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

변화의 물결 앞에서 우리가 할 일

by 지은담


올여름, 물난리가 그치질 않는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얼굴엔 슬픔이 짙게 내려앉았다.

카페에 가도 예전처럼 활기찬 웃음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트북을 연 채

공부에 몰두하는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자연재해 소식이 유독 자주 눈에 띈다.

마치 지구 전체가 신음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우리나라는 물론 이웃 일본 역시 대지진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불현듯, 9년 전 꾸었던 예지몽 같은 꿈이 떠올랐다.

꿈속에서 나는 지인들과 한가로운 바다 위 크루즈선에 있었다.

갑판에 서서 드넓고 고요한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곧 수평선 너머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참을 응시하자, 점차 시야에 선명해지는 거대한 물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끝도, 높이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해일이었다.


그 순간 바닷가 집에 있는 아들과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닿았는지 배는 곧장 방향을 틀어 해안으로 향했고,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어서 피하세요! 해일이 몰려와요! 대피하세요!”


하지만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대부분 무시하고 하던 일에 열중했다.

잠시 후, 해일이 밀려들었고, 그제야 사람들은 우왕좌왕 뛰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밀려드는 물살 앞에서 오히려 작은 쪽배를 띄우고 바다로 나아갔다.


“아저씨, 뭐해요. 들어가시면 안 돼요.”


“파도를 타고 넘으면 돼”


그들은 그 해일의 위협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가족이 있는 건물로 뛰어가던 중 뒤를 돌아보니,

용감히 나섰던 작은 배들이 무자비한 물결에 너무도 쉽게 삼켜지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 사람들을 위층으로 올려 보냈다.


그때 어느 방에서 인기척을 느꼈고 그곳엔 인품이 느껴지는 노신사 한분이 계셨다.

고풍스러운 책장과 책상, 가죽 의자, 빼곡한 양장본 책들.

그는 대피하지 않고 책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대피하라 다그치자, 그는 조용히 답했다.


“이 책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어요. 나는 마지막까지 책과 함께 할 겁니다.”

그리고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곧 방 안으로 물살이 들이닥쳤다.

그는 들이닥친 물과 함께 가라앉았다.


꼭대기층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처참했다.

사람들은 마치 장난감 인형처럼 쓸려 나갔고,

조용하던 바닷가 마을은 누런 물살에 뒤덮였다.


꿈이었지만, 그 환영은 너무나 생생했다.

태평양의 햇살, 물의 감촉, 긴박한 긴장감까지 모두 현실처럼 또렷했다.


그 꿈을 꾸고 두 달 뒤 7월, 나는 정말로 일본으로 크루즈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실제 여행에서 마주한 장면들은 꿈과 너무도 유사했다.

괜스레 마음이 쓰였고, 마치 자연이 앞날을 예고해 주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셀마 태풍 때, 우리 가족은 실제로 해일에 갇혀 죽음의 공포를 겪은 적이 있다.

그날 인근 섬에선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재해가 지나간 뒤, 마을에는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온 마을이 힘을 모아 물살에 떠내려 온 쓰레기를 치우고,

진흙에 뒤덮인 가재도구와 집을 씻어냈다.

그리고는 벽지를 새로 바르고, 새 가전제품과 가구를 들이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삶은 다시 시작되었고 오히려 전보다 나아지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파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음을.

해일은 재앙이면서 동시에 전환의 장치였다.

정체돼 있던 작은 시골 마을도 결국 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지금 세상도 어쩌면 그때와 비슷한 흐름에 있는지도 모른다.


불확실성과 혼란이 일상이 된 시대.

예측은 힘을 잃고 넘쳐나는 정보 속에 진실은 묻히고 있다.

이제는 외부의 예언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의 실력으로 대응해야 할 때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고개를 돌린다.

변화의 해일 앞에서도 낡은 도구와 오래된 지식에 갇힌 채,

제 자리를 고수한다.

나는 꿈에서 똑똑히 보았다.

그 끝은...



누구보다 먼저 위험을 감지했지만, 내 외침은 공허하게 흩어졌다.

사람들은 외면했고, 그로 인해 나는 내게 실력도 신뢰도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참혹했다. 눈앞에서 많은 희생을 지켜보며 고통을 삼켜야 했다.


그래서일까?

예전과 달리 요즘은 매일같이 새로운 정보를 조금씩 들춰보며 살아간다.

다들 느낄 것이다. 지금은 결코 평범한 시대가 아니다. 변화의 속도는 상상 이상이다.

새로운 세상을 읽고 배우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나의 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 세상은 겉으로는 시끄럽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나는, 태풍 전의 고요가 떠오른다.

어릴 적, 이맘때면 자주 그런 순간이 있었다.

늦여름 태풍이 다가오기 직전,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바람도 소리도 잠잠했던 그 묘한 순간.

지금이 딱 그렇다.

진짜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제자리에 멈춰 서서 변화를 거부하기보다

새로운 문화와 기술을 배우고 서로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새 패러다임을 찾아내고,

힘을 모아 다가올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실력을 갖추는 일이다.

그것만이 위기에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진짜 힘이다.


아무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나 같은 이가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시대의 아픔 앞에서, 이렇게라도 함께 나누고 싶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배워야 할 것들이 여전히 산더미 같다.

그래서 더 간절히 바란다.

더 많은 이들이 지금의 혼란을 직시하고 깨어나기를.

미래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의식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달려 있으니까.


그리고 부디, 세상을 진심으로 아끼는 지도자가 나타나길 바란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을지도...


오늘 우리가 겪는 고통은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 아픔의 시간이 지나면, 분명 더 찬란한 내일이 다가올 것이다.

나는 오늘, 그 희망에 마음을 건다. 그것이 나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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