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 자이에 사는 시누이

각자의 몫이 있잖아요

by 내가 지은 세상

"저희 딸은 반포 자이 살아요. 호호"


상견례 자리에서 시어머니가 딸 이야기를 하다가 하신 말씀이었다.


부모 눈에 기특하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냐마는, 어릴 때는 예쁘게 생겼다고 어른들 관심을 받고, 학생 때는 나름 성실히 공부해서 최고라 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며 제 몫을 하는 내가, 부모님께는 유독 자랑거리였던 것 같다. 상견례 자리에서도 그런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우리 딸도 못지않다'며 시어머님이 던진 말이었다.


나는 그때 한참 부잣집에 시집가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보며, 열심히 사는 거 다 소용없네 돈이 최고구나! 비뚤어진 마음으로 세상을 보던 때였다. 그런 시기에 들은 시어머니의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내 마음에 꽂혔다.


딸 자랑할 게 얼마나 없었으면 남의 집 돈으로 비싼 아파트 산다는 얘기를 했을까, 그럼 나한테도 강남 아파트 장만 해주든가. 최대한 비꼬아서 생각하면서도, 내가 당시 간절히 원했던 한 가지, '돈'을 가진 시누이를 얼굴 한번 본적도 없이 시기하고 미워하게 되었다.


시누이와 마주치면 나의 강렬한 열등감이 올라올 것만 같아, 최대한 만나는 자리를 피했다. 집에 놀러 오래도 안 가고, 명절에도 원래 시누이와 며느리는 만날 수 없는 사이라며(시누이가 친정에 갈 때 며느리도 자신의 친정에 가야 하므로) 시누이와 엇갈리게 시댁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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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사촌언니가 떠올랐다. 한 살 터울로 어릴 적 가까이 살며 친자매처럼 붙어 다녔는데, 커서는 연락이 뜸해진 언니였다. 언니는 똑똑하고 야무진 반면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늘 외모 때문에 불이익이 따른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는지 모른다. 반면 나는 어릴 적 '너는 연예인 해라', '커서 미스코리아 나가라'는 말을 줄곧 들으며 컸다. 우리 둘이 붙어 다니며, 타인이 내 외모를 칭찬함으로 인해 언니의 외모 콤플렉스를 자극하고, 의도하지 않게 언니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종종 있었다.


언니는 가끔은 울며 내게 하소연하기도 하고, 가끔은 나를 시기하며 단점을 지적하고 끌어내리고 싶어 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누군가의 옆에 존재함으로 인해 상처를 주고 또 나는 미움을 받아야 한다는 걸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점점 언니를 만나 기분 좋았던 기억보다는 불편하고 싫은 기억이 더 많아졌다. 결혼하고 나니 더더욱 볼 일도 없고 그렇게 거리를 두며 멀어져 갔다.


돈에 콤플렉스가 있는 시기에, 경제적 호사를 누리는 시누이를 만나고 나서, 그제야 어릴 적 사촌언니의 마음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뚜렷이 알게 됐다. 내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를 그때 알게 됐다. 언니의 미운 마음이 느껴질 때 나는 복수랍시고 더 화려하게 꾸미고 나가 언니를 만나곤 했는데, 그런 나를 반성했다. 그 이후로는 그저 사촌언니가 보다 행복하고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얼마 전 동생 결혼식에서 정말 오랜만에 사촌언니를 만났다. 나는 엄마의 의견에 따라 한복을 입고 화장을 했다. 겨울 결혼식인데 한복에 입을만한 겉옷이 없어 시댁에서 주신 아이보리색 밍크 조끼를 걸치고 나갔다.


"이거 따뜻하니?ㅎ"

반가운 인사도 잠시, 사촌언니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손가락으로 밍크 조끼 자락을 잡고 흔들며 한마디 한다.


또 시비 거는 건가..? 그동안의 히스토리(?)가 있다 보니 잠시 기분 나쁜 쪽으로 생각을 했지만, 의도가 없었으면 아무 말도 아닌 거고, 의도가 있었다면 본인 업보만 쌓일 뿐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하고 털어버렸다. 그저 행복해라 언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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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몰래 시누이를 피해 다니는 동안에도, 시누이는 늘 우리 내외에게 잘해주고 말이 적은 내게도 살갑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시누이도 처음 보는 내가 얼마나 낯설고 부담스러웠을까. 그때는 그런 걸 생각하지 못했다.


시누이의 경제적 풍족함은 차고 넘쳐 우리 집까지도 흘러들어왔다. 특히 아이 장난감이나 비싼 책, 좋은 옷들은 전부 조카(시누이 딸)한테서 받아 써서 아이한테 딱히 뭘 사줄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조카가 우리 아이를 예뻐하고 맞춰주며 잘 놀아주기 시작하니, 시누이를 시기했던 마음은 녹아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고마움과 미안함만이 남게 되었다.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 마음의 감옥을 짓지 마세요. 각자의 몫이 있잖아요."


어느 날 듣게 된 법정 스님의 법문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날로 시누이를 상대로 혼자 하던 웃기는 싸움을 완전히 종결시켜 버렸다.


상대가 돈, 명예, 권력, 그 외 무엇이든 '가졌다'고 해서 눈치 보거나 아부할 필요도 없지만, '넌 가졌으니까 내가 좀 미워하고 함부로 대해도 되잖아' 하는 왜곡된 생각은 더더욱 가지면 안 된다. 누구나 각자의 몫이 있는 거니까, 남한테 한눈팔지 말고 나 스스로나 되돌아보고 잘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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