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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Mar 17. 2024

생일과 영화 '패스트라이브스'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

엄마! 오늘 저 생일이라서요..


이른 아침 교회 예배를 마치고 오는  길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어제 이미 아내에게 아들 미역국을 좀 끓여 주라 부탁하셨었다. 


"저녁 7시 30분에 낳았어. 이른 아침부터 진통했었고.."


어머니께서 나를 출산하셨던 그날의 일들..

행여 내가 잊을 까봐 매년 혹은 격년 단위로 같은 말씀을 해주신다. 그럼 또 나는 마치 처음 듣는 정보인 것 마냥 반응하곤 한다.


나는 늘 내가 궁금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던 시간 속의 나.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유일하다. 부모. 


생일이 별 건가. 

내가 엄청 바라고 원해서 태어난 사람이 있겠는가. 

인류탄생의 메커니즘 자체가 수동형이다. 

태어나 보니 내가 있는 것이지.


그러나 나의 출생은

내 부모에겐 특별하다. 두 분에겐 매우 특별했던 인생 최고의 이벤트였다.

지구상 어느 부모가 다르겠는가.


난 살면서 내 생일이 내게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냥 뭐.. 그렇다. 

그러나 내 부모. 어머니껜 매년 특별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아버지에게도 안부를 여쭸을 것이다. 

이런 날, 빠짐없이 아버지도 그립다.   

 



영화 '패스트라이브스'를 보았다. 

독립영화라서 그런지.. 좀 색다르다. 영화에 힘이 안 들어가 있는 느낌.

배우들 의상이나, 메이크업, 배경이나.. 그리 아름답지도 않고 그저 그렇더라.

여주의 어눌한 한국어 구사, 남주의 어색한 연기. 

홍보용 포스터가 담고 있는 서정적이고 아련한 분위기와는 좀 차이가 느껴졌다.


내용은 두 사람의 유년시절부터 서른 후반 무렵까지의 삶을 부분별로 묘사. 

자세한 내용이야 뭐. 검색해 보라. 


'이거 뭐 흔히 있는 일이네. 어렸을 적 호감 있던 친구 성인돼서 만났다가 끊어졌다 하는 그거... '


그런데

영화 후반부.

여주의 대사가

영화본 후에도 내내 마음에 있다. 


"네가 기억하는 나영이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아.
그러나 그 어린애는 존재했어. 
너 앞에 앉아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야. 
이십 년 전에 난 그 애를 너와 함께 두고 온 거야."


이 말이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이 나더라.


특히,


"난 그 애를 너와 함께 두고 온 거야"







내 생일인 오늘.

어머니는 종일 어린 시절의 나부터 장가보내기 전까지의 나를 추억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나이 들면 

기억에 있는 추억 회상하고, 사진들도 좀 뒤져가며 보고,, 그런다는데

어머니가 종종 그러신다. 


그 템포에 맞춰 드리는 좋은 아들이면 좋으련만, 나는 그렇질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다.


내 눈앞에 또 내가 기억해야 할 자식이 둘이나 있어서, 

나의 현재와 현실은

늘 진행형이고 바쁘고 정신없어서..

그런 이유들로... 너무나 정당하게 

어머니의 회상에 동참하기 쉽지 않더라. 


가끔은

영화 대사처럼

"저는요 그때의 나를 어머니와 함께 두고 온 거예요. 지금은 그 아이가 아니에요" 

를 말뿐 아닌 행동으로 보인적이 있지 않았을까.





올해 생일은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고독하다. 

원래 생일이라도 막 기쁘고 왁자지껄 하지 않기에,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는데..

올해는 왜 이러지.

그냥 고독하고 쓸쓸하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나는 더 이상 여기에 존재하지 않아. 

그러나 그때, 그리고 그때, 그때의 나는 분명히 나로 존재했었지. 

지금과는 다르지만

분명히 있었던 나였지.

나는 그 시절의 나는 그 시절을 보냈던 거지.'


'나는 현재를 살고 있어.'


읊조리며 길을 걷곤 한다. 이상한 오늘이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교회로 향하는 길,


나:

"사는 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아. 힘들고 어려워"

생일날 첫 멘트가 이거라니..

그것도 교회 가는 길이고 아침인데...


이런 철학적이고 모호한 멘트에 대해 아내가 어떻게 답을 할까 싶었다.


아내: 

"생일날짜나 좀 바꾸자. 음력이라 외우기 어려워. ㅋㅋ "


헐. 

동문서답인데 지혜 가득하네.


처가식구들이 어제가 생일인 줄 알고 

축하한다고 스벅쿠폰들을 톡으로 보내주시더라. 하루차이는 양반이지. 모두 감사하다.

하지만 양력생일 챙기는 집안에서 음력생일 따지는 사위생일 챙기는 게 낯설수도 있다.

게다가 호적생일은 또 다른 날이다. 

양력, 음력, 호적 - 나는 생일이 세개다. ㅋ

생일 날짜 부자.

그러니 

아내의 말은 맥락이 있는 이야기다 


아내:

"요즘 누가 음력생일을 챙기냐고요. 우리 가족 모두 양력인데 자기만 음력이라 매년 얘들도 헷갈려해"


나:

"........ 그래도.. 어머니가 안 헷갈려하시잖아. 오늘은 어머니에게 의미 있는 날이야.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자.."



어머니 배속에서 나와서 두 분에게 큰 의미가 되었던 그때의 어린 나는..  이미 선물.

47년 전 그때. 그날은 분의 축복기념일. 

비록 나는 생일 날짜를 바꾸라는 외압(?)을 받고 있더라도 말이다. ㅋㅋ  변치 않는 진실이란 게 있다. 


그러나 

아내로부터 듣는 이 말들 모두가 나의 현재라는 것을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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