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부터의
8년의 대학원 생활은 내 삶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다.
비전을 세우고, 꿈도 많이 꾸었으며, 그야말로 의쌰의쌰가 뭔지,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시간 동안 모조리 깨달았다고 본다.
'심혈을 기울인다.'
'영혼을 불태운다.'
라는 표현들..
대학생 때와는 다르다. 대학원은, 그것도 나이 마흔의 대학원 생활은.
가장 큰 차이는..
사람들과 뜻이 맞아야 한다는 거다.
뜻이 맞아야 시작할 수 있고,
뜻이 맞아야 지속 가능하며
뜻이 맞아야 종결할 수 있다.
결실을 맺는 일 역시 뜻이 맞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뜻이 맞다고 생각했었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
학생만 지도교수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지도교수도 학생들을 가르치며 거대한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학생들이 이미 해당분야 전문가 이거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학원 수업은 비즈니스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박수는 손뼉이 마주쳐야 한다.
만날 때마다 수없이 비전을 세우고
약속을 했었다.
그러다 보면 막역해진다. 의지하게 되는 거지.
나는 그렇게 하면서 지도교수에게 몸 바쳐 충성하는 분들을 많이 봐왔다.
스승과 제자라는 명분이 정해지니
관계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급물살을 탄다.
엄청난 기대와 욕망 넘어 손에 잡힐 것 같은 부푼 제자들의 꿈을 핸들링하며
그렇게 곡예를 타는 교수님들을 많이 봐왔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관계는 누구 한 명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제자가 스승을 비즈니스 파트너로 숭배하는 경우, 스승이 제자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활용하는 경우 등..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끝이 어떨지 예상이 안 되는 것이 아닌 걸 알면서도
접히지 않는 기대와
나도 교수 자리 한번 앉아보겠다는 욕망들이 즐비한 곳이
대학원이다. 특히 박사과정.
그 거대한 탐욕의 구덩이 안에
순수연구와 학문에 목마른 내가 존재했었다.
어느 정도는 나 역시 현혹되어 있었음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어리석은 마음들이 얼마나 무가치 한 투자였는지
안다.
경중의 차이.
지도교수를 숭배할 정도로 존경했거나 기대한 것은 별로 없었다. 그저 워낙 신생학문이다 보니 교수님이 고생하시는 걸 많이 봤고, 교수님의 자리가 위태롭고 제대로 잡혀져 있지 않아서 염려가 많았다.
실제로 교수님이 학교에서 좌천 당해서
나는 강제로 몇학기 휴학을 했던 적도 있었다.
박사과정은 외로운 싸움이다. 혼자 해내야 하는 관문들도 많고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고민들과 의무적으로 존경해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바로 그 의무라는 테두리 안에
나를 가둬 놓고 학위를 위해
시간과 재정, 에너지를 끌어다 쓴다.
박사학위 논문 통과가 위대한 이유는
연구때문만은 아닌 거다.
그 외적으로 힘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당위적이어서 그 시간을 버티는 자체가 위대한 거다.
나는 기왕 쓰는 시간과 세월, 재정과 에너지라면
정말 정말 가치 있고 생산적으로 쓰고 싶었다.
좋은 마음과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었다.
적어도 지도교수와 동료들에게는 말이다.
뜻이 맞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알고 있다.
뜻이 나와 정확히 맞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다.
그저 우리는 타인과 그 뜻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고
격렬하게 다르다고 반응하지 않는 한, 우리는 상대의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부분을 믿는다.
그게 인간이다.
차갑게 식어버린 관계들을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8년간 치열하게 논의해 온
'뜻'은 빛이 끊어졌다.
그리고 나는 수용하기로 한다.
내 지도교수도 당시에 제자가 말하는 달콤한 비전들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처지와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온갖 서비스와 섬김으로 나를 같은 트랙 위에 올리고
함께 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동료들 역시 그 나름의 사정 때문이었다고.
나는 8년을 어떤 의지로 버텨냈던가.
그 공은 온전히 내 것인가. 그들에게 빚이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무엇을 붙잡고 고독을 견뎌왔던가.
그것이 학위 자체였다면? 예약된 조교수 자리였다면?
그것들을 의지했다면 나는 폭발했으리라.
나는...
알고자 했다.
고도의 지식을
잘 배우고, 잘 알게 되어서, 다시 잘 사용하고 싶은 것.
그 목적으로 박사를 한 거였구나.
이제 거리낌 없이
연구한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야 할 때이다.
사람만을 의지했었다면
결코 펼쳐볼 생각도 못했을
소중한 관점을 성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