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넘어 알게 된 것 중 한 가지는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대개 술 취한 지인의 두서없는 푸념이거나 나쁜 소식을 전하는 전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날의 전화는 후자에 해당됐다. 나는 찬 새벽에 걸려온 전화벨 소리에 불안하다 못해 목덜미가 빳빳하게 굳어버렸고, ‘놀라지 말고 들어라’라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함께 나의 사랑하는 이는 허무하게 떠나버렸다.
나는 유독 외할머니를 잘 따랐다.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종종 남동생의 손을 잡고 버스에 올라 십리 거리에 있는 외갓집으로 향했다. 볕이 잘 드는 뒤란으로 가 김장김치가 묻혀있는 곳을 바라보며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주인이 없어 조율이 안된 외삼촌의 통기타를 팅-팅 손가락으로 튕겨보기도 하며 외할머니를 기다렸다. 이윽고 집으로 돌아온 외할머니가 암반 위에 밀가루 반죽을 올려놓고 홍두깨로 밀면 그 재빠른 움직임을 경탄에 마지않는 눈길로 바라보며 종일 바깥에서 뛰어노느라 꼬질꼬질해진 손으로 밀가루를 한 줌 집어 장난을 치곤 했다. 나는 땅거미가 질 때까지 콩밭의 풀을 뽑던 외할머니의 구부정한 허리와 땀 냄새 바람 냄새가 섞인 품속을 사랑했고 마당에 키우던 강아지를 색에 따라 누렁아, 흰둥아 다정스레 부르며 죽을 쑤어주던 뒷모습을 사랑했다.
두 번 절을 하고 일어나니 화려하게 꾸며진 재단 사이로 옥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외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눈앞에서 일렁였다. 나는 네모 틀에 갇혀있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도무지 인정이 되지 않아 그저 황망히 향불만 지켰다.
소아 천식이 심했던 동생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자 밤새 동동거리며 그 옆을 지키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파뿌리가 기침에 좋다며 밤새도록 파 껍질을 벗기고 뿌리를 자르던 아린 손을 기억한다. ‘할머니 나중에 자라서 제가 결혼하는 것도, 손자 손녀 자라는 것도 보셔야 해요’라며 주름진 손에 새끼손가락을 걸던 내 모습과 당신께서 장롱 서랍 구석에 소중하게 간직하던 수의 한 벌도 기억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던 그때에도 보자기에 싸여있는 수의가 미워 장롱을 째려보곤 했던 어린 날이 생각난다. 화투장을 짝 맞춰 바닥에 펼치며 ‘달밤에 손님이 와서 국수를 먹는다’하고 하루를 점치던 모습이 미소를 띠게 한다. 칼끝으로 마늘을 빻던 소리와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에 괜한 잠투정을 하며 눈을 뜨던 어느 날의 아침이 떠오른다.
그토록 듣고 싶어 하셨던 손녀딸의 아리랑 자락을 애간장이 끊어질 듯한 아이고-아이고 곡소리로 대신했다. 후회 가득한 음성이 울려 퍼지는 사이 꽃상여가 꾸려졌다.
나는 시간을 따라 미완성어른이 돼갔다. 종종 버스를 타고 외갓집으로 향하던 횟수는 자연스레 줄어갔고 ‘하루 자고 가라’며 붙잡는 커다란 눈망울을 애써 외면하며 ‘다음에 또 올게요’라는 기약 없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외할머니께서는 그런 못난 손녀딸을 아쉬운 눈길로 배웅하며 꼬깃꼬깃 접힌 쌈짓돈을 손에 꼭 쥐어주시곤 했다. 초로의 노인이 되어 쌕쌕 힘겹게 숨을 내쉬고 계신 외할머니를 보면서도 금세 괜찮아지실 거라고 생각했다. 기침에 파뿌리가 좋다며 밤새 파를 다듬던 작은 뒷모습을 기억하면서도 파 한 단 사서 끓여볼 생각을 못했다. 그렇게 겉만 자라 버린 내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방법이나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 법, 남보다는 나를 더 위하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점점 예전의 모습을 잃어가는 동안 당신은 점점 물러나 내 기억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다가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다시 떠오르곤 했다.
‘에호리 달회야, 에이허라 달호’
소리꾼의 선창에 맞춰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무덤을 다져 올리는 회다지 꾼들의 경쾌한 발이 고맙고도 야속하다. 평생 사실 집을 마련해 드리는 일은 여섯 시간 동안 이어졌다. 나는 내내 흘렀던 눈물 대신 피로가 눈꺼풀을 덮자 밭이랑에 엎드려 죽음보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3일간의 장례를 마치고 춘천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떠난 이와 남겨진 이에 대한 생각을 했다. 사람은 왔다가 얼마나 허망하게 가는가.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멋을 내기 위해서가 아닌, 누군가와의 영영 이별에 대비하기 위해 검은 정장 한 벌을 준비해 두는 것이 아닐까. 외할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없다. 없다. 나의 뿌리는 이제 사라졌다. 떠난 사람은 말이 없다. 다시 돌아올 리 없다. 다시 돌아올 수도 없다. 허나 없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내 속에 외할머니의 공간이 더 크게 자리 잡는 이유 역시 알지 못했다.
시간은 어김없이 지났다. 나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을 위안 삼아 배가 고프면 꾸역꾸역 밥을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무엇으로도 헛헛한 마음을 채우지 못했던 불면의 밤도 삼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노릇이었다. 이불을 걷어 내고 잘 때면 ‘한 데서 자지 말아라’ 염려하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몸이 게을러질 때면 ‘뭐든 배워야 한다. 사람 속이는 거랑 도둑질 빼고 다 배우면 쓸 데가 있다’ 말씀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외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고무신을 신고 자박자박 밭으로 향하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명히 그려졌다. 시장 통에서 팔리지 않는 나물을 늘어놓고 졸음을 참는 낯선 노인의 모습에서도 외할머니의 모습이 겹쳤다 사라지곤 했다.
나는 그제야 곁에 없다고 해서 진정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오히려 외할머니는 이제 없다고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이었다.
사전에 ‘부재’라는 명사의 정의를 찾아보면 ‘그곳에 있지 아니함’이라는 활자가 아프게 인쇄되어 박혀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고향이자 뿌리이던 당신의 따뜻한 기억이 선연히 뇌리에 머물고 있는데 이것이 진정한 부재일리 없다. 그리하여 나는 ‘부재’의 정의를 고쳐보기로 한다. 부재. 그럼에도 ‘잊’지 아니함.
나는 당신이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았던 세월을 고스란히 반복한 뒤 그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의 나는 떳떳하게 안길 수 있을 것이다. 그간 받았던 조건 없는 사랑, 그 따뜻한 기억의 온기 따라 눈망울 꿈뻑이며 오늘을 살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못다 이룬 발자국을 대신 선명히 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