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아침, 첫끼니는 새벽 6시부터 굽기 시작하다, 연기감지기가 '삑삑'거리면서 요란하게 울려서, 급하게 창문과 출입문을 활짝 열고 만든 캐나다산 쇠고기 등심 스테이크. 1kg에 29.22 CAD(한화 약 25,000원)하는 저렴한 가격, 엄청난 두께였지만, 평범한 프라이팬에 구웠지만, 부드럽고 맛있었다.
음식물 하나 남기지 않고 아침을 먹은 뒤, 루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들이 보내준 영문 그대로 다음과 같이.
"Good morning, I'm guest Yoon. I have some questions for you. How do I dispose of trash like plastic and food waste? Also, How can I reinstall the plastic bag in the trash can?"
금세 노크 소리가 들렸다. 푸근함이 느껴지는 아줌마, 루바였다. 손에 직접 쓰레기봉투를 여러 장 들고 와서는 '선데이 모닝' 외에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인도식 영어 발음으로 뭔가를 설명했다. 내가 더 있는 뒤에 있었던 신발장 같은 문을 열라고 해서 봤더니, 거기가 분리수거하는 공간이었다. 쓰레기봉투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아침에 내놔야 한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 버렸다. 싱크대에 음식물 처리하는 게 없어서 물어봤더니, '소프트'한 음식물은 '토일렛'에 버리란다, 헐. 그리고 음식물 찌꺼기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단다. 루바가 우리 숙소 위 자기 본체로 돌아간 뒤 나는 생각했다. '정말 소식해야겠다'라고.
아들 덕분에 날아온 캐나다에서 코로나 덕분에 평생 처음, 2주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실내'에만 머물러야 된다. 물리적인 공간에 제한되어 버린, 갇혀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첫날부터 나는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실험적인 자유.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볼 게 없어서 꺼놓은 TV, 숨을 공간이 없이 공유되는 콤팩트 한 숙소, 양이 정해져 있는 먹거리, 사람들과 접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복합적으로 자유를 느끼게 해 준 것이다. 그 속에서 아들은 아들대로, 나는 나대로 남아도는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벌써.
나와 반대로 밤을 새운 아들은 지금, 골아 떨어져 있고, 나는 두 번째 모닝커피와 함께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