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用 언어와 실무用 언어의 차이

맥락 이해를 중심으로 소통, 그리고 몇 가지 Soft Skills에 대해

by Bohol
통역사로서 얻게 되는 Edge

사람들은 막연하게 통역사는 영어를 잘 할 거라고 기대한다. 물론 언어에 통달해야 하는 것은 유능한 통역사의 전제조건이겠지만, 영어를 잘한다고 훌륭한 통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미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영어를 잘 할 거라는 사실에 크게 현타가 온 적이 있다. 호기롭게 영어로 월급 받는 인생은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와 비슷한 현타로 비슷한 결심을 했던 내 친구는 영어로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되었고 (다른 과목보다 정치학은 그야말로 언어 빨이 있어야 한다). 나는 영어로 밥값을 버는 통역사가 되었다.


치기어린 결심은 조금 날을 다듬어 영어가 ‘최종 목표’가 아닌 ‘도구’가 되는 일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던 모양이다.

통역用 영어 vs. 실무用 영어

통역에 사용하는 영어는 연마하는 것에 가깝다. 실제로 통역대학원에서는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화자가 말한 내용을 효율적으로 정확하게 기억하고, 이 기억의 덩어리를 바탕으로 다른 언어로 정확하게,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방법을 훈련한다. 통역에서 요하는 역량은 두 언어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기술적으로 변환하는데 초점이 있다.

한편, 자신의 의견을 잘 피력하거나, 다른 사람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거나 설득시키는 것은 통역 영역 저 넘어 있다. 이 부분이 사실 실무 영어 또는 영어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라고 생각되고, IR 매니저 역할을 하며 함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영역이다.

약간의 언어실력과 영어 앞에서 주눅들지 않을 마인셋이 준비되었다면 실무 영어를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요소에 대해서 다루기 전에, 몇 가지 Soft Skills의 용도를 인지하고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다루고자 한다.

앞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Soft Skills은 모두 업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뒷받침되어야 한다. 모쪼록 원활한 소통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양념과 같은 접근방식에 관한 것이다.

Soft Skills – 겸손

IR미팅때 만나는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은 동시다발적으로 다수의 기업들은 이해 및 분석해야 한다. 우리 업계 또는 회사에 대해 직원보다 더 잘 아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보통 Generalist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아주 인상 깊은 영국 기관투자자가 있었다. 어느 금요일 오후였다. 여의도 밖에선 시위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 투자자는 회의실에 성큼성큼 들어와서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통창 앞에 서서는 “밖에서 지금 금요일 파티 준비를 하냐”며 유쾌한 대화의 물꼬를 텄었다. 금요일마다 창밖에서 들리는 확성기, 노래 소리가 방해가 되었던 찌든 직장인들에게는 몹시 참신하고 유쾌한 농담이 아닐 수 없었다.

이어 미팅을 시작하며 그는 자기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 소개한 뒤 매우 겸손하게 아직 업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아주 말이 안 되는 질문들을 하게될 텐데 이에 대한 이해를 먼저 구하고자 했다.

그의 참신했던 농담을 곁들인 편안한 태도에 이어, 스스로 준비해오지 않았음을 사전에 자백했던 지라 별 기대감 없이 미팅을 시작했다. 하지만 되려 하나의 질문에서 또다른 질문으로 이어지는 그의 질문 리스트는 매우 예리했으며, 질문을 깃대 삼아 전개되는 대화 흐름은 깊이가 더해갔다. 그의 겸손과 달리 말이 안 되는 질문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딱 한방울의 유머감각과 겸손함은 그와의 지적인 대화를 더욱 더 빛나게 했다.

업계의 모든 사람이 아는 내용을 헤깔려하는 대화 상대도 있을 수 있고, 있어 왔다. 다만, 앞서 언급했던 Generalist 성격의 투자자는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은 되려 상대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들어내는 행동일 수 있고, 여기에선 Host로서의 겸손을 발휘하여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미덕을 보이면 내가 그 영국신사로부터 받았던 깊은 인상을 상대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Soft Skills – 한 방울의 유머

미팅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이유로 약간의 긴장감, 불편함, 각오 등 을 가지고 올 것이다. 이런 자리에서 누군가가 유머 또는 위트 한방울을 떨어트려 준다면 한 순간 긴장이 풀리며 더 원활한 논의로 이어진다.

이런 유머 감각은 늘 내가 장착하고 싶은 무기이나 좀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타고난 사람들만 가능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주 적절한 선을 지키며,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회사 용’ 유머 한방울을 떨어 뜨릴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부럽지 않을 수 없다.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미팅이 연일 이어질 때가 있었다. 관련 타스크 멤버들은 거의 매일 자정까지 야근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착석한 뒤 주어지는 짧은 2-3분의 시간 동안 한 경영진은 늘 여유 있고 기분 좋은 무드를 보여주셨다. 가끔, 잔뜩 긴장한 채 앉아 있는 구성원들에게 관심을 주셨고, 일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시면 그 사이 긴장도가 살짝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트럼프의 두번째 대선 당선이 확정된 직후, 마침 뉴욕 컨퍼런스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때 컨퍼런스 프로그램 중 하나로 <대선 결과에 따른 미중 관계 전망> 대한 런치 세미나가 열렸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투자자들을 위한 이벤트이지만 사전에 증권사에 말하면 기업 IR 구성원도 참석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막판까지 누가 당선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재선이 막 결정된 후였다. 그리고 본 세미나의 연사는 민주당 색이 짙은 뉴요커 작가였고, 본 작가를 소개하는 말 말미에 바이든 현 대통령의 자서전을 집필했다는 이력이 더해졌다.

이 말이 끝나자 마자 작가는 “서점 가보시면 제가 쓴 바이든 자서전이 폭탄세일 코너에 있을 거에요. 최저가에 팔고 있으니 관심 좀 부탁 드립니다.”라고 했다. 관중은 폭소를 터뜨렸다. 자서전을 쓸만큼 현직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으니 트럼프 재선으로 매우 암울한 상태였겠지만, 이렇게 쿨내 넘치는 농담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한국 사람으로서 왠지 모르게 참 부러웠다.

이런 아주 지적인 유머감각을 가진 동료가 있다. 그에게 항상 능글미가 있다고 내가 말하곤 하는데, 긴장감이 높아지는 순간일 수록 그의 능글미 레벨이 올라가는 아주 신기한 모습이 관찰되었다. 아마도 그가 스트레스를 Bend하는 노하우일까? 누구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 위트있게 농담을 던지는 그의 능력 또는 미(Beaty)도 참 닮고 싶었다.

이건 또 다른 동료와 그의 능글미에 대해 칭찬하면서 전해 들은 내용이다. 컨퍼런스에서 IR미팅이 진행될 때, 미팅 종료 시간이 다가오면 종을 울리거나, 5분 남았다는 식으로 알려준다. 근데 유독 그 미팅 현장에서는 벨을 너무 자주 울려서 참석자들이 짜증이 나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한번 알리고 또 알리고 또 알리지 않았을까? 그 순간 그는 “꼭 크리스마스 느낌이네요!”라는 말로 한번 분위기를 환기시켰다는 것이다. 이것 말고도 참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기억이 다 나지 않는 것이 참 아쉽다.

Soft Skills – 팀워크

논의를 진행할 때, 혼자가 아닌 Team으로서 우리 조직의 의견을 전달하는 경우에 대한 것이다. 마치 통역부스에 있는 두명의 통역사의 발언이 하나의 목소리로전달되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맥락의 의견을 Support할 때는 동료의 어떤 의견에 대한 것인지를 암시하며 추가 디테일을 더하는 것이(add) 좋다. 이때 이미 언급되었던 내용을 또 말하면(repeat)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의아할 수 있으니 동료가 말하는 것을 늘 유의 깊게 듣는 것이 필요하다.


때로는 동료의 커멘트를 정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특히 날짜, 금액 등과 같은 숫자 팩트가 틀렸다거나, 동료가 말했던 내용에 대한 최신 업데이트가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가 생기면 동료가 말을 끝내기를 기다렸다가, “앞서 나의 동료가 XX라고 설명했는데, 이건 YY로 정정을 하도록 하겠다” 또는 “앞서 나의 동료가 XX라고 설명한 부분은 최근 YY로 전개된 바 있으니 참고 바란다“라고 말하며 동료에게 아이컨택을 보내면 충분히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갑자기 말을 끊거나, 옆에서 당황하는 표정을 짓지 않아도 괜찮다. 정정할 부분을 찾아 서포트를 하는 것이 파트너로서의 역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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