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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21. 2023

핫도그가 알려 준 지혜

모든 부부를 응원합니다

퇴근하면서 집으로 향하는 또 다른 도로. 편의점 맞은편에 얼마 전 노란 꽈배기 가게가 오픈했습니다. 붕붕세권에 사느라 겨우내 붕어빵을 먹을 수 있었는데 그 겨울의 따끈 달콤함이 이제 바삭 달콤한 그 집으로 옮겨 갈 거라는 본능적인 느낌이 스쳤습니다. 그래서 가던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지요. 처음에는 진열대를 보고도 핫도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노란 입간판에는 메뉴가 있는데 말이죠. 그랬습니다. 꽈배기 집을 들어서면서 내 머릿속에는 울퉁불퉁, 통통한 길거리표 핫도그가 들어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생긴 게 없으니 그 이미지와 실물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버그가 잠깐 발생하는 게 정상이겠지요. 


젊은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핫도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발견한 모양은 얇은 피에 길쭉하게 생긴 모양이었습니다. 츄러스보다는 통통하고 울퉁불퉁 핫도그보다는 슬림했습니다.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두 개를 샀지요. 그리고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속에는 그 모양과 크기 그대로의 거대한 소시지가 통째 들어 있었습니다. 적당하게 밀가루 섞여 있는 연분홍빛 옛날 소시지가 아니었습니다. 육즙이 가득한 뽀득뽀득 씹히는 거였습니다. 


봄비 온 뒤 햇살 가득한 토요일. 간단하게 브런치를 먹고 11시가 조금 넘어 전.투.적.인 일주일 대청소를 끝냈습니다. 내가 설거지~옥에서 빠져나오는 동안 아내는 욕실을 청소하고, 따님은 이방 저 방 침대 위 이불들을 정리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는 동안 타닥이는 여기 와서 기웃, 저기 가서 기웃하면서 빨리 끝내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렇게 토요일 한나절을 대청소 삼매경에 빠진 뒤 간단 브런치에 모두 허기가 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내려가 차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 꽈배기 가게로 갔습니다. 5분 정도 기다려 핫도그 2개, 커다란 치즈볼 2개를 샀습니다. 초벌해 놨던 제품들을 금방 다시 튀겨줘서 종이봉투 자체가 뜨끈뜨끈 합니다. 그걸 차에 싣고 다시 집 앞으로. 아무도 아직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식지 않게 내려왔으면 하면서 따듯한 햇살이 들이치는 차 안에서 노곤함을 즐겼습니다.   


햇살에 더 반짝거리는 따님이 뒷문을 열면서 안으로 소리칩니다. 오 냄새 너무 좋아, 아빠. 좋아? 하고 대답하는 사이 아내가 앞문을 열고 탑니다. 따님은 타자 마자 치즈볼을 한 입 베어 뭅니다. 분홍빛 입술에서 설탕 알갱이들이 다시 반짝반짝거립니다. 아내는 얼굴을 마저 다듬고 먹겠다고 먼저 먹으랍니다. 그래서 기다란 핫도그 하나를 단박에 먹었습니다. 허기진 위장 위로 뽀드득 육즙이 줄줄 흘러 들어갑니다. 따님이 들고 내려온 커피 한 모금이 온몸의 피로를 사르르 씻어 줍니다.     


아빠, 치즈볼 대박이야. 정말 이 집 치즈볼은 역대급이야. 맛있어. 여기, 안에 치즈 봐봐. 엄청 나. 가득 들어 있어. 치즈 크기가 치즈볼 크기랑 같아. 아빠, 하나 남겨 줄까. 어때? 내가 다 먹을까. 아니다. 한입 남겨 줄게. 참 반응을 잘하는, 눈치 백 단의 따님입니다. 그래서 따님 눈치가 보일 때가 요즘 더 많아졌습니다. 잔소리를 좀 덜 듣기 위해. 그러는 사이 얼굴을 매만지던 아내가 혼잣말처럼 그럽니다. 그 핫도그는 맛있는데 너무 커. 하나 혼자 다 못 먹겠더라고. 룸미러로 따님과 눈이 딱 맞았습니다. 내가 먹던 핫도그 마지막 꼬다리 한 입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집 핫도그 끝부분은 얄상한 몸통보다 살짝 뭉툭하게 통통합니다. 아마 핫도그 위에 반죽을 바르면서 끝부분을 마무리하느라 손이 지나가던 반대 방향으로 반죽을 걷어 올리면서 생긴 거 같습니다. 그 덕에 짙은 갈색으로 잘 튀겨진 꼬다리는 바삭함이 더 큽니다. 그런 꼬다리를, 그것도 육즙 가득한 소시지가 끝까지 들어 찬 그 꼬다리를... 결국 따님입으로 쏘옥 양보할 수밖에. 그러고 나서 비닐장갑을 낀 김에 하나 남은 아내의 핫도그에 손을 댔습니다. 먹은 게 아니라, 그냥 진짜 손가락으로 만지작 거렸습니다. 왼손으로 운전을 하면서. 그렇게 긴 핫도그를 오른손가락 힘으로 네 토막을 냈습니다. 잘랐지요. 아내가 먹기 편하게 해 주려고. 여전히 아내는 조수석 작은 거울에 얼굴을 다 넣고 아름답게 매만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화장이 다 끝난 아내는 그제야 자기 몫의 핫도그 조각이 담긴 종이봉투를 들여다봤습니다. 잠깐을 들여다보더니 역시 혼잣말처럼 이럽니다. 누가 핫도그 이렇게 다 잘라 놨어. 소시지가 다 밀려 나왔네, 먹기 불편하게. 어. 그거 내가. 자기 먹기 편하라고.... 뒷자리에서 이어폰을 끼고 있던 따님이 그때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나 핫도그 한 입 먹어도 돼. 응. 하면서 아내는 봉투째 따님에게 건넵니다. 봉투를 받아 든 따님이 들여다보다 그럽니다. 누가 핫도그 이렇게 다 잘라 놨어. 센스 있게. 그러자 다시 흥얼거리는 따님의 콧소리 사이사이에서 아내가 나지막이 그럽니다. 하하 나는 아빠 그렇게 잘라놨다고 뭐라 그러고 있었는데 하하.



같은 경우를 정반대로 해석하는 상황에 혼자 조용히 생각해 봤습니다. 파란 하늘이 봄비, 황사, 미세먼지, 꽃샘추위, 봄눈, 한여름 무더위 그리고 다시 파란 하늘에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렇게 앞유리 한가득 봄이 햇살이 되어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따듯한 평온함이 차 안 한가득입니다. 그러면서 명확하게 한 가지를 더듬거리게 됩니다. 아내는 분명 그렇게 먹고 싶다고 하지를 않았더군요. 그냥 한 개의 양이 '많다'고만했던 겁니다. 그 이야기를 나는 '작게 잘라'먹고 싶다, 고 자체 해석해 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김치류도, 오징어도 찢어놓고 먹는 것보다 먹으면서 찢는 걸 더 좋아라 한다는 사실이 핫도그 조각 때문에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대왕 치즈볼을 두 개 다 먹는 뒤 배가 불렀던 따님은 원래 좋아하지 않는 소시지 핫도그를 딱 한 입만 '맛보고' 싶었던 거였습니다. 그 마음이 그렇게 보인 겁니다. 그렇게 속을 채운 체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 있는 겁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여야 한다면 누구나 불편합니다. 그렇지요. 인지상정입니다. 오늘은 핫도그 덕에 지혜를 하나 얻습니다. 지금, 제가,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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