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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05. 2023

선택과 자기 지분

사진: Unsplash의Rod Long

"맞아요, 그런데...... 아, 하~"


이영 청춘 아드님은 한 시간이 넘는 보이스톡 끝자락에서 깊은 숨을 천천히 내뱉고 있었다. 한숨이었다.


고2를 중간에 그만두었다. 소위 자발적 퇴학. 그리고는 4대 6의 지분으로 밴쿠버로 날아갔다. 부모가 4, 본인이 6이라고 단서를 달고. 하지만 사실, 우리 부부에게는 343대 정도의 지분이었다. 우리가 3. 아드님이 4. 그리고 3년 전부터 밴쿠버에서 서른 살 딸과 머무르고 있는 처형의 강력한 조언이 3. 처형은 오십 중반. 체대를 나온, 영어 거지다. 본인 입으로. 그런 처형이 자식을 위해 조카가 어릴 때부터 이민을 생각했었다. 한국에 살 때도 자주 만나면서 그렇게 잘, 열심히 하는 아드님을 오래전부터 측은하게 보고 있었다. 비자가 생각보다 늦게 나오면서 밴쿠버 입국이 늦었지만, 지금은 지역 사회에서 자리를 어느 정도 잡으면서 살고 있다. 워낙 생활력이 강하고, 긍정적인 성향의 멋진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서른이 넘은 조카 역시 엄마를 닮아 누나가 아니라 스무 살 아드님의 친구처럼 잘 놀면서 돌봐준다.


이제 아드님은 세컨더리 스쿨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 놓고 있다. 그래서 어느 과를 어느 대학으로 갈지를 결정하느라 석 달 넘게 고민하는 가 보다. 우리는 항상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심지어는 장 폴 사르트르의 명언도 우리들 삶에 명제가 된 지 오래다. '라이프 이즈 CHOICE 어브 버쓰 앤 데쓰'. 그런데 인생 뭐 그렇게 복잡한 듯 하지만 짬뽕 짜짱, 양념 후라이드처럼, 결국은 그렇게 심플하게 결정해야 할 때가 더 많다. 지나오고 보면. 그래서 난 항상 나도 나와 가까운 이들 - 가족, 지인, 친구 등 - 의 선택에서도 항상 '지분론'을 강조한다.  


백퍼 자신의 정보와 의지, 경제적 상황 등으로 선택을 해야 할 경우는 드물다. 그 이유는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정보란 백퍼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 온라인상의 불특정 다수의 조언이며, 책 속에서 영상 속에서, 그리고 신뢰가 강한 지인의 조언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 경제적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또 결정의 순간에 발휘되는 의지 또한 어느 순간부터 누적된 주변인들의 설득과 지지의 총합의 발현. 그래서 무엇을 결정할 때 자기 지분을 따진다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왜? 어떻게 선택을 하건, 백퍼 보장된 결과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택하는 경험치가 쌓이면, 자기 지분이 높아지게 된다. 그럴 때 '스스로', '알아서', '잘 판단해서'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순간이 많아지게 된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돌아보면 부모님의 많은 조언들 중 8할, 9할은 거의 맞았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밴쿠버를 떠나 온타리오주로 혼자 진학을 하는 거에 대한 부담을 갖게 되는 거죠."



하하.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기뻐서다. 일단, 아드님이 말이 많아졌다. 심지어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 한국어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묻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물어도 잘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퇴서를 쓰려고 학교를 방문했을 때 담임을 통해 처음 알았다. 아드님이 리더십이 뛰어난 학급반장이었다는 사실을. 게다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을 때 눈도 잘 안 맞췄다. 늘 열심히 하는 아드님이었지만, 늘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늘 피곤했다. - 뭐, 피곤한 건 지금도 매한가지. 거기서는 영어로 다 해야 하니까. 이틀에 한 번꼴로 과제 때문에 날밤을 새는 모양이다. 16시간의 시차덕에 그래서 톡을, 보이스로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건 나로서는 기쁜 일이지만 -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조금 앉아 있다 보면 아드님을 데리려 가야 했다. 자정이 다 되어 수학 학원 아래에서 나도 차도 가로등도 껌뻑껌뻑이다 보면 어슴프레 불빛 아래로 고개를 푹 숙인 아드님이 나타났다. 조수석에 앉아서는 집에 오는 내내 졸았다. 집에 들어오면 졸다 나온 타닥이(우리집 반려견 코코를 나는 그렇게 부른다. 타다닥~타다닥~ 거실을 발톱으로 박차며 매일 달린다)와 부스스한 아내가 나온다. 자정이 넘어 꾸역꾸역 뭔가를 먹고, 아드님은 다시 책상에 앉았다. 대한민국 많은 부모와 자식, 가정의 모습이다. 고2 때까지 유일하게 몇 개월 다닌 수학 학원 덕분이라며 훌륭한(?) 애들이 모인다는 고등학교에서 공부도 꽤 잘했다. 그러다 막 더워지는 어느 날,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 곳으로 아내와 함께 나를 찾아왔다. 아드님의 인생에서 꽤나 중요한 선택의 '지분'이 그렇게 발동되었다.



"어떤 결정을 하건, 영어 공부와 사람 사귀는 데 혼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건 본인이니까"



과제가 많이 쏟아진 지난주와 지지난 주. 그 와중에 감기에 걸려 고열이 났고, 처형네에서 학교까지 왕복 1시간을 걸어갔다 왔단다. 원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데 학교에 묶어 둔 자전거를 도난당했다고 - 그 자전거 구입할 때도 이런저런 후보 사진을 찍어 톡방에 올리고 조언을 구했던 아드님. 물론 어릴 때부터 비용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한 우리 부부의 영향이 크다. 제한된 비용에서 가장 좋은 것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결정 장애가 더 커졌을지도 -. 게다가 친하게 지내면서 비슷한 경로로 진학을 생각하던 한국인 친구 - 아드님 말로는 집에 돈 걱정이 없는 아빠가 부자인 친구란다. 그래서 이런저런 시도를 실패 걱정 없이 해도 된단다 - 의 돌연 귀국 때문에 더더욱 흔들리는 것 같다, 고 틈틈이 자주 고급 정보(?)를 알려 주는 처형 덕에 우리 부부는 스피커에 울리는 아드님의 목소리에 합창단이 되어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왜? 가보지 않은 길이니까. 아드님만큼도 정보가 없으니까. 이렇게 대화를 나눈 게 그제다. 이제, 아드님이 어느 학과 무슨 대학 리스트를 자기 순위로 결정을 해서 우리 가족톡에 올리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아드님의 고민을 듣고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문득 몇 해 전부터 회자되던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전 방문했던 헤어숍에서 60대 미용사가 했던 말도 떠올랐다.



'가스라이팅의 원조는 우리 부모 세대였던 것 같아요.....'



가스라이팅은 참아내야 한다는 설득을 당하는 과정에서 반복된 맹목적인 순종이다. 복종이다. 가장 중요한 건 결정에 대한 자기 지분이 없는 상태이다. 물론 자기 지분이 허용되지 않은 일방적이고 심지어는 폭력적인 환경 탓이다. 짬뽕 짜장, 양념 후라이드와 같은 선택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선택의 과정에서 자기 지분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후회와 실패, 성공에 대한 자기 지분도 더 커지게 된다. 당연한 이치다. 자기 지분이 발동하지 않은 채 결정되는 과정에 익숙한 이들은 함께하는 힘이 떨어진다.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를 싫어한다. 토론 속에 푹 빠지지 못한다.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감정적이다. 이건 내 경험상 나이에 관계없다.


어제 동생네와 밥을 먹었다. 동생은 두 남매를 키운다. 누나는 6학년, 막내는 2학년. 동생은 고집불통 막내 때문에 가끔 공공장소에서 폭노-폭발적인 분노-의 상황에 다 다르려는 걸 가끔 봤다. 막내는 '큰아빠, 큰아빠'하며 나를 잘 따른다. 나는 항상 막내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그래야 아이컨텍이 되니까. 그리고 양손으로 양팔을 잡는다. 그리고 눈을 보면서 말을 한다. 어제도 그랬다. '00아~ 어떤 거 살 거야? 뚜껑 없는 파란 차, 아니면 뚜껑 있고 문이 한 개인 빨간 차? 오늘은 한 개만 살 거니까. 잘 결정해 봐'라고. 그리고는 혼자 남겨두고 다른 곳으로 가는 척하면서 옆 매대로 사라졌다. 매대 넘어 슬쩍 쳐다보니 한참을 양손에 두 개를 들고 머뭇거린다. 결정이 오래 걸릴 것 같아 필요한 물건들을 골랐다. 십분 넘게 걸리고, 동생이 구입한 물건을 들고 계산대에 줄 서는 걸 본 뒤, 막내는 나를 찾았다.



 '큰아빠, 큰아빠? 근데, 큰 아빠 생각은 어때? 이게 나, 저게 나?'. '큰 아빠 생각에는 이런 것 때문에 저게 나. 그런데 그건 큰아빠 생각이야. 00이 생각은 어때?'



그리고 최종 결정해서 들고 온 오천 원짜리 모형 장난감은 큰아빠 생각하고는 다른 거였다. 이유를 물었더니, 나보다 자동차 마니아인 막내는 람보르기니 우루카를 사고 싶었는데 없어서 조금이라도 비슷한 우루스 같은 걸 골랐다면서 모르는 말만 했다. 근처로 드라이브를 가는 내내 차 안에서도 막내는 자기 결정에 대한 합리적인, 그러나 여전히 나는 못 알아듣는 이유를 계속 재잘거리고 있었다. 맞다. 이거다. 우리 남매가 열 살이 넘기 전에는 해주지 못했던, 허락하지 못했던 경험이다. 나도 남매도. 그러다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나쁜 아빠의 기억이 또 하나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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