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최소 공배수 찾아내기
Summary. Baseline Experience는 정성적 & 정량적인 분석을 통해 도출된 경험(기능)의 최소공배수를 말합니다. 경험의 단위를 정성적 뿐만 아니라 정량적인 분석이 가능한 최소한의 범위로 정의하여 고민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훨씬 더 완성도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습니다. 경험을 정량적인 단위로도 분석하며 자연스럽게 그 경험을 개선했을 때 개선이 되었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지표(Goal) 역시 구체화되기도 하는 방식입니다.
최근 프로덕트팀과 진행한 프로젝트 중 배송지를 구분하는 기획/설계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마켓컬리의 경우 배송지역을 '샛별배송'지역과 '택배지역'으로 구분하여 관리하고 있는데(더 정확하게는 배송불가지역도 있기는 하지만요), 배송지 구분과 관련해서 컬리 고객님들의 여러 불편함을 접하곤 합니다.
물론 배송지 필터 기능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논의를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비지니스 로직과 운영방식이 다른 컬리의 입장에서는 간단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능은 아니었습니다. 기능적인 부분을 떠나 경험적인 관점에서도 상품 하나하나를 엄선에서 제공하는 '큐레이션'의 경험이 매우 중요한 컬리에게 배송지 구분 필터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간단한 결정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프로덕트팀과 고민해봤습니다.
처음부터 요구사항도, 아이디어도 많은 상황이었지만 조금 더 고객 경험 관점에서 빈틈없는 기획을 하기 위해서 더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했습니다.
(배송지 구분과 관련된 기능은) 누구를 위한 경험인가?
우선, 정량적인 데이터(매출 비중)를 기반으로 택배 배송 고객이 전체 컬리 경험의 얼마를 차지하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배송지 구분 인지의 부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몇 가지 대표 시나리오를 세워보고, 데이터로 그 케이스들의 비중을 파악해봤습니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부터 현재 보유한 데이터로는 가시화할 수 없는 케이스들이 몇 가지 또 도출되었습니다. 추가적으로 Tracking 코드를 심어야 하는 케이스들인거죠.
정량적인 분석과 동시에 물론 여러 타사 서비스들의 기능을 리서치하고,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타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경험보다는 컬리의 고객 유형별 경험을 더 비중 있게 고민해봤습니다.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개념을 활용하여 '배송지 구분'과 관련된 경험의 기준점들을 정리한 후 각 고객군별로 문제와, 해결방안, 그리고 기대효과까지도 고민하고 정리해봤습니다.
위의 단계들을 거치면서 제가 프로덕트팀과 고민을 하고 도출하고자 했던 목표는 결국 Baseline Experience을 발견해보는 것이었습니다. Baseline Experience는 미국의 유명한 디자인(UX) 컨설팅 회사인 Adaptive Path에서 소개한 Baseline Journey의 개념을 벤치마킹하여 적용해본 방식인데요, 사실 개념 자체는 동일합니다. 그 적용범위가 기능 단위인지, 서비스의 총체적인 경험(기능의 집합) 단위의 차이점만 있는 것뿐이죠.
제가 Baseline Experience라는 개념을 시도한 가장 큰 이유는, Adaptive Path의 Baseline Journey와는 다르게, 경험의 단위를 정성적 뿐만 아니라 정량적인 분석이 가능한 최소한의 범위로 정의하여 고민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훨씬 더 완성도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험을 정량적인 단위로도 분석할 수 있다는 뜻은 자연스럽게 그 경험을 개선했을 때 개선이 되었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지표(Goal) 역시 구체화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위의 고객 유형별 경험 분석을 통해 어떤 문제점들이 대부분의 유저들이 공감하는 내용인지, 그리고 최대한 많은 고객 유형을 만족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는 과연 무엇인지 가시화했습니다. 또한 앞단에 진행했었던 정량적 분석을 통해 우리의 아이디어들이 정성적 분석의 틀에 갇혀 사고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비지니스적으로도 영향도가 어느 정도가 될만한 경험인지를 한번 더 검증했습니다.
위의 단계들을 거치면서 정리된 몇 가지 결론이 있었습니다.
배송지 관련 경험 개선을 통한 최대 영향범위는 전체 서비스 고객의 경험 중 약 9% 정도임
신규회원, 특히 택배 배송지역 신규회원,의 경험에서 집중할 수 있는 영역은 배송지역에 대한 '교육'과 '인지'의 영역으로 세분화하여 관리할 수 있음
위의 방향성 중 '교육'의 영역보다는 '인지'의 영역이 구매 경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우선순위를 높여 관리함
'인지'의 영역에서 경험 검증 시 가장 확실한 정량적 기준이 될 수 있는 touch point는 주문서 페이지에 존재하는 조건적 주문 에러 메시지임
위의 결론들을 기반으로, 이번 주에 작업 티켓을 구체화하여 앞으로 약 2주 내에는 기능 적용까지 완료될 예정입니다. 이번에 진행할 작업은:
상품 선택 화면에서(상품의 수량을 선택하는 화면) 샛별 배송 지역만 배송이 되는 상품을 수식하는 샛별 배송 Only 태그를 노출
현재 제공되는 결제 완료 타이밍이 아닌, 주문서 진입 시 혹은 배송지 검색 시 에러 메시지 노출
주문서에서 두 가지 에러 케이스에 대한 데이터 트랙킹 코드 심기
특히 마지막 트랙킹 코드를 심고 수집되는 데이터를 통해 그다음 진행될 기회 영역 및 좀 더 '공격적인' 경험의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프로젝트 티켓의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사실 정리하면 그럴싸해 보일 수 있는 작업일 수는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업무를 진행하면서는 많이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티켓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제로 적용을 시도해보고 싶었던 구체적인 아이디어까지 있었고, 요구사항들도 상당히 구체화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의식적으로 보수적인 개선을 선택하고 진행했으니까요. 2주 단위로 진행하는 프로덕트팀의 스프린트를 마무리할 때마다 진행하는 회고에서 해당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친구도 솔직하게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치열하게 많이 고민한 것에 비해서 최종적으로 진행하기로 한 기능의 범위는 많이 좁은 것 같아서 속상한 마음이 있다고요. 다만, 무슨 말인지 너무 이해하고 동감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말한 친구에게 제가 했던 대답은 "그게 당연한 거다"였습니다.
정성적으로, 정량적으로 치열하게 경험에 대해 분석하고 Baseline Experience라고 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의 가장 큰 목적은 '고객의 경험을 진심으로 고민하기 위해서'입니다. UX를 하는 사람은 우리의 고민이 부족하면 구멍 난 경험이 고객한테 그대로 노출된다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민한 깊이에 비해서 좁은 경험만 소개되고, 많은 고객들이 심지어 인지를 못하는 수준이 된다고 해도 그게 고객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생각해야 하는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상식'에 맞는 서비스가 되어가도록 프로덕트팀과 항상 노력 중입니다.
항상 같이 고민해주고 새로운 도전 같이해주는 프로덕트팀, 고마워요!
고마운건 고마운데... 그래도 제 짤은 그만 좀 만들어요...
+ 해당 프로젝트는 프로덕트팀 호수민님이 진행한 작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