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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그릇 Jun 06. 2022

발을 씻고 들어오세요

엄마는 싫다고 하셨다.


동네에는 이제 세월이 하얗게 내려앉은 어르신들

밖에 살지 않는다고 했다.

나지막한 산이 엄마품처럼 포근하게 둘러있고, 얕은 언덕을 따라 20여 가구 살았던 그 작은 동네에는

어려서 소꿉놀이도 하고 사방치기도 했던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외지에 나가 자리 잡아 

살지  작은 동네에 젊은 사람들은 없다고 했다.

엄마는 혼자 사는 게 외롭긴 하지만 자식이 들어와 사는 건 싫다고 하셨다.

가끔 좋은 차를 타고  과일상자나 고깃덩어리를 내려놓고, 자장면이나 갈비탕을 사주고 한나절 시끌벅적 왔다 가면 그게 동네 어르신들 보기에  

낫다고...

말만 많은 이 동네에 시집간 막내딸이 남편이랑

아이 둘 데리고 들어와 문간방에 사는 건 남보기에 부끄럽다고, 말로 나를 때렸다.

막내딸의 가난을 들키고 싶지 않은 엄마 마음은 

이해가 되었지만, 그래도  말은 오래도록 아팠다.


참으로 이상한 삶이었다.

열심히 일했지만 늘 빈손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며, 하늘이 우리 부부를 믿고 허락한 이 예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꼭 감싸 안았다.  세상의 모진 말과 상처들은 종종 우리 등 뒤에 와서 꽂혔다.

남편은 더 열심히 일했고 늘 웃으며 나갔으나

집에 돌아올 때는 실패를 들고 들어왔다.

나는 남편도 감싸 안았다.

아마 남편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

가족이잖아.

살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고 잘 될수도 있지.

세상 사람들이 비웃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그럼 어디 가.

가족이 안아줘야지.

가족이 감싸줘야지..


이 말들은 입술을 통해 하지 못했다.

눈으로 했다.

엄마는 앞마당에 피어있는 꽃들을 말없이 바라보다

그래, 들어와라 했다.

더운 여름이었다.

아무리 더워도 꽃은 피었다.


이삿짐이 들어오던 날은 정말 정신이 없었다.

어떤 짐은 우리가 살아갈 두 칸짜리 문칸방에, 큰 살림은 잡동사니를 모아둔 창고에 넣었는데도 앞마당에 짐이 바위처럼 쌓였다.  정리하고 버리고 다했는데 여기까지 쫓아온 삶의 무게와 같았다.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은 써브웨이 직원처럼 자꾸만 내게 답을 내놓으라 질문을 했고, 엄마는 거실에서 TV 보고 앉아계셨다.  

아니, TV 한숨을 쉬는 엄마를 오래도록 보았다고 해야 할까.


다섯 살인 둘째는 할머니가 요리도 잘하고 마당에서 킥보드도 탈 수 있다고 좋아했다.  그보다 여섯 살 위인 큰아이는 내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엄마, 전에 살던 집보다  아늑하고 좋은  같아요."   조용함이 슬퍼 나는 미소 짓는 것에 실패하고  아이 손을 한번  쥐었다 놓았다.




엄마 집의 문간방.

내가 아이 었을 때 그 자리에는 소를 키우던 외양간이 있었다.  오빠가 결혼할 때 화장실 딸린 두 칸짜리 방을 만들어 살다가 아이가 태어나자 도시로 이사를 나갔다.  그 이후에 외국인 노동자 부부가 잠시 세를 얻어 살다가 몇 해 정도 비어 있던 것을 우리 가족이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거의 밤이다.

비슷비슷한 밤이었다.

밤은 어두웠고 파랑색이었다.

가끔은 파랑이 빛났다.


침대에 두 명, 바닥에 두 명 자다가 이 층 침대를 샀다.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잘 곳을 먼저 골랐다.  큰아이와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작은아이도 같이 들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어린 왕자' 같은 책들 이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우면 누군가 즐겁게 말했다.  

"넷이 한 방에 자는 거, 나중에 그립겠지?

엄청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

어둠 속에서 침을 삼키면 목구멍 안쪽이 뻣뻣해지곤 했다.


비슷비슷한,

파랑의,

빛나던,

밤.


여보,

우리는 서로 탓하고 비난하면 안 돼.

우리는 서로 더 사랑해야 돼.

세상에서, 밖에서 힘들고 지치는데

집안에서까지 그러지 말자.

번호키를 누를 때 난 생각해.

'이 문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번호키를 누르고 열고 들어갈 때

우리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거야.

발을 씻듯이,

더러운 거 밖에다 놓고 들어가는 거야.

밖이 아무리 지옥이어도

집에 들어오는 순간

천국이 되어야 하는 거야, 알겠지?


이번엔 입술을 통해 말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웃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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