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엄마와 집에서 간단하게 술 한 잔 했다. 그 날은 엄마가 얼마 전 일본에서 사다 준 ‘산토리 가쿠’라는 위스키에 하이볼을 만들어 마셨다.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무색하다. 위스키 살짝에 탄산수만 탄게 전부다. 살짝 취기가 올라온 엄마는 듣고싶은 노래가 있다며 틀어달라고 했다. 2000년대에 나온 일본 발라드곡이었다. ‘HY’라는 가수의 ‘366일’이라는 곡이었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어찌보면 흔하고 진부한 그 시절 발라드곡이었다. 엄마는 그 곡을 듣고는 눈물을 흘렸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평소에도 무슨 얘기만 하면 아버지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는 엄마다. 같이 여행을 가서 아버지 혼자 즐길거 다 즐기고 엄마는 제대로 못 즐겨 심통이 났는데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아버지는 좋은 여행이었다며 말했다고 한다. 어쩜 그렇게 자기 생각을 안 해주냐며 한국 남자들 왜 그러냐며 토로하는 엄마. 그렇게 지지고 볶고 싸우던 사이었어도 헤어지고 나니 아직도 많이 그리우신가보다.
아버지가 쓰러지시던 날 아침에 밥 먹으면서 했던 마지막 대화는 평생 못 잊을 것 같긴하다.
“처음 삼권분립을 제창했던 사람이 누군지 기억나냐?”
“몽테스키외요.”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일본대학입시학원을 운영하시던 아버지한테 매일 공부에 시달렸었다. 정말 힘들었다. 예전에 한창 유행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동룡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공부에는 재능없는 뺀질이 캐릭터인데 아버지가 학주 선생님이다. 듣기만해도 얼마나 힘들겠는가. 참... 동질감을 많이 느낀 가장 애착이 가던 캐릭터였다. 10년 정도 지나 비몽사몽 아침에 들은 갑작스런 질문에 자동반사로 나왔던 답이었다. 그렇게 내 머리 속에 꾸역꾸역 집어 넣어주었던 내용이었다. 마지막 대화가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관계에 있던 시절의 아버지와의 기억이라는 것이 나한테 있어 꽤나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주에 2~3일은 아버지와 엄마, 동생까지 자연스레 술 한 잔 곁드리며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하는 문화가 있었다. 하루에도 울다가 웃다가 곧 죽일 듯이 싸우기도 하다가 어느새 또 웃고하면서 꽤나 격정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었었다. 어느 날은 철학적인 고찰을, 어느 날은 감히 한국의 부자지간에서는 하기 힘든 저질스러운 이야기까지. 그러다 종종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버지가 자주 이야기해주셨던 말이 있다.
“사람은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죽는게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때 사람은 죽는거야. 내가 언젠가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우리 아들들 가슴 속에 계속 살아있을거야.”
돌아가신지도 이제 2년이 조금 넘었다. 조금 이르게 가시긴 하셨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 그리운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그렇게 아직 살아계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