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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LL Jul 10. 2021

노란색에 대한 글은 아니지만 노란색

곰곰히 겨우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몇가지 있다. 중학교 때는 HOT세대도 아닌데 장우혁을 좋아했고 노란색을 좋아했으며 기린을 가장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는 크레파스를 좋아했고 요구르트를 좋아했고 나를 좋아했다. 대학교 때는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했고 술과 사람을 좋아했다.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걸까. 요즘 하던 노동이 끝나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지 3일 째. 아무 의욕도 없고 힘도 없다. 새벽에 먹방 보면서 "나도 내일 꼭 먹어야지" 하는 다짐 정도가 내가 하는 일의 전부 일지도. 거리에 버려져 굴러다니는 비닐봉지 처럼 무기력한 이유는 무엇일까. 언제부터 그런걸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생각이라는 행위조차도 버거워진다.


카페에서 지선이를 만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걸을 힘도 없어서 마을 버스를 탓다. 마을 버스는 우리집 최대한 돌아서 가기 대회라도 나가는지 독산동 구석구석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금천구청역을 지나서 독산역을 지나고 빅마켓을 지날 무렵 노란색을 발견했다. 잊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노란색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었다. 해질 무렵 노을을 가득 담은 빅마켓 건물은 계란노른자 만큼은 아니였지만 유난히 노르스름했다.(빅마켓 건물은 원래 회색인데도)


우리집 최대한 멀리 돌아서가기 대회에 나가는 마을버스는 노란색 빅마켓을 지나 홈플러스를 지나고 남부여성발전센터를 지나 금천구립도서관을 지나고 금천체육관에 겨우  내려줬다. 나는 크게 -둘러서 가는 버스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좋아하는  마음이라 사실 좋아하는  자체에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닌데 나는  지금 무엇도 좋아하지 않는지 약간 씁쓸했다. 어쩌면 나는 비용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나는 좋아하는게 없나? 정말? 정말 진짜로? 열번 정도 되물으니까 슬그머니 떠오르는 몇가지가 있다.


최근에 스탠리에 미쳐서 내 입은 하나인데도 텀블러만 세개, 네개를 샀다. 그리고 집에서 맥주 시원하게 먹자고 스탠리 비어파인트라는 보냉컵을 굳이 한개만 사지 않고 네개가 든 것을 한세트 샀다. 맞다 이 정도면 사랑이다. 그리고 맥주. 원래 나는 소주파였는데 이제는 맥주 없이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여권 없어도 비행기가 없어도 맥주만 있다면 이미 나는 세계여행중인 것이다.


내가 있는 이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더 나아가 지옥이라는 것을 의심하기 전에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좀 더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태그를 다는 게 좋겠다. 좋아하는 것과 그저그런것 그리고 싫어하는 것. 내 마음이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살면서 똥으로 된장찌개를 끓여먹을 순 없으니. 스탠리와 맥주 그리고 또 서른 살 박지영이 좋아하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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