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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13. 2023

원웨이 티켓

사진:unsplash

남매 어릴 적 다른 세 가족과 함께 홍콩-대만-태국-말레이시아로 이어지는 가족 여행을 서너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거대한 투자, 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은 다양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여느 부모처럼.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남매들이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을 가지고.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는 남매 교육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분명.


그렇게 부모가 되었다는 핑계 삼아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으니 다른 나라로 가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 이야기는 어린 남매를 대신해서 의사소통을 내가 다 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른 세 가족들과는 항상 같이 다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 나라 그 도시에 도착해서 낮에는 각자 식구들의 성향대로 움직이고 저녁에 다시 만나기, 어느 날은 같이 움직이기, 어느 날은 숙소에서 만나기 등. 여러 방식으로 자유여행을 즐기는 타입들이었다.


여기서 잠깐. 우리 집에서는 아내는 수학, 나는 영어를 고등학교 때 아주 잘했다, 는 걸로 남매들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아내는 영어 울렁증이 나는 수학에 대한 근원적인 아픔이 있다는 이야기를 식탁에서 가끔 나누다 보니 남매들에게는 분명 그렇게 각인이 되어 있었던 거다. 결국, 여행에서 내가 모든 의사소통을 완벽하게 해결해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출발한 여행이었다. 아빠가 있으니까 걱정 없어하면서.


뭐, 나도 영어를 학창 시절 이후에는 자주 쓰지는 않았지만, 쓸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자신이 있었다. 내가 시골에서 영어를 배웠어도 학력고사 영어 만점에 빛난다. 어린 운동선수 출신이 늦게 시작한 공부에도, 평범함 머리에도 그 덕에 사범 대학에 두 번만에 합격을 한 건 분명한 것 같다, 고 나는 지금도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그 영어가 이 영어랑 같을 리가 없으니까, 영어는 언제나 내 마음을 빚낸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에서 술술(?) 나오는 영어덕에 며칠을 잘 지내고 있었다. 모든 가족이 넷씩이었고 아이들이 둘씩이었다. 그중에서 지금 스물 하나인 아드님이 가장 큰 형, 오빠였다. 그 형, 오빠가 열한 살 때. 방콕 짜오프라야 강가. 수산물 시장과 연결된 선착장. 맞은편 쇼핑몰로 수상버스를 타고 건너갈 예정. 아빠들 모두 자기 가족의 티켓을 사고 있었다. 다다음이 내 차례. 그리고 나도 그렇게 티켓을 4매 구입했다.


그리고 네 가족들과 배를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만 티켓팅한 금액이 달랐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질 않지만, 몇 배는 더 주고 산 거다. 넉넉한 예산으로 다니는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 금액 역시 예정된 예산안에 포함되어 있는 거였다. 으흠, 오케이, 어깨 들썩. 여유 뿜뿜 하면서 분명 정확하게 구입했다, 싶었는데.


다른 집 아빠들과 표를 비교해 보고서야 알았다. 나만 oneday 티켓이었던 거다. 나 참. 여기서 건너편 쩌~어기 선착장까지 십여분 조금 넘게 타는 oneway 티켓을 사야 하는 건데, 그만 판매하는 여직원의 되삼 키는 짙은 발음에서 원데이와 원웨이를 구분하지 못한 거였다. 하지만 여전히 티켓을 구입하는 다국적 여행객들의 줄은 꽤나 길었다. 그 뒤에 서서 다시 기다리는 건 배 시간도 있고, 일행을 모두 기다리게 해야 한다는 미안한 조급함이 컸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환불을 어떻게 요청할까 가 더 걱정이었다.


휴대폰을 들고 다니면서 바로바로 해석해서 음성을 들려주는 지금의 아이들처럼 폰을, 어플을 사용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을 때였기 때문에. 그것보다 나도 그 정도 영어는 듣고 말할 수 있다는 영부심의 부활을 보여줘야 한다는 한국식 경쟁심이 내 안에서 휘휘 거리고 돌아다니고 있었던 게 분명하지 싶다. 아내와 일행의 응원에 힘입어 환불을 어찌어찌 요청을 했는데, 내 귀에 남은 건 '놉, 놉, 놉'이었다.


규정상 어쩔 수 없단다. 뒷면 노티스에 떡하니 쓰여 있었다. 그걸 내가 왜 모르냐고. 실수였다고. 바꿔달라고, 얼른 바꿔달라고, 때를 쓰고 싶었으나 방콕 하늘에 떠 있는 뜨거운 태양이 뒷사람의 눈빛이 되어 내 목덜미에 위에서 따끔거렸다. 젖은 머리칼이 키에누 리브스 닮은 이가 잇츠 오케이, 잇츠 오케이 했지만 난 안 오케이였다. 결국 포기했다. 그 놉, 놉, 놉이 아마 송강호 배우 주연의 그 영화 제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그렇게 들리는 이유가.


다음 주에 아드님을 만나러 비행기를 탄다. 3년 만이다. 이번에는 직항이 아니라 경유다. 직항, 너무 비싸다. 그래서 LA에 들려 밴쿠버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번 길에는 열여덟 따님이 동행한다. 그래서 살짝 걱정이 덜 된다. 엊그제 본 그 비싼 시험 모의고사에서 수능 영어를 한 번도 공부해 본 적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좋은 점수가 나왔다며 점수표를 찍어 보냈다. 점수 체계가 어떤지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분명 나보다는 영어를 더 잘 듣고 잘 말하는 것 같아 덜 걱정이다.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 익숙한 팝송이 귀에 와 꽂힌다. '윈웨이~티켓. 원웨이~티켓. 원웨이~티켓, 원웨이~티켓 오오오~~~'. 그런데 나는 이 팝송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들린다. "원웨이~티켓, 윈웨이~티켓, 원데이~티켓, 원데이~티켓 도오오~ 구분 못허냐?'. 비트 넘치는 가사가 마치 나의 과거를 다 기억하고 있다는 듯. 아마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이 가사 부분에서 분명 혀를 뱀처럼 날름거리면서 불렀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여행길에서는 조금 더 과묵해져야지 않을까 싶다. 따님 헬미 pl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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