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생각으로 극복해 보기
회사에서 오랜만에 상위 리더에게 보고할 일이 있었다. 자주 있는 자리가 아니다 보니 긴장이 되었지만 준비는 다 되었으니 잘할 필요 없고 하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내 앞에 다른 동료가 먼저 보고를 하는데 서로 농담도 주고받고 분위기가 괜찮았다. 내 순서가 되어 차근차근 침착하게 준비한 내용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내가 보고를 하니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날카롭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왜 빼요?"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죠?" "이건 당연히 이렇게 해야죠." 라며 내 말에 반박을 하다가 주변에서 부연설명을 해서 내 말에 지지를 해주면 수긍하는 식이었다.
당일 내 보고나 업무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을 수 있다. 혹은 사적으로 거슬리는 게 있었을 수 있다. 혹은 상대는 그냥 원래 하던 대로 생각나는 말을 하고 행동한 것일 뿐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보고가 끝나고 굉장히 기분이 찝찝했다. 동료랑 같이 보고했는데 왜 나한테만 그렇게 냉랭하게 반응했을까, 왜 똑같은 얘기인데 내가 말하면 믿지 않는 걸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금요일 보고였는데 주말까지 그 기분이 이어졌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잘 넘어가지지가 않는 때가 있다.
예민한 나를 위해 이런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한 다섯 가지 생각 방식을 꺼내어 끄적여본다.
1. 상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면 그때부터 나만 지옥에 살게 된다.
예전엔 내게 거슬리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쉽게 미워했다. 그런데 누군가를 미워할 때 상대방이 상처받는 것보다(상처받기는커녕 전혀 느끼지 못하거나 신경도 안 쓰는 경우도 많다), 내 감정과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결국 스스로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상대가 과하게 화를 내거나 반응을 한 거라면 상대도 미안해하고 있을 것이다.(아닐 수 있음 주의)
이전 직장에서 무섭고 깐깐하기로 유명한 연구소장님이 있었다. 무조건 실무자에게 직접 보고를 듣는 것을 선호해서 보고할 일이 꽤 자주 있었다. 나는 긴장을 잘하고 당황하면 머리가 하얘지고 말문이 막혀서, 보고할 내용을 줄줄이 외워가곤 했다. 한 번은 연구소장이 지시한 것을 검토한 후 왜 할 수 없는지 보고를 해야 했다. 보고 시작하자마자 내가 외운 것을 기계적으로 뱉어냈는데, 외운 내용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 상대가 이해하고 반응할 틈 없이 내 얘기만 줄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연구소장님은 내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그게 무슨 말이냐며 이해가 하나도 되지 않는다, 왜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느냐며 소리를 지르며 엄청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나는 묵묵히 하라는 일 책임감 있게 하는 편이라 쓴소리 들을 일이 많지는 않았는데, 15년 직장 생활 동안 가장 크게 혼난 경험이었다.
어김없이 보고를 또 해야 할 일이 생겼고, 지난번 화낸 일이 있은 후라 더욱 긴장하고 들어갔다. 이번엔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잘 살피면서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연구소장도 이번엔 처음부터 내 얘기에 엄청 귀 기울이고 어 그렇구나 응 그래그래 하면서 눈에 띄게 유하게 대하는 게 아닌가. 연구소장도 지난번 내게 버럭 한 일이 미안했나 보다 싶었다.
3. 유독 나랑 맞는 사람이 있고, 유독 나랑 안 맞는 사람이 있다.
내게 불같이 화를 냈던 연구소장님 다음으로 온 연구소장님은 나를 참 아끼고 예뻐하셨다. 내가 일을 하고 보고를 하는 방식도 좋아했고, 사석에서의 사소한 내 의견에도 지지를 해주셨다. 업무적으로 내게 기회를 많이 주고, 일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때에도 나를 탓하기는커녕 내 마음이 다치지 않았는지를 먼저 살펴주셨다. 내가 이직을 하게 되었을 때는 내게 직접 전화를 주고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시고는, 6시간 동안이나 나를 설득하려 하셨다.
나는 늘 한결같이 똑같이 일했다. 그런데 어떤 리더는 내게 화를 냈고, 어떤 리더는 나를 지지하고 아꼈다.
4. 사람의 대운은 크게는 10년, 작게는 5년 단위로 바뀐다. 5년이 지나면 저 사람은 저 자리에 없다.
상대의 대운이 바뀌어 상대가 다른 자리로 옮겨갈 수도 있고, 내 대운이 바뀌어 내가 현재의 자리를 떠나게 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잘 맞는 사람이든, 잘 안 맞는 사람이든 어떤 상대와도 5년 이상 함께할 일은 드물다.
5. 좋은 순간도 나쁜 순간도 다 지나가버린다.
나에게 불같이 화냈던 연구소장님은 5년 정도 우리 부서에 있다가(내가 경험한 기간은 3년 정도로 기억한다) 다른 사업부로 발령 나서 가셨고, 거기서 2년가량 더 있다가 집에 가셨다고(잘렸다고) 들었다.
나를 예뻐했던 연구소장님과도 3년 정도 같이 일했는데 내가 이직하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내가 이전 회사를 떠난 후에도 계속 연구소장직에 계시다가 총 7년 정도 머물고 마찬가지로 집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은 순간도 나쁜 순간도, 좋은 인연과의 시간도 나쁜 인연과의 시간도 다 한때이고 모두 흘러가버린다.
글을 쓰다 보니, 훨씬 더 심하게 쓴소리 들은 일도 있었는데 이번 보고는 그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 가끔가다 이유 없이 내게 적대적인 사람도 있지만, 이유 없이 나를 아껴준 감사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훨씬 많이 생각난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또 이내 마음 고쳐먹기를 반복하며 평범한 하루를 지나 보낸다.