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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Mar 12. 2024

삶의 엉킨 매듭을 푸는 방법

전문코치의 일

"아빠! 나 목걸이 또 엉켰어. 풀어줘"


필요할 때에만 아빠를 부르는 큰 딸이다.

엄마와 아빠는 쓰는 기능이 다른 거지. 이해한다.


웬만한 일은 척척 알아서 해내는 아내를 둔 덕이랄까.

아이들은 별로 나를 찾지 않는다.


돈 잘 버는 아내를 둔 덕에 돈 필요할 때조차 아이들은 엄마를 찾는다.

웬만한 일이 아니거나, 아내가 귀찮아하거나 혹은 못하는 몇 안 되는 일일 경우에

일이 나에게 넘어오는 암묵적 합의!





딸아이의 목걸이는 작년에 내가 선물해 준 것이다. 백화점에서 나름 신경 써가며 함께 Pick 했던!

큰 딸은 검소한 편이라고 아내가 늘 칭찬한다. 문구점에서 구입한 듯한 목걸이를 두어 가지 번갈아 가며 하고 다녔던 것 같다.

구리나 납 원재료의 목걸이를 하고 다니다가 목 주변 피부가 붉게 올라온 것을 보고 백화점에 데려가 사줬다.

안전 관련 항목은 또 아빠의 몫이 아니던가.  


목걸이를 해도 좋을 나이로 성장해 주어 고맙다. 무엇을 목에 걸면 어떠랴. 목걸이에는 별로 관심 없다.

목걸이를 하고 웃는 큰 딸아이의 기쁨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백화점에서 연신 거울에 비춰보며 마음에 드는 듯 어떠냐고 묻던 아이와의 좋은 기억은

파워 게이지가 높은 기억이다. 원래 사소한 일상이 특정 이벤트보다 힘이 있기 마련이다.

아이와의 즐거운 추억은 곧바로 풍요로운 삶으로 연결된다.   


이후 주머니에 넣어놨었는지, 구입 후 두어 번 목걸이 줄이 엉켰던 적이 있었다.

큰 딸은 매번 나를 찾았고, 나는 행복했다.


고작 목걸이 줄 꼬인 거 풀어주는 건데도

아빠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다.

잘 사는 건 이런 것이리라.

최선을 다해야지

기쁨으로 감당해야지.


 



연구실로 목걸이를 가져와 자리에 앉아 스탠드를 켰다.

작년부터 노안증상이 있더니, 이제 근거리 시야확보가 어렵다.

나는 안경을 이마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엉킨 부분을 찾는다.

(이 모습을 아내가 싫어할 거다. 혼자 있을 때만 해야지)


'예전엔 어떻게 풀었었더라."


매번 해결했었는데, 방법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뭐 어떤가. 새로운 방법을 찾으면 되지.


목걸이 줄은 체인 모양이다. 워낙 촘촘하고 구멍도 작아서 엉킨 부분을 풀기가 쉽지 않다.

손톱으로 어려워서 면봉도 써보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지만

엉킨 핵심부위 속을 터치하지 못하고 있다.


어깨를 경직시키고

고개를 숙인 채 집중한다.


'이 매듭을 반드시 풀고 말리라.'






매듭을 풀기 위해

날카로운 것이 필요했다.


매듭을 풀기 위해 먼저 엉킨 부분들을 벌려야 했기 때문이다.

벌려놓으면 구조가 보일 것이다.


나는 옷핀을 이용하기로 한다.

외과의사라도 된 듯 신중을 기하며

매듭을 풀기 위해 엉킨 부분을 벌리는 것에 집중한다.


'벌리고 나면 게임 끝이다.'

구조가 보일 것이기 때문.


벌리는 작업은 옷핀의 날카로운 부분을 여러 차례 부위에 터치해 가는 것이다.

매듭이 풀릴 때까지 옷핀으로 다양한 부위에 자극을 가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엉킨 부분들이 스르륵 벌어지기 시작했다.


'게임 끝'


웅크렸던 어깨를 풀고, 눈도 잠시 감아본다.



무슨 큰일이라도 한 듯!

tea까지 한잔 마신다.  목걸이를 바라본다.

'큰 일했네.'


또 엉키면 또 해줘야지.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이 변화의 모습을 정확히 그리게 하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내 직업은 전문코치다.


삶이 엉키고, 일이 엉키고, 관계가 엉켜있는 상태에서

나를 찾아온다.


엉켜있는 상태라면 누구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렵다.

나는 그의 시선이 아닌

전문코치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엉켜있는 부분은 반드시 풀린다.

라는 생각으로 그를 바라본다.


내가 직접 옷핀처럼 날카로운 것을 들고 접근하지는 않는다.

그가 직접 그 스스로를 위해

옷핀을 들도록 돕는다.


엉킨 상태의 고객을 만나면 나는 엉킨 그를 보지 않고

엉킨 매듭이 풀려있을 그를 본다.

전문가로서의 큰 역량이다. 나는 그를 도울 자신이 있다.


오늘도 엉킨 부분을 함께 벌리는 작업을 한다.

한쪽은 내가, 다른 한쪽은 그가 옷핀 잡고 벌린다.

벌어질수록 엉킨 부분은 눈에 뚜렷하게 구조가 드러난다.


그는 환호하고

나는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사실, 과연 엉켜있던 것이 맞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멀리에서 보면 엉킨 것,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냥 살짝 모양이 달라졌던 것.


자신이 옷핀이 되어보기 위해 날 찾았던 것이리라.

나와 함께 하는 이번 작업을 통해

그는 스스로 언제든 옷핀이 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엉킨 매듭은

벌려놓고 풀어버리고 나면 제 기능을 한다. 목걸이처럼 말이다.

이제 이 목걸이는 다시 주인의 목에 걸릴 것이다.

내일 딸아이 생일인데, 아이의 목에서 다시 빛을 내주겠지.

아이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 것이고

보는 내 마음은 흡족할 거다.


사는 게 그런 거다.

엉킨 매듭은 풀고,

혼자 못 풀면 도움 받아 풀면 되고


있어야 할 곳에

최선을 다해 존재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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