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툭튀, 통역사에서 IR매니저로

동시통역사로서 쌓은 경험을 실무 현장에 적용하게 된 계기와 마음가짐

by Bohol
어느 겨울, 갑자기 이직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내 커리어에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순간이라고 할 만큼 이 변화는 한 번에 훅하고 들어왔다. 힌트가 없었다.


물론 출산과 육아로 인한 일시적 멈춤은 있었지만 13년 차 통역사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선배들만큼 통역의 호황기를 누리지 못해 툴툴거릴 수 있는 입장이었지만, 다양한 동시통역 기회가 주어지고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통해 나름의 성장을 이루었던 조직 내에서 일할 수 있는 감사한 상황이기도 했다. 다만, 성장 지향적 삶과 안정 추구적 삶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 통역사로서 성장 지향적인 삶을 살기 위해선 이 안정적인 틀을 깨고 조직 관리자로서 추가 역할이 있는 곳으로 이동이 필요할지 고민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코로나 환경이 이런 고민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줬던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업계나 비슷하겠지만, 사람들이 모여 논의하는 이벤트는 통상 날씨가 좋을 때 이루어진다. 따라서 통역의 성수기도 늘 봄과 가을이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는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쉬어 가는 시기여 왔다. 하지만 그 해의 12월은 예고 없는 큰 변화가 있었다.


시작은 팀장님과의 면담이었다. 나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다른 계열사로의 이동이었다. 이동 후 내가 해야 할 일이 매우 희미했다. 특정 임원의 수행 통역인지, 통역 조직이 새롭게 필요한지, 통역과 다른 일을 겸비할 사람이 필요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땐 아무도 모르는 게 맞았다. 조직 차원에서 보면 백지와 같은 상황 속에서 맨파워를 보강하려는 노력이었고, 개인 차원에서 보면 내가 그림을 한 조각, 한 조각 그려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생각의 정리가 불가능했던 그 시점의 나는 내가 가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HR과의 대화 끝에 팀장님과의 대화를 강하게 요청했지만, 주요 경영진들과의 면담으로 나의 이동은 확정되었다. 그즈음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진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그리고 한번 도전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 당시 나의 이동에 대한 말이 많았다는 걸 안다. (극히 나의 관점에서) 불필요한 관심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나에게 이런 설왕설래는 모른척하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누구에게는 이 이동이 스카우트로, 반강제적 또는 자발적 이동으로 비쳤을 텐데 사실 그 부분은 나에게 전혀 의미가 없었다. 나에겐 통역을 지속할지 아니면 다른 업무에 새로운 에너지를 쏟을지를 정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전직, 갑툭튀 IR


나보다 혜안이 훨씬 높으실 최고경영자의 결정을 따랐다. 도전해 보겠다고 결정한 이상 무조건 따를 일이었다. 나의 이전 커리어 상 회사생활을 IR에서 시작하는 게 좋을 거라는 조언이었다. 그리고 나를 가여운 한 명의 구성원으로 보시고 날카로운 조언을 남겨 주신 또 다른 경영자의 말씀도 마음에 새겼다. 여기에서 뭘 할지 나 스스로 정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려 주지 않을 것이므로, 이도저도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어떤 길을 갈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3개월 뒤에 나의 결정을 다시 확인하겠다는 말씀으로 타임라인도 정해 주셨다.


누군가에게 선포하진 않았지만 한 개인을 위한 통역 업무를 선택하진 않을 것이고, 앞으로 “통역은 나의 부캐, IR은 나의 본캐”로 삼아야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여기에 도달하는데 3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 결정이 앞서 섰기 때문에 나는 이 지표에 맞는 크고 작은 선택들을 할 수 있었다.


오늘 나의 선택에 지표가 되어줄 목표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이러한 경험으로 태도가 좀 달라졌다는 부분일까?


경험이 덜 있던 과거에 나에게, 변화는 일종의 공격 또는 넘어야 될 산이었다. 변화를 요하는 움직임은 나의 편안한 일상을 침해하는 공격,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나의 생각은 다음 단계를 해치워야 한다는 부담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반응했던 나는 옳았다. 모두에게 옳았다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옳았다. 변화에 반응하고 대응하는 것은 나에게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 나, 그리고 나의 삶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변화를 대하는 나의 생각이 좀 더 의연해졌다. 더 이상 공격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간 변화에 힘들게 대처했던 나의 경험이 근력이 되었기 때문일까? 지금 나는 변화가 계속 있을 거라고 가정한다. 그게 내 안 속에서의 변화이든 외부 요인으로 인한 변화이든, 변화는 늘 찾아온다. 나이가 들어 생긴 약간의 이점이 있다면 가끔 좀 더 큰 그림에서 이 변화를 해석해 본다. 이 변화를 통해 가져올 또 다른 변화도 가끔 그려본다. 어떤 날은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생각했다가, 어떤 날은 나라고 이런 일이 없겠어? 하며 기대감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늘 내 속에 감사함으로 남은 대화가 있다. 그분의 오랜 경험을 전해주시며, 오늘의 나의 결정에 지표가 되어줄 큰 그림에서의 목표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었다. 그 목표는 꼭 거창하거나 상세할 필요는 없고 내가 원하는 대강의 미래의 모습이면 되고, 그 목표가 있다면 오늘 나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일상적인 모먼트에 덜 흔들릴 수 있고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모먼트에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적용한 버전은 조금 다르다. 나에게도 명확한 미래 그림이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여러 이유로 그렇지 못했다. 내 인생에 지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먼저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올 한 해 1년이란 시간을 주었다. 간간히 틈이 날 때 생각해 보기로 했다. 12월이 다되어 가는 이 시점에 나는 내 목표를 세웠을까? 아직 잘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100% 확신은 없더라도 조금은 예전보다 알 것 같다. 아마도 내년 이 맘 때는 조금 더 확실해 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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