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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May 16. 2023

6. 나는 후회없는 수험생입니다

찬란한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유학생활 중 나 스스로가 가장 기특했던 적이 언제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나의 고등학교 Junior 시절 (미국 4학년 고등과정 중 3학년) 이라고 말할 것이다. 미국 고등학교는 Senior, 4학년이 되면 대학교 입학 시험 SAT와 대학교 지원에 힘을 쓴다. 즉, 내신은 3학년때 까지의 성적이 가장 중요하게 반영되며, 그때의 성적이 나의 대학을 결정 짓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여러모로 공부라는 것에 집중하기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늘 혼자 방 안에 갇혀있고 무기력한 시간들을 보냈지만, 내가 수험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야속하게도 흘러가고 있었다.


유학을 떠나면서 '성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족들의 희생과 서포트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내가 두고온 것들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나는 더 발전하고 싶었고, 좋은 결과를 내고 싶었다. 나이를 들면서 성공에 대한 생각과, 성공의 척도가 계속 바뀌지만,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성공의 척도는 역시나 '대학'이였다. 고등학교 1학년은 작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며 보냈지만, 학교를 옮긴 후 어둠이 가득했던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이 되니 나는 덜컥 두려워졌다.


나의 무기력함이, 나의 우울함이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나의 미래까지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괴롭고 슬퍼졌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내 미래만큼은 더 밝고 빛나게 만들려면 나는 현재 변화되어야 했다. 무기력한 내 몸뚱이가 제발 힘을 내서 책상앞에 앉아서 공부하기를 바랬다. '제발 집중해 제발.' 


그 때 내게 의인같은 선배가 한 명 찾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내게 그 언니를 보내신 것이 틀림없다.) 내가 이 학교에 처음 전학왔을 때는 내게 말도 걸지 않았던 한국 여학생이였는데 어느 순간 마음의 문을 열고 나와 가까워졌다. 그 언니는 정말 똑똑하고, 미국 학생들 사이에서도 꿇리지 않고 어느 수업에서든 1등을 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학생이였다. 언니와 가까워지면서 나는 공부에 대한 자극을 강하게 받았고, 그냥 닮고 싶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를 그 언니와 비교하거나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언니의 멋진 모습과 배울 점만 바라보던 나의 순수한 마음 또한 하나님이 그 당시 나에게 허락하신 선물 같았다.


그 때 부터 나는 나 스스로에게 우울함에 찌들어있을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로 걸어가 SAT 공부를 했다. 낮에는 최대한 내 어두운 방이 아닌 밝은 곳에 있고 싶었다. 텍사스는 워낙 큰 지역이기 때문에 동네 카페 하나도 걸어서 가기 어렵게 되어있는데, 당시 개인 공부하러 가는 것까지 일일이 라이드(ride)를 받기 눈치보였던 나는 갓길로, 또 차도로 걸어서 카페에 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시간 공부를 하다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다시 걸어 돌아와 학교 시험 공부와 과제를 했다.


그래도 참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가는 루틴이 너무나 당연한데 미국은 달랐다. 모두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 만으로 공부했고, 학교가 끝나면 내가 스스로 시간을 만들어 공부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중학교 3학년 까지 다닌 나는 공부에 큰 욕심이 없었다. 작은 수행평가 하나도 등수를 매겼고, 잘하는 애들은 늘 잘했고, 나는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보다 포기하는 마음이 더 자주 들었던 것 같다. 근데 미국에서는 달랐다. 내가 학교에서 가르쳐준 것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모르는 건 학교 선생님께 질문하고 대화하면 답이 나왔다. 

 나도 하면 되네?


어쩌면 너무 당연하고 단순한 이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였고, 나의 노력에 대한 믿음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공부가 더 즐거웠고,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근데 진짜 너무 신기했다. 나는 잘할 수 있다고 믿고, 더 당당하지겠다고 억지로 계속 마인드 컨트롤을 하니까 내가 조금씩 진짜 그런 사람이 되어갔다. 좋은 성적을 받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내가 조금 더 일찍 깨닫고, 조금 더 일찍 우울함을 이겨냈으면 어땠을까? 지금 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더 좋은 대학에 지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나를 기특해하기로 했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공부했지만, 밤 10시만 되면 나는 책상위에 있던 모든 책을 덮었다. 나는 기도해야했다. 우울증을 공부로 덮고 있었기에 나는 여전히 마음에 구멍이 있는 상태였다. 책을 덮기만 하면 나는 이상한 공허함과 외로움으로 많이 울었고, 나는 그런 감정을 숨기지 않고 다 내뱉었다. 매일 한시간 넘게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은 늘 내게 다시 살아갈 힘을 채워주셨다. How Great is Our God.


그 힘으로 다시 또 열심히 공부하고, 그러다 또 기도하고 - 그런 삶을 반복했다. 이렇게 그 때를 돌이켜 기록해보니 수험생 시절 가장 중요한 1년을 하나님과 참으로 치열하게 보냈다. 나 혼자 치열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도 내 곁에서 참으로 치열하셨다. 나를 고개 들게 하시고 공부하게 하신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 덕에 나는 내 인생에 상상해본 적도 없는 좋은 대학교들에 도전도 해보고,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도 할 수 있었다. 평생을 열심히 공부한 이들이 이 글을 읽으면, 대학 입시 전 고작 몇년 열심히 빠짝 공부한게 뭐가 그렇게 대수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 이들에 비하면 나의 열심은 작고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나마 덜 부끄러울 수 있게 늦게라도 최선을 다할 수 있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우리나라 유학생들은 그 어느 나라 학생들 보다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가끔은 참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모습이 늘 행복해 보이지는 않아서 그럴까? 치열하게 살아가는 만큼, 그들의 미래가 더욱 찬란하게 빛나기를. 그러나 미래만 바라보다 행복한 현재를 너무 놓치지는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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