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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n 26. 2018

여자 혼자 여행, 마냥 행복한가요

여행의 이면

여자 혼자 여행? 예전엔 무모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요즘엔 너도 나도 혼자 여행 간다. 가장 만만한 게 유럽이 아닐까 싶다. 아프리카나 남미는 아직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할 테고, 동남아 정도는 괜찮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큰 땅덩어리 혼자 보기 심심하기도 하고 해서 혼자 갔다는 사람은 주변에서 못 봤다.


여행에는 행복한 순간이 많다. 우연히 호스텔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그 날 하루가 놀라움의 순간들로 가득 차기도 하고, 그냥 운 좋게 좋은 한국인 만나 편하게 여행하기도 한다. 눈부신 경치, 꿈 같은 순간들이 참 많다. 현실의 걱정도 줄어 드니 다들 너도 나도 여행가려고 하나 보다.


그런데 혼자 다니면 마냥 행복한 순간들만이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강도나 소매치기 등보다 무서운 게 때로는 남자들의 접근(?). 물론 재밌는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다.


한 번은 혼성 도미토리에서 씻고 내 침대로 가려던 찰나, 한 라틴 계열 남자애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도 반갑게 대응을 해주었더니 어느 나라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대답해주고 자려고 했는데, 조금 후 내 침대로 다가왔다.


“혹시 이 근처에 클럽 아는 데 있어?”

마침 방금 전 까지 호스텔 친구들과 라틴 계열 클럽에서 놀고 온 터라 클럽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제 가라는 눈빛으로 내보내고, 잠들려는데 다시 다가온다. 내 2층인 침대 쪽 계단을 굳이 올라와 나에게 다시 질문하는 거다.


“넌 안 가?”

너무 피곤해서, "난 쉴 거야."하고 친절하게 대응해주었는데, 말을 시킨다.


“나 한 가지 꿈이 있어.”

하더니, 자기 볼을 톡톡 대며

“아시아 여자애랑 뽀뽀하는 게 내 꿈이다.”


“What..?”

순간 얼어붙고,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는데 계속 웃으면서 자기 볼에 손을 갖다 댄다.


“난 오늘 너랑 처음 만났고, 친해진 애들이랑이나 해.” (더 차갑게 말할 걸.)


친한 사람도 아니고, 감정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라 무례한 요구에 당황했다. 그리고 계단 위로 올라오려는 느낌에 조금 무서웠다. 그렇지만 안전한 호스텔이고, 더 이상 상대 안 해줄 느낌으로 맞붙였더니, 돌아갔다.


이런 일이 한 번이면 모를까, 다른 때는 비엔나 호스텔에서 한 인상 좋은 콩고 남자가 마치 영화 <무드인디고>의 요리사 니콜라 같은 느낌으로 큰 아프리카 생선 요리를 세 접시 들고 있길래, 군침 흘리며 쳐다 본 적이 있었다. 자기는 요리 나눠주는 것을 좋아한다며, 그 라운지에 앉아 있던 여행객들에게 자기 요리를 대접했다.


그 때 콩고 남자와 또 다른 모로코 남자와 함께 오손도손 앉아 바나나가 곁들어진 대구 요리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다들 순수해 보였고 심지어 모로코 남자는 UN 같은 NGO에서 일한다고 했다. 한 40대 정도 되 보이는 그의 모습에 나는 약간 아빠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늘 비자 신청하러 갔다 왔다."하며 마음이 풀려 쫑알 쫑알 얘기를 했는다.


그 사람이 나를 굉장히 흐뭇하게 쳐다 볼 때만 해도 딸 같아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콩고 남자가 가고 나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너 여기 혼자 온 거야?”

그 때부터 소름.. 혼자 왔다고 했더니 자기도 혼자 왔다면서.


그러곤, 나에게 여행을 어디로 갈 거냐고 해서, 호프부르크 왕궁을 보러 갈 거라고 말해주었더니

“나도 같이 가도 돼?” 하는 거다.

아니 분명 한 2시간 뒤에 자기 친구가 있는 이탈리아로 간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어이가 없음에도, 거절할 이유가 없어 알겠다고 했다. 너 정말 왕궁 구경하러 갈 거냐고 재차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 뒤로 내 방이 어디냐느니 방에 들릴 거냐느니 하고 물었다. (대놓고의 집적거림이었는데, 내가 둔했나.)

(*왜 자꾸 방을 물어보나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곳은 나처럼 도미토리식 방도 있었지만, 비즈니스 호스텔을 겸용해 개인실도 있어 다른 호스텔들보다 나이드신 직장인분들이 많았다.)


느낌이 이상했다. 짐을 가져나온 터라 방에 안 들릴 거라고 했더니 이제는 내 연락처를 물어본다.


전화번호를 재차 물어보고, 안 주면 안 보내줄 듯한 기세였다.

“친군데 왜 안 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응?)


마지막으로 그냥 갈 거면 한 번만 안아 달라고 했다.

'그래 이 사람은 친구야.' 거의 세뇌 수준으로 생각하면서 한번 안아주고 나올랬더니, 그 이상의 스킨십을 하려는 것 같아 가겠다고 하고 나와버렸다. 다리가 후들거리다가, 금세 괜찮아졌다. 왕궁에 도착하니 여행객들이 많아서 ‘아 여행자는 이런 곳에 있어야 하는 거구나.’ 싶기도 했다.




마지막은 카우치서핑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정말 좋은 인연을 만났고 안전했지만, 모든 카우치서핑이 꼭 안전하다 할 수는 없다. 심지어 남자 호스트들은 종종 여자 여행객이 자기네 집에서 묵기를 요청하거나 자신의 제안을 수락하는 것은 곧 성관계를 허락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속마음을 가진 호스트들도 있다는 글도 보았다.


물론 모든 카우치서퍼가 그런 건 아니다. 나도 정말 카우치서핑으로 눈부신 경험을 만들었고, 나중에 여행도 마냥 카우치서핑으로 하고 싶지만, 조심은 해야 한다.


내가 드레스덴에서 카우치서핑을 한 예술가의 집도 (중년이지만) 어쨌든 남자의 집이었다. 물론 갔더니 또래의(?) 귀여운 여자 한 명이 더 있어서 안심하긴 했지만 가기 전에는 그냥 모르고 간 거니깐.


가기 전에 나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나에게는 거절할 힘이 있다.
그게 어떠한 것이라도.


만약에 상대방이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지라도 정말 그 상대방이 똘아이나 정신이상자가 아니라면, 거절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분명히 똑바로 거절해야 한다. 그럴만한 힘을 내면에 키워야 한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 한다.


그렇게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상종하지 않는 게 낫다. 내가 여행한, 교환학생한 4개월동안 정말 안 좋은 일은 저 단 두 번에 소매치기 한 번, 반 노숙 한 번 정도밖에 없었다. 막상 내게 닥치면 조금 서럽다. 그렇지만 분명히 거절할 힘을 내 안에 키우면 이러한 5%의 순간들은 금세 지나치고 나머지 95%의 좋은 추억을 가질 수 있다. 여행은 가치있는 거니깐. 혹시라도 내 글을 읽고 홀로 여행가는 게 두려워진 분들에게 그럼에도 여행에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여행에는 그러한 것들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순간들이 많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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