변명 같은 이야기를 자주 내뱉으십니다. 


"물가가 너무 올라. 올라도 너무 올라. 강남은 벌써부터 붕어빵이 한 개 천 원 해"

"팥이 한 개 모자라는데, 슈크림 드시면 안 돼?"

"한꺼번에 열 개는 한참 기달려야 하는데"


불위의 붕어빵 틀을 열었다, 닫았다, 부었다, 담았다 하는 손놀림이 아주 재바릅니다. 그 움직임이 마치 속으로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그 비트에 맞추는 듯 리듬감이 있습니다. 흰색이었을 목장갑이 어둑한 회색이 되었지만, 끝 부분들은 죄다 잘려 손가락이 보입니다. 그 손가락 끝이 톡, 톡, 신나게 흔들립니다. 어느 해에 잘려 나간 커다란 나무의 밑동만 남은 곳에서 지금의 위치까지 약 3-4미터를 이동하는 데 여섯, 일곱 해가 걸리셨나 봅니다. 그 시간 동안 언제나 그 리듬감으로 사라지는, 떳따방 같은 붕어빵 손수레를 유일하게 지켜내셨나 봅니다. 할매 붕어빵은 항상 따듯합니다. 통통합니다. 팥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가지고 나오신다고 매년 자랑하십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시크합니다. 떨어졌으면 기다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두 가지. 집에서 만드신 그 팥을 아낍니다. 통통한 뱃살 부분에 집중하고, 머리로 꼬리로 갈수록 팥대신 놀놀한 밀가루가 대신합니다. 그래서 밀가루 맛이 강합니다. 아, 나 밀가루 먹고 있구나 단박에 느낄 정도입니다. 아내는 그래서 할매표 붕어빵을 몇 번 먹어보곤 잘 먹지 않습니다. 


그러다 작년 말에서 올해로 넘어오는 시점. 할매표 붕어빵 손수레에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우리 집에서 횡단보도 하나 건너고 또 하나를 건너야 하던 할매표 붕어빵. 그 인도와 쭈욱 이어져 백여 미터 떨어진 미용실. 그 앞에 미용사표 붕어빵 손수레가 새로 생긴 겁니다. 미용실 사장과 언니 동생 하는 젊은 여자 미용사분이 바로 앞에다 오픈한 붕어빵입니다. 먼저 차에서 보면 눈에 확 들어오는 인테리어입니다. 미용실 조명 아래 손수레 주변으로 미용실의 화분들이 쪼르륵 모여 있습니다. 화분들 사이사이에 역시 미용실 자그마한 야외 테크 테라스를 둘러싼 핸드볼 공만 한 열댓 개의 조명을 받으면서 붕어빵은 존재합니다. 입간판도 미용실에서 쓰는 것처럼 검은 판 위에 다양한 펜으로 쓰여진 메뉴판처럼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붕어빵 매카였던 할매를 몇 달 만에 경쟁상대로 만든 비결은 심플했습니다. 올 겨울 내내, 불나방이 겨울 처마 백열등에 몰려들 듯 거의 매일 다니면서 아내와 내린 결론입니다. 너무 빠삭합니다. 빠삭해도 너무 빠삭합니다. 한 번도 눅눅한 걸 먹어본 적이 없네요. 그리고 결정적인 건 팥이, 팥이 미어터집니다. 눈알부터 꼬리 끝까지. 젊은 미용사님의 마인드가 끝장입니다. 언제 한번 기다리면서 그랬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자꾸 오게 된다고. 그때 알았습니다. 붕어빵의 본질을. 따뜻한 팥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데, 안 그래요? 붕어빵에 팥이 적으면 저도 먹고 싶지 않잖아요. 그러면서 내 앞에서 시연을 하듯 숟가락 한번 반만큼 팥을 떠 넣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용사표 붕어빵은 언제나 대기입니다. 갑자기 추워진 한 날, 이십 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네요. 가끔 반칙(?)을 쓰는 어른들 때문에. 아니, 겨울에 붕어빵을 한꺼번에 열몇 개를 다 가져가는 건, 완전 반칙입니다. 몇 개씩 나눠 먹어야 하는데, 돌돌돌 떨면서 기다리는 데 열두 개요, 스무 개를 세 봉지로 나눠 주세요. 이런 건, 뭐 거의 죽음입니다. 그렇게 몇 번 돌아 선 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용사표 붕어빵의 결정적 단점. 자주 영업을 쉽니다. 아내와 나는 퇴근길에 미어캣이 되어 창밖을 내다봅니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더 키 큰 미어캣이 됩니다. 올 겨울 내내 최애하는 거였거든요. 어느 날은 정말 아쉬워하는 게 느껴집니다. 며칠 만에 다시 켜진 조명등을 바라보면 더 키 큰 미어캣 입꼬리가 희죽희죽 올라가는 게 안 봐도 옆통수에서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렇게 획득한 몇 마리를 엘리베이터 13층이 열리기 전에 다 먹어 치우는 경우가 더 많았더랬습니다. 마치 주 4일 영업하는 것처럼. 딱 세어 보니 그렇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오전 11시 정도부터 오픈하는 할매보다 영업시간도 짧습니다. 늦은 오후부터 초저녁까지. 나중에 아내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추워서, 반죽이 얼어서 못하고, 미용사 연수가 있어서 못하고, 미용실 예약 손님이 많은 날 못하고.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하는 건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도 늦은 점심 약속이 있는 아내를 태워다 주는 길. 당연히 미용사표 붕어빵은 오픈하기에 이른 시각. 나는 아이스크림 옆에 있는 알록달록한 비닐 손수레를 멀리서부터 보면서 달렸습니다. 역시 할매는 보이지 않았지만, 가지런히 놓여 있는 꼬리들이 보였습니다. 


점심을 먹고도 유독 붕어빵이 당길 때가 있습니다. 오늘이 그랬습니다. 스스로 저녁을 조금 먹어야지 속으로 다짐하면서. 그래서 오랜만에 할매표 붕어빵을 네 마리 구입했습니다. 역시, 한 마리는 할매의 부탁 섞인 미간의 움직임 덕분에 슈크림으로. 차 안으로 돌아온 나는 천천히 차를 움직이면서 따듯한 한 마리를 머리부터 물었습니다. 나와 딸은 꼬리부터, 아내와 아드님은 늘 머리부터 먹습니다. 붕어빵을 머리부터 먹으면 타협파. 꼬리부터 먹으면 현실파. 타협파는 매사게 그렇습니다. 아끼고, 아끼고 아껴서 나중에게 양보하는. 현실파는 일단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먼저 먹습니다. 마시멜로 실험이어도 일단은 먹어 치웁니다. 그런데 오늘은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첫 마리를 들었는데 너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살이 얇은 꼬리 부분을 잡을 수밖에.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도톰한 머리부터 입으로 넣었네요. 그렇게 첫 마리를 머리, 입, 통통한 뱃살을 지나 꼬리 부분까지 접근하는 데, 조수석 아내가 순간 자그마한 새끼 미어캣이 됩니다. 내 쪽을 힐끔힐끔 거립니다. 단박에 알아차렸습니다. 밀가루 맛이 그득한 할매표지만, 늦은 점심 약속이 있어서 더더욱 안 먹는 거지만, 배는 고프다. 고프다. 고프다.  


그래서 난, 난, 정말 난, 큰 결단을 내렸드랬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붕어빵의 빠삭한 꼬리 부분, 그 부분을 아내에게 넘겼습니다. 잘 마른 가자미를 노릇노릇하게 구우면 얇은 그 꼬리 부분 같은 그 빠삭함을 가진 그 부분을. 그러고 나서 두 마리째 꺼내는데, 낼름이 아니라 토독, 토독 조금씩 씹어 먹는 아내가 함박웃음으로 그럽니다.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고 부지불식간에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사랑 고백을 한 순간이었습니다. '아, 어, 그래. 어, 맞어. 맞아'하고 다시 머리부터 문 붕어빵 살 사이로 대답이 어정쩡하게 새어 나왔습니다. 맞습니다. 빠삭한 꼬리 부분은 쉽게 양보하기 어렵습니다. 그 말이 듣기 좋아 한마리 더, 한 마리 더 

세 마리나 그렇게 꼬리 부분만 남겨서 아내에게 줬습니다. 마지막 한 마리는 슈크림을 절대 안 먹는 아내 덕분에 꼬리까지 내가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늘은 붕붕세권에 사는 덕분에,  <Whisky on the Rock>이 < when I get old>에게 빠삭한 붕어빵 꼬리를 양보한 덕분에 그리고 아내 덕분에 우리의 사랑을 확인한 또 하루의 날이 되었습니다. 내년의 할매와 미용사의 진검승부를 기대하면서, 그들의 행복을 응원하면서. 그렇게 또 한해의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언더락 한잔 하면서, 우리가 나이 들었을 때를 같이 이야기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 매일 매일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나를 응원합니다. 


<<Whisky on the Rock>> https://www.youtube.com/watch?v=UEnElR9vbXw

그날은 생일이었어 지나고 보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쁜 것만은 아니야 세월의 멋은 흉내 낼 수 없잖아
멋있게 늙는 건 더욱더 어려워 비 오는 그날 저녁 cafe에 있었다 겨울 초입의 스웨터 창가에 검은 도둑고양이

감당 못하는 서늘한 밤의 고독 그렇게 세월은 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 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 가고 있네 혀끝을 감도는 whisky on the rock

모르는 여인의 눈길 마주친 시선의 이끌림 젖어 있는 눈웃음에 흐트러진 옷사이로 눈이 쫓았다 내 맘 나도 모르게 차가운 얼음으로 식혀야 했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 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 가고 있네 혀끝을 감도는 whisky on the rock yeah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 다 욕심일 뿐 다만 혼자서 살아가는 게 두려워서 하는 얘기 얼음에 채워진 꿈들이 서서히 녹아 가고 있네 혀끝을 감도는 whisky on the rock


<<when I get old>> https://www.youtube.com/watch?v=UL2lKKlEKN0

Oh, when I get old내가 나이 들었을 때  I’ll be looking back나는 과거를 돌아보며  Wishing it could last forever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거야 Oh, yesterday과거의 날이 Seems so far away너무 멀게 느껴지네   Long dress, no shoes긴 원피스에 맨발  Summer nights여름밤에  Golden and blue황금색과 푸른색  It feels just like we’re stuck inside a picture frame마치 우리가 액자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These memories never fade away, oh 이 기억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지 

Whisper to me내게 속삭여줘 We got the world 우린 세상을 놔뒀어 Right at our feet우리의 발아래 

And I just wanna sit right here and look at you난 그저 여기 앉아서 너를 바라보고 싶어 That’s probably all I ever do그건 아마도 내가 지금껏 한 모든일들이겠지



한줄요약 : 붕어빵은 우리가 나이 들어도 혀끝을 감도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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