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있어 나는 진정 어미소였던 적이 있었나

뭔가를 포기해야만 내 모성도 숭고해지는 걸까?

by 지은이권지은

어릴 적 살던 시골집 앞마당에서 송아지가 태어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미소는 커다란 몸을 볏짚 위에 뉘이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네 다리를 쭉 뻗은 어미소는 고통스러운지 이따금 앞다리를 허우적댔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송아지가 태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구경하던 동네 사람들은 태어날 시기가 지났다느니 배가 큰 것이 새끼를 두 마리 가진 것이라느니 하나 둘 입을 댔다. 구경꾼 중 가축인공수정사가 장갑을 고쳐 끼며 앞으로 나섰다. 출산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수정사는 기진맥진한 소의 대가리에 밧줄을 걸어 외양간 우리에 고정시켰다. 이후 어미소의 몸에 장갑을 낀 손을 무지막지하게 집어넣어 송아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어미 몸 밖으로 보이기 시작한 송아지 발목에 줄을 걸어 장정 둘이서 끌어당기니 철썩 소리와 함께 핏물과 양수로 범벅된 송아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장정 둘은 송아지를 들어 우리 난간에 걸쳐놓고 찰싹찰싹 머리를 때렸다. 잠시 뒤 송아지가 끔뻑 눈을 떴다. 송아지가 무사함을 확인한 수정사는 다시 한번 어미소의 몸에 손을 넣어 태반을 주욱 끄집어냈다. 태반이 바닥에 쏟아졌다. 어미소의 대가리에서 밧줄을 풀어주자마자 어미소는 기진한 몸을 끌고 새끼 곁으로 가 혀로 몸을 쓸기 시작했다. 새끼의 몸을 고루 핥은 뒤에는 바닥에 떨어진 태반을 먹어치웠다. 소의 본능이라고 했다.


나는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올라가 무거운 몸을 옆으로 뉘었다. 임신 중 태반 이상으로 결정한 제왕절개 분만이었다. 새우등을 하라는 의사의 말에 배가 불러 잘 구부려지지 않는 등을 억지로 무릎에 가져다 댔다. 하반신 마취를 하자 찌르르 몸에 전기 흐르는 느낌이 났다. 간호사가 내 몸을 바로 눕히고 소변줄을 꽂았다. 마취과 의사가 알코올 솜을 상반신과 하반신 피부에 차례대로 가져다 대어 감각이 느껴지느냐 물었다. 아무 느낌도 안 난다고 대답하자 억제대를 사용해 양팔을 수술대에 고정시켰다. 수술 중 움직임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배를 소독하고 수술포를 덮었다. 녹색천이 시야를 가렸다. 마취 덕에 통증은 없었다. 다만 개복을 하고 인위적으로 피부를 늘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주한 의료진의 손길에 따라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누군가가 아이를 내려보내기 위해 무게를 실어 명치 아랫부분을 눌렀다. 억 하는 소리와 함께 찔끔 눈물이 새어 나왔다. ‘아기 머리 나와요!’ 녹색 천 뒤편이 분주해지고 곧이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누군가가 아기가 태어났음을 전했다. 아, 어미소. 어릴 적 봤던 어미소의 출산 장면이 떠올랐다. 이토록 무자비한 탄생이라니. 산소마스크가 씌워졌다.


원래 이런 건가? 마취에서 깨어나 아기와 눈물의 상봉을 한 직후였다. 상태를 보러 회복실에 온 간호사가 한 시간 전에 개복한 부위를 눌렀다. 몸 안에 고인 피를 빼고 자궁 수축을 확인한다고 했다. 참을 수 없는 비명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곧이어 병원 침대에 누워 입원실로 옮겨졌다. 나는 꼬박 하루 동안 소변줄을 꽂고 천장만 보며 누워 있었다. 여전히 전기가 통하는 듯한 다리를 좌우로 움직이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회복을 하려면 걸어야 한다는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는 별것 아닌 일조차도 버거웠다. 남편을 잡고 일어서려는 순간, 출산 후기에서 읽었던 ‘장기가 쏟아지는 느낌’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발을 내딛거나 다시 앉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한 통증이었다. 태어난 날 네 다리로 일어서던 송아지가 떠올랐다. 삼십 년을 걷고 뛰어다닌 두 다리가 낯설었다. 결국 진통제를 맞고 나서야 링거대에 의지해 걸을 수 있었다. 엄마의 몸은 정직했다. 진통제를 달고 지내는 와중에도 가슴은 부풀어 정해진 시간마다 유축을 했다. 산부인과 병원 복도에서 링거대나 보호자에 의지해 오가는 사람은 제왕절개 환자고, 수유 쿠션을 허리나 옆구리에 끼고 혼자 걷는 사람은 자연분만 환자였다. 모습이 어떻든 병원 안의 산모들이 걷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아기를 보러 가거나 아기에게 모유를 주기 위해서. 몸이 성치 않은 사람들이 가장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곳이었다.

출산은 자궁 내 태아와 태반을 포함한 그 부속물이 만출력에 의해 산도를 통과하여 모체 밖으로 배출되는 현상이다. 종을 막론하고 새 생명이 세상으로 처음 나와 삶을 시작하는 고귀한 순간이라고도 한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출산을 해서일까? 수술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아이를 낳았기 때문인 걸까? 무식해서 용감했던 나에게 출산에 대한 여러 서술은 아름답지도 숭고하지 않은 미지의 무엇이었다. 내 이름 석 자 대신 산모님이나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는 것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꼬물거리는 생명을 보살피는 일도 그랬다.


“쑥쑥이 엄마, 가슴 좀 볼 수 있을까요?”

산후조리원에 입소한 첫날이었다. 5평 남짓한 개인 호실에 같은 날 입소한 두 명의 산모와 함께 앉아있었다. 산후조리사가 조리원 규칙과 산후 관리에 관해 설명하던 중이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산후조리사의 시선이 얼빠진 표정의 나를 향했다. 자신의 말에 한 치 의심이 없는 곧은 눈빛이었다. 산모들은 자신이 쑥쑥이 엄마가 아님에 안도하는 듯 멋쩍게 웃었다. 그들은 곧 필기구를 꺼내 들고 자리에 고쳐 앉았다. 장담하건대 나는 초면인 누군가의 앞에서 앞섶을 풀어 가슴을 보여주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그러나 조리원은 내 아이에 대한 사랑과 모성애로 점철된 곳이지, 이성으로 행동해야 하는 곳이 아니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겉옷과 속옷을 차례대로 풀었다. 맨 살이 드러나자 얼굴이 화끈거리고 귓불이 빨개졌다. 산후조리사의 손이 부푼 가슴을 누르자 모유가 튀었다. 산후조리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유선을 뚫기 위한 가슴마사지 시범까지 보였다. 나는 사고회로가 정지된 채 딱딱하게 굳어 서 있을 뿐이었다. 산후조리사는 모유수유의 장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당혹스러운 신고식이었다. 나는 서둘러 앞섶을 여미며 물었다. “저, 그런데... 저는 복직을 좀 빨리 할 예정이어서요. 혹시 퇴소 후에 분유를 먹이고 싶으면 조리원에서 단유를 도와주시나요?”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산후조리사는 단호한 어조로 “우리는 모유수유 권장 조리원으로 단유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세계보건기구의 모유수유 권장 기간과 아이 발달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뒤따랐다.


조리원 생활은 단조롭고 피곤하다. 수유하기-먹기-자기-수유하기-활동하기-수유하기-먹기-자기가 2주 동안 반복된다고 보면 된다. 방으로 전화가 오는 것을 ‘수유콜’이라고 하는데 한 시간마다 벨소리가 울린다. 아기가 배가 고파서 운다는 신호다. 새벽도 예외는 없다. ‘수유 어떻게 할까요?’라는 질문에 ‘먹여주세요’나 ‘지금 갈게요’로 대답할 수 있다. 제 때 유축을 하지 않으면 가슴에 열이 나고 딱딱하게 굳는 젖몸살을 경험하게 된다. 선택지도 중간도 없다.

식사시간은 정보 공유의 장이다. 육아 아이템이나 수유방법 같은 것들을 묻고 정보를 얻는다. 입소하고 며칠간은 같은 날 입소한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어느 날 그중 한 명이 ‘왜 모유수유를 하지 않냐’ 물었다. 아기가 황달이 있어 혼합수유를 해야 한다거나 복직 시기에 맞춰 단유를 하려 했다는 설명은 왠지 복잡하게 느껴졌다. 나는 ‘복직을 빨리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대충 둘러댔다. 다음날이 되자 입소 동기는 둘째를 낳은 산모의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보다 우선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곳이었다.

활동시간에는 오리고 붙이는 간단한 체험을 한다. 간혹 자기소개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조리원에서의 자기소개는 ‘진짜 나’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아니다. 아무도 어떤 일을 했는지 묻거나 이야기하지 않는다. 휴직이니 복직이니 하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개 입소한 시기나 아기의 태명 정도를 간단히 이야기한다. 활동시간 역시 육아 정보를 얻는 시간으로 귀결된다. 나 역시 열 달간 아이를 품고 있다가 이제 막 엄마가 된 사람이었다. 모유를 먹이든 분유를 먹이든 방식의 차이지 본질은 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지만 때로는 보여지는 게 전부가 된다. 새끼를 낳았으면 마땅히 혀로 몸을 핥고 젖을 물려야 했다. 그게 통상적 모성이었다.


조리원에서의 낙은 아기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수유콜이 울리면 곧장 신생아실로 뛰어가서 아기를 안고 방으로 돌아왔다. 배가 고파 입을 쩝쩝대는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고 있으면 ‘자식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부모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아기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고민은 먼지처럼 가벼워졌다. 태지가 붙어있는 자그마한 손이 내 검지를 감싸 쥔 날에는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일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뱃속에 있던 아이를 보고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은 낯설고도 행복했다. 그럼에도 혼자 인터넷을 뒤져가며 단유를 시작했을 즈음에는 ‘이 자그마한 아이를 보살필 자질이 내게 있는 걸까?’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뭔가를 포기해야만 내 모성도 숭고해지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아이는 솜털 하나하나까지 사랑스러웠다.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건강했다. 나는 아이의 배냇짓에 따라 웃기도 하고 이유 모를 울음에 같이 울기도 했다. 회사는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라도 있었지만 육아는 아니었다. 바닥에만 눕히면 우는 통에 종일 안거나 일어서서 흔들었다. 그러다 보면 내 하루는 어쩌면 아이의 것이 되어 어느덧 훌쩍 밤이 되곤 했다. 아이가 자는 동안에는 다음날 아이를 돌보기 위한 준비를 했다. 젖병을 씻고 열탕 소독을 하다 보면 내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잡념이 불쑥불쑥 끓어올랐다. 평가, 승진, 대학원 따위의 문제와 이것들을 일정 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미련. 출산을 앞두고 그런 생각이나 한다며 나를 욕심 사나운 사람 마냥 대하던 주변인들의 말. 와이프를 보니 아이를 낳으면 승진 일 이년 늦춰지는 건 보통이더라는 말. 그런 날에는 평소보다 일찍 방에 들어가 깊게 아기 냄새를 맡았다. 너는 애를 낳더니 되려 애가 된 것 같아, 하며 웃으시던 엄마가 자주 생각났다.


아이가 태어난 날을 셈과 동시에 복직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시간은 정직하게 흘렀다.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5개월을 사용하고 복직했다. 서른 한 살. 이직한 회사의 정기승진이 코앞이었다. 복직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기는 어쩌고?’ 하는 질문과 ‘아직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할 텐데’라는 염려였다. 나는 그 말에 ‘시댁에서 봐주시기로 했어요’ 라거나 ‘아이도 사회생활 하는 거죠’라고 대답했다. 구태여 ‘아이 보는 것보다 회사 일이 더 맞더라고요’라는 말을 보탰다. 그럴 때마다 가슴에는 납덩이가 쌓이는 듯했다. 내게는 아이 크는 모습을 못 보는 것과 맞바꾼 시간이었으니 조금도 헛되게 쓸 수 없었다. 초저녁에 잠이 드는 아이와 눈을 맞추려면 여섯 시에 맞춰 퇴근을 해야 했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화장실 참아가며 일했다. 어떻게든 퇴근 전까지 업무를 마무리 지으려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퇴근해서 깨어있는 아이를 보는 건 한 시간 정도였지만 엄마로서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이가 잠이 들면 이어서 회사일을 했다. 아이를 재우다가 그만 깜빡 잠든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 일했다. 아무렴, 8개월 아기의 배웅을 받는 엄마가 이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아이와 회사 때문에 업무나 집에 소홀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아이는 평일 아침저녁으로 시댁과 집을 오갔다. 헤어지는 건 늘 처음처럼 속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밝게 웃으며 배웅했다. 현관문이 닫힌 자리에서 울기가 여러 날이었다. 아이가 유독 울거나 밥을 많이 먹지 않아도 다 내 탓 같았다. 함께 있는 시간에는 어떤 부모보다 웃고 사랑해 줘야지 다짐했지만 지켜지지 않는 날도 많았다. 일상은 서서히 출산 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원하던 승진을 했다. 다시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지내면 되겠다 싶었다.

어느 일요일 낮. 그날따라 아이는 이상하도록 얌전했다. 잘 뛰지도 걷지도 않았다. 아이를 추켜 안았더니 맥없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몸이 뜨끈했다. 물수건으로 몸을 닦고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잡히지 않았다. 남편과 서둘러 차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코로나로 인해 고열 환자는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응급실 밖에서 증상과 인적사항을 전달했다. 일 분이 영겁 같았다. ‘다 됐어, 조금만 참자.’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쉴 새 없이 중얼댔다. 사십여 분이 지나자 아이의 몸에서 스르륵 힘이 빠졌다. 한쪽 다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툭 툭 움직였다. 아이의 눈동자 초점이 위를 향하고 있었다. 구토 섞인 침이 흘러나오고 입술은 파래졌다. 남편이 아이를 들쳐 안고 응급실 입구로 달려가 애 좀 봐 달라고 소리쳤다. ‘여기 애가 쳐졌어요! 좀 봐주세요!’ 옆에 있던 중년의 남자가 함께 목소리를 내주니 그제야 주변이 분주해졌다. 굳게 닫혀있던 응급실 문이 열리고 의사 한 명이 뛰어나와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남편이 아이를 들쳐 안고 의사 뒤를 따라 뛰어갔다.

모두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세상이 주저앉는 듯했다. 온갖 생각이 밀려들었다.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 진료를 해주지 않은 병원에 대한 원망. 응급실 앞이라 다행이었다는 안도감. 생각의 끝에선 믿지 않는 신을 찾기도 했다. 사실 가장 원망스러운 건 나 자신이었다. ‘그깟 일이나 승진이 뭐가 대수라고. 엄마가 애를 잘 봤어야지. 야, 너는 엄마 자격도 없어.’ 그토록 듣기 싫었던 말을 스스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사실은 다 맞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 듣기 싫었던 건 아니었을까? 왜 엄마가 됐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게 당연해져야 하는 거냐며 조소를 머금었던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 사이 땅거미가 내렸다.

고열로 인한 경련이라고 했다. 가족력이 있을 경우 발생 확률이 높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입원을 해야 했다. 가느다란 아이의 발목에 주사 바늘이 꽂혔다. 나는 팀장님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로 시작해서 ‘개인적 사정으로 업무에 지장이 가게 해서 죄송합니다’로 끝나는 연락을 했다. ‘걱정 말고 애부터 챙겨요. 다 잘 살려고 하는 일인데.’라는 팀장님의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격리병실에서 지내며 코로나 음성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 옷을 환자복으로 갈아입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밤새 체온을 쟀다. 사람이 극한에 몰리면 수면욕도 식욕도 사라지는 모양이었다. 오 분 쪽잠이 들었다가 흠칫 놀라 깨어나도 하루를 잔 것 같았다. 다음 날 코로나 결과가 나와서 세면대와 화장실이 달려있는 일반 병실로 옮겼다. 보호자 네 명과 아이 네 명이 지낸다고 했다. 아이의 병명은 파라인플루엔자 감염증이었다. 급성 호흡기 감염증으로 영유아에게 흔히 발생하는 호흡기 바이러스라고 했다. 침대 커튼 너머로는 쌕쌕 가래 끓는 소리와 칭얼대고 달래는 소리가 쉴 틈 없이 들렸다. 아이는 약에 취해서인지 계속 잠을 잤다. 정신을 차렸을 때도 힘없이 눈만 꿈뻑였다. 열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간호사는 이미 충분한 양의 해열제를 사용하여 그 이상은 어려우니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게 좋겠다고 했다. 병실에 있는 세면대에서 수건을 적시는 찰나였다. 내 등 뒤로 의료진 일고 여덟 명이 뛰어들어갔다. 아이의 자리였다. 호흡 이상이었다. 의료진이 분주하게 산소호흡기를 착용시키고 심박을 체크했다. 아이 입술은 새파랗고 피부는 창백했다. 무슨 상황이냐는 물음이 끅끅대는 울음에 묻혀 잘 나오지 않았다. 담당의는 짧은 기간 내 두 번의 경련은 문제가 있다며 몇 시간 뒤 예정되었던 뇌파검사 시간을 앞당겼다. 검사실에 들어가 아이의 두피에 주렁주렁 전극을 연결했다. 의사가 검사실을 나가고 불이 꺼진 공간 안에 나와 아이만 남았다. 어둠 속에 있으니 도리어 마음이 차분해졌다. 머리의 밧줄을 풀어주자마자 제 새끼에게 걸어가던 어미소가 떠올랐다. 성치 않은 몸으로 아이를 보려 부지런히 움직이던 그들의 잔상이 뒤를 이었다. 흙이 묻었든 지푸라기가 붙었든 아랑곳 않고 새끼를 핥던 어미소. 한참을 핥다가 새끼가 일어서면 당연한 듯 젖을 물리던 어미소. 너에게 있어 나는 진정 어미소였던 적이 있었나.


나는 아이가 태어나고 단 한 번도 아이를 ‘우리 아들’과 같은 살가운 말로 부르지 않았다. 유난스러운 엄마가 되지 말자는 스스로의 다짐 때문이었다. 부모의 자랑이 되고 싶어 애쓰며 살았던 나와는 달랐으면 했다. 내 배로 낳은 천금보다 귀한 자식이지만 그 자체로 살아가기를 바랐다. 아이를 재울 때면 동요 가사를 바꿔 불러주었다. ‘새는 새, 바람은 바람, 수호는 수-호예요. 너는 새, 너는 바람, 수호는 수-호예요.’

자식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 사랑의 척도라면 나는 이기적이고 한참 부족한 엄마다. 그러나 네가 하고자 하는 것이 생겼을 때 나는 오늘의 다짐을 읽겠다. 너를 핥고 일어나기를 기다리겠다. 네가 어미젖을 찾을 때 나는 시시껄렁한 조언일랑 치워두고 그저 너를 그러안겠다.

일주일간의 병원생활이 끝났다. 우리는 빠르게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평일 아침저녁으로 시댁과 집을 오갔고 나는 출퇴근을 했다. 곤히 잠든 아이를 내려다본다. 내 손바닥 만한 가슴팍 밑에서 열심히도 뛰는 심장 느낌에도 자그마한 콧구멍에서 나오는 콧바람에도 나는 쉽게 감동하고 대견하다가 또다시 배운다. 나는 어미소가 되어 잠든 네 머리를 몇 번이고 곱게 쓸어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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